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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Mar 16. 2021

태안 1경이 어디게요?

백화산과 마애삼존불

태안읍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백화산은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태안을 소개하는 영상에서 백화산에 올라 바라보는 일몰풍경을 보여주는데 단번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안면암을 먼저 찾은 뒤, 이어서 찾아간 곳이 바로 백화산이다. 산의 모양이 마치 흰 꽃이 활짝 피어 있는 것 같이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태안의 1경이 바로 이곳이다.

백화산의 높이는 284m로 작고 아담한 산이지만, 서해 바다를 끼고 있어 풍경이 아름답다. 사면이 암석으로 둘러싸인 백화산에는 기암괴석들이 많다. 바위 사이로 겨우 한 조각의 땅이 있는데 태안 읍내 동문리 · 남문리 사람들이 함께 나무를 심어 지금은 바위면을 가릴 정도로 울창하여 바위들과 소나무가 어우러져 있다. 특히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최고의 경관이라고 한다. 정상까지 어찌 가나~ 걱정하시는 분들 있을 텐데 염려 마시라! 정상을 몇십 미터 남겨둔 곳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차로 간다면 정상까지 오르는 데는 십여 분 가량밖에 안 걸린다. 게다가 비교적 평탄한 오르막이라 꼬맹이들도 어르신들도 쉽게 오를 수 있다.


주차장 옆에는 태을암이란 작은 사찰이 있는데 이곳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게 '백제시대 최고(最古)의 마애불'로 여겨지는 삼존불상이 있는 곳이다. 마애불은 암벽에 새긴 불상을 말하는데, 6세기 말인 560년 경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태안 마애불은 서산 마애불보다 40여년 앞선 것이라고 한다. (불상에 조각된 의복의 형태가 북제의 복식이라 이를 근거로 추정한 것)  


백제가 한강유역을 상실한 이후 해상교역의 중심지로 태안반도 일대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이곳을 통해 원거리 항해의 안전과 백제의 부흥을 기원하기 위해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태안을 통해 불교가 유입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단다.


1966년 보물 제432호로 지정되었다가, 2004년 국보 제307호로 승격되면서 보호각이 설치되었는데 이 과정이 재밌다. 1995년 오랜 세월 노출되어 있어 훼손과 마멸이 심했던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한 작업을 하던 중에 그간 불상의 발 아래 땅속에 묻혀있 연화대좌가 발견된 것이다. 홑겹 연꽃무늬의 연화대좌는 공주 무녕왕릉에서 발견된 왕비 목침의 문양과 동일하여 조각 양식으로 보아 백제시대에 조성된 최고 오래된 마애불로 추정되며, 한국 마애삼존불의 초기 양식을 엿볼 수 있어 국보로 승격되었다.


태안 마애삼존불은 몇 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

첫째, 삼존불은 보통 중앙에 본존여래(부처)를 배치하고 좌우에 협시보살을 배치하다보니 중앙이 제일 키가 크고, 좌우는 작은데 태안삼존불은 반대이다. 중앙의 보살입상 높이가 223㎝, 좌우의 여래입상이 각각 306㎝와 296㎝로 좌우의 불상이 중앙의 것보다 크다. 이는 왼쪽이 시무외인을 하고 있는 석가여래이고, 가운데가 손으로 보주를 감싼 관음보살, 오른쪽이 약단지를 들고 있는 약사여래인데 관음보살이 석가여래와 약사여래의 뒷줄에 따라오는 모습을 표현하다보니 원근법상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런 삼존불양식은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둘째, 해수관음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마애불의 얼굴이 바다가 아닌 동쪽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불교에서는 동짓날 해가 뜨는 방향으로 얼굴을 향하게 불상을 조성하기 때문이란다. 불상의 눈길을 따라 동동남 15도 쪽으로 쭉 가면 옛 사비성이 보인다고 한다.


태안마애삼존불은 기도발이 좋기로도 유명한데, 특히 삼존불 가운데 오른쪽 끝의 약사여래불이 기도를 잘 들어주신다고 한다. 백화산 정상까지 다녀온 뒤 마애불이 있는 보호각 안으로 다시 들어가, 약사여래불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다.

다소 안타까운 점은 보호각을 세우느라 드잡이공사를 하면서 석가여래가 기울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산마애불도 이 문제때문에 나중에 지은 보호각을 해체했다고 하는데, 태안마애불은 직립이라 보호각이 없으면 비바람이 들이쳐서 훼손될 여지가 많아 아직 논란중이라고 한다. 무려 1500여년 전에 조성된 마애불이니 더이상 훼손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리라.


마애불 앞에는 '태을동천'이라 쓰여진 커다란 암벽이 있다. 도교적 해석에 따르면 하늘의 신이 인간과 처음 만나는 신성한 곳이라고 한다. 암벽 한쪽에 자잘한 글씨가 많은데  '가락기원  1924', '계해 맹추 혜초 김규항'이라는 내용으로 보아 1923년에 김규항이란 사람이 새긴 글자로 여겨진다. 암벽 앞에는 '일소계'라고 쓰인 돌도 보이는데, 이는 김규항의 아들 김윤석이 쓴 글씨로 '한바탕 웃음이 흐르는 계곡'이란 뜻이란다. 김윤석의 가문은 김해 김씨로 당시 태안에서 꽤 행세했던 부호였다고 한다.


암석이 많아 물이 귀한 산이다보니, 우리가 갔던 때는 강수량 적은 늦겨울이라 개울이 말라있었지만 비가 많이 오는 때는 그 아래로 물이 흘러내린다고 한다. 태을동천 바위 위는 망향대라고 하는데 바둑판이 새겨져있어 그곳에서 신선들이 서해바다를 바라보며 바둑을 두었다고 전해진다. 그곳에서 정말 바다가 보이나? 하고 앉아서 바라봤는데 미세먼지가 짙은 탓에 잘 보이지 않았다.


남쪽은 284m 북쪽은 270m 높이인 백화산에는 퇴뫼식 산성과 봉화대진지가 있다. 산성은 고려 충렬왕 13에 축성된 것으로 현재 100m 만 남아있지만, 조사를 해보니 970m 가량 이어져있었음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봉화대진지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좋은데 북동쪽에서 보이는 가로림만 경관이 가장 멋지다. 가로림만은 현재 국가해양정원 1호로 추진중이다.


백화산은 그 자체로 '백화산 산수길'이 조성되어 있으며, 태안을 잇는 '솔향기길' 5코스가 지나가기 때문에 도보여행객들이 자주 찾는다. 특히 백화산 냉천골은 한 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을 유지하는 곳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주민들이 더위를 피해 찾았던 곳이라고 한다

정상 부근 주차장 한쪽에는 문화해설사가 계시는 안내소가 있는데, 그곳에 친절한 문화해설사분이 대기중이니 꼭 해설을 부탁해 보시기 바란다.

백화산에 도착해 차를 대놓고 그 앞에 있는 마애삼존불상 표지판을 주의 깊게 쳐다보고 있자니, 그곳에 계시던 분이 우리에게 문화해설을 원하시냐고 물어 오셨다. 코로나 이후 문화해설도 중단되어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먼저 손을 내밀어주신 덕분에 오랜만에 자세한 문화해설을 들으며 태안 마애불과 주변의 문화, 역사에 대해 알게 되었다.

너무도 친절하고 소상하게 설명을 잘 해주셔서 해설이 끝난 뒤 해설사님의 존함을 여쭈니 권문선 이라고 하셨다. 권문선 선생님은 귀농해서 펜션을 운영하시는 한편 공주대에서 문화보존학을 공부하시면서 문화해설사로 봉사를 하고 계셨다. 본인의 이름을 따서 '문=달, 선=해' 의 뜻을 지닌 '루나솔펜션'을 운영하신다니 태안에서 1박을 하실 예정이라면 이 펜션을 이용해보셔도 좋겠다.(댓글에 소개링크 올려요^^)

우리가 찾았던 날은 미세먼지가 심해서 풍경이 깨끗하지 않은데다, 일몰시간을 맞추려면 오래 기다려야해서 안타깝게도 백화산 일몰을 보진 못했다. 대신 백화산 내려오는 길에 남문리 오층석탑이 있는 곳을 들러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오층석탑을 구경했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01호로 화강암으로 된 높이 약 5m의 석탑이다. 기단은 신라시대 양식이고 옥개석은 백제시대의 기법이 가미되어 있으나 전체적인 탑의 맵시로 보아 고려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인근 농지에서 기와조각이 출토되고 석탑으로부터 약 20m 떨어진 서북방향에 위치한 민가 앞 나무 밑에서 소형의 석불이 발견된 점과 지역 촌로들의 구전에 의하면 이곳에 절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덩그러니 5층석탑만 우뚝 서서 말없이 태안읍내를 바라보고 있다. 탑 뒤의 민가에서 개 한 마리가 꽤 야무지게 짖어대긴 하지만, 석탑 앞에 너른 주차장이 있어서 천천히 걸으며 고즈넉한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괜찮았다.

올림푸스 동호회 도리님의 백화산 일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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