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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Apr 09. 2021

보물도 보고, 숲도 걷고, 도깨비도로도 타고

세종시 비암사

대전과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휴일이면 가족과 함께 종종 찾던 작은 절에 2021년 2월 23일,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문화재청이 세종시 전의면에 있는 시 유형문화재 '비암사 극락보전'(碑巖寺 極樂寶殿)'을 보물 제2119호로 지정했다는 것이다. 세종시 건축문화재로는 처음으로 보물로 지정된 경사라고 한다. (지정일자는 2월 26일)

세종시는 2012년 특별자치시 승격 이후 건축문화재로는 처음으로 비암사 극락보전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신청하였고, 문화재위원회에서 가치가 충분하다는 판단에 따라 이번에 보물로 지정하게 되었단다. 갈 때마다 무심코 지나친 극락보전이 보물로 승격했다니 또 가볼 이유가 생겨서 벼르다가 3월 어느 햇빛 좋은 날 오후 비암사로 향했다.

절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면 860년 된 거대한 느티나무가 내려다보며 두 팔을 벌려 반기는 모습으로 맞아준다.(보호수 지정일 기준 수령 810년인데, 지정일이 1972년이다) 나무 맞은편 담장에 극락보전의 보물 지정 소식이 담긴 현수막이 걸려있고, 볼 때마다 웃음 짓게 되는 <아니 오신듯 다녀가소서> 글씨가 보인다.

느티나무 앞을 지나 절 마당에 서면 삼층석탑과 극락보전, 대웅전, 설선당과 명부전이 자리한 단촐한 사찰 경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극락보전과 대웅전 사이 계단으로 올라가면 산신각이 나오는데, 산신각 앞에 서면 멀리까지 확 트인 전망이 보인다. 그 날은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구름 사이로 빛내림이 멋진 날이어서 더더욱 전망이 좋았다.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다방리에 있는 비암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비암사의 역사는 2,000여 년 전 삼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록에 남아 있지는 않지만 삼한시대의 절이라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통일신라 말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도 있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고려시대의 절이라는 주장이다. 절 마당에 있는 삼층석탑이 양식의 고려시대 것이라고 추정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기록에 '비암사'라는 이름이 나온다. 이 절 이름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

옛날에 비구니들이 거처하고 있을 당시 낯선 이가 찾아와 여러 번 탑돌이를 마치고 돌아가기를 반복하다가 비구니에게 물을 청했고 나중에 탑돌이를 마치고 돌아가는 청년을 미행한 비구니가 굴속으로 사라진 청년을 찾지 못하고 연기만 확인했다. 자세히 보니 그 자리에는 큰 구렁이가 있었고 사람 되는 것이 소원이었던 구렁이가 100일 동안 탑돌이를 하여 사람이 되고자 하였는데, 딱 하루를 남겨두고 비구니에게 발견되어 평생 구렁이로 살아야 한다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후 그 비구니는 자신 때문에 그리 된 구렁이를 수발들며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와 뱀의 사투리인 '비암'이라는 단어를 써서 '비암사'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절의 뚜렷한 역사는 전하지 않으나, 극락전 앞뜰에 있는 높이 3m의 고려시대 3층 석탑 정상 부분에서 사면군상(四面群像)이 발견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석상 중 673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계유명전씨아미타불삼존석상은 국보 제106호이고, 기축명아미타여래제불보살석상과 미륵보살반가석상은 각각 보물 제367호, 제368호로 지정되어 국립 청주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삼층석탑 자체는 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됐다.

1657년에 제작된 영산회 괘불탱화는 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됐다. 괘불탱화는 사찰에서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마당에 걸어놓는 대형 불화를 말하는데, 비암사 괘불탱화는 조성 시기와 화원, 봉안 장소가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 특징이다. 17세기 전반에 제작된 소조아미타여래좌상은 현재 극락보전에 주존불로 봉안됐다. 전체 높이가 196cm다. 목조가 아닌 흙으로 만든 게 특징이며 유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됐다.

극락보전은 정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일반적인 측면 3칸형에서 벗어난 2칸형 불전이다. 전란 이후 사찰 경제가 축소된 사정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공포의 구성은 크기에 따른 대첨차, 중첨차, 소첨차를 모두 사용한 특징을 보인다. 첨차를 배열한 방식, 내외부의 살미 모양 등에는 조선 중기 이후 다포 건축물에 보이는 특징들이 잘 반영되어 있다.(살미, 첨차: 기둥 위에서 십자모양으로 짜이는 공포부재로, 살미는 건물 전면으로 내민 초가지를 말하고, 첨차는 도리방향으로 층층이 쌓아 올린 부재, 첨차는 크기에 따라 대첨과 소첨으로 나누며, 그 중간 크기를 중첨이라 한다)

극락보전의 가구 구조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중요한 요소는 옆면 규모라 할 수 있다. 옆면이 2칸이면서 팔작집을 지으려다 보니 일반적인 상부가구 구성으론 대응이 쉽지 않았다. 보통 건물에서는 충량 1본을 두었으나, 극락보전은 충량(한쪽 끝은 기둥 위에 짜이고 한쪽 끝은 보에 걸치게 된 측면의 보)을 좌우 협칸에 각각 3본씩 설치하는 방식으로 해결하였다. 옆면 주칸이 긴 편이어서 충량을 보조로 설치하여 추녀에 걸리는 하중을 감당하려는 의도로 추측된다.

창호는 일반적인 조선 후기 불전 창호와는 차별성이 보인 다. 앞쪽 창호는 문 얼굴을 4분할하여 가운데 두 짝은 여닫이를 두어 문설주(문의 양쪽에 세워 문짝을 끼워달게 만든 기둥)로 분리하고, 좌우에는 외짝 여닫이를 설치했다. 뒤쪽 창호는 이른바 영쌍창(가운데에 문설주를 두고 좌우에 창호를 달아댄 형태)으로 분류되는 방식으로, 쌍여닫이창의 중간에 설주를 세운 형태이다. 건립 당시에 제작한 창호는 아니지만 뚜렷한 근거를 토대로 창호의 원형을 되살렸다는 점에서 극락보전의 건립시기에 걸맞은 외관을 보여준다.

이처럼 세종 비암사 극락보전은 건물 조성연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찾을 수 없으나, 17세기 중엽 지방 사찰 불전의 시대 특성과 지역색을 잘 간직한 점에서 국가지정문화재로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판단되어 이번에 보물로 승격한 것이다.

극락보전을 꼼꼼히 들여다본 뒤 옆에 있는 대웅전도 잠시 보았는데 이 건물은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새 건물임이 바로 눈에 띄었다. 두 건물의 사이로 난 계단을 올라가 산신각 앞에서 한참 동안 풍경을 감상한 뒤 내려왔다. 명부전, 종무소를 거쳐 범종각 앞을 지나 주차장으로 내려가면 오른쪽에 해우소가 있다. 이 뒤로 난 계단길을 따라 어느 정도 올라가면 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조망 포인트가 나온다는데 몰라서 놓쳤다. 다음에 가면 꼭 한 번 올라가 봐야겠다.(아래 사진으로 감상)

해우소에서 아래로 더 내려가면 다비숲공원이 나온다. 비암사를 알리는 돌 표지석에 '다비숲공원'이라고 쓰여있어 뭘까? 싶었는데, 비암사 앞에 조성된 공원의 이름이다. 소나무, 모감주나무, 산수유나무, 단풍나무 등이 조화롭게 심어져 있고, 그 아래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솔잎(소갈비)들이 융단처럼 폭신하게 깔려있었다.

가까이서 개구리 우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살펴보니, 조천이라 불리는 작은 연못이 보였다. 새들이 찾아드는 곳이라는 뜻인데 새는 안 보이고 얼마 전 긴 잠에서 깨어난 산개구리들만 번식기를 맞아 요란뻑쩍찌근하게 울다가 내 발걸음 소리를 듣고는 뚝 그쳐버렸다. 비암사 마당까지 메아리치며 울려대던 개구리울음소리가 끊어지니 세상 조용했다. 가만히 있으면 다시 울려나~하고 연못가에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 기다려봤지만 개구리들은 더 이상 울지 않았다. 하얀 구름이 뜬 푸르른 하늘 위로 헬리콥터 한 대만 유유히 지나갔다.

주차장으로 돌아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비숲공원 아래 비암사 진입로에 있는 도깨비도로에 잠시 머물렀다. 아이들과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재미난 체험을 했던 곳이다. '도깨비도로 시작 지점'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자동차 기어를 중립에 놓고 가만히 있으면 오르막길처럼 보이는 길로 차가 올라간다. 착시현상 때문인데 제주도의 도깨비도로만큼 길진 않아서 아쉽지만 충청도 시골길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는 색다른 경험이다. 도깨비도로 옆에 쭉쭉 뻗어 올라간 메타세콰이어숲도 규모는 작지만 꽤 멋지다. 이번에는 마침 나무숲에 걸린 해를 보는 풍경이 좋아서 예쁜 사진을 여러 장 건졌다.

보물이 된 극락보전도 보고, 잘 가꿔진 다비숲공원도 걷고, 개구리 우는 연못도 둘러보고, 도깨비도로에서 재미난 경험도 할 수 있는 세종시 비암사. 큰 도시 옆에 이토록 다양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조용하고 아담한 절이 있어 참 행운이다.

* 극락보전의 건축양식에 대한 설명은 문화재청 새소식 「세종 비암사 극락보전」 보물 지정 참고
http://naver.me/5rsE46Y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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