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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Apr 22. 2021

떡볶이 덕분에 요조 팬이 되다

아무튼, 떡볶이

별별 떡볶이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분식집에서 흔히 접하는 뻘건 떡볶이만 있는 줄 알았던 나에게 치즈떡볶이, 짜장떡볶이, 카레떡볶이, 국물떡볶이, 마라떡볶이, 기름떡볶이, 허니버터떡볶이, 까르보나라 떡볶이, 궁중(간장)떡볶이 등등 다양한 떡볶이의 세계로 인도한 이는 나의 딸이다.

우리집 사람들은 매운 거라면 질색하는 사람들이라
김치 외엔 맵게 먹는 음식이 잘 없는 편이다. 하다못해 중국집 가서도 당연하다는 듯 짜장면을 시키지 따로 짬뽕을 시킨 역사가 거의 없다. 무슨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어쩌다 시키면 외식 가서 음식을 남기는 법이 없는 우리가 반드시 짬뽕을 남긴다, 그것도 많이.

같은 이유로 텃밭을 5년간 해오면서도 남들 다 심고 가꾸는 고추는 잘 심지 않는다. 역시 어쩌다 안 매운 오이고추나 아삭이고추라도 심을라치면 다 망친다. 그 꼴을 보고, 몹시 안타까워하며 고추농사 풍년인 이웃이 배려심 많게 고추를 나눠주려 하시면 한사코 괜찮다고 두 팔을 크게 벌려 손사래를 친다.

그런데 이런 집안의 장녀인 우리딸이 어쩌다 떡볶이에 꽂히게 됐는지 모를 일이다. 이 아이는 매운 불닭발도 좋아하고, 마라탕도 좋아한다. 그러나 불닭볶음면만은 못 먹는데, 맛있게 매운 거랑 혀를 고문하는 매운 거는 다른 거라나? 암튼간에 매운 거 별로 안 좋아하는 엄마랑 매운 거 먹으면 바로 피똥 싸는 바람에 매운 음식은 입에 잘 대지도 않는 아빠 사이에서 우짜다가 이런 취향의 아이가 나왔는지 신기방기하다.

30~50대인 세대들은 학창시절에 친구들과 함께 학교앞 분식집으로 우루루 몰려가 떡볶이를 먹었던 추억을 가진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들에 의해 오늘날 이토록 다양한 떡볶이 가게들이 생겨난 것으로 추측을 해볼 수 있다. 그런데 이제 50을 바라보는 난 안타깝게도 떡볶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어쩌다 떡볶이를 먹게 되어도 떡보다는 어묵에 열을 올렸다.

그런데 여기 '아무튼, 떡볶이'란 책을 쓴 요조(신수진)는 떡볶이를 좋아해도 너무 좋아해서 "맛없는 떡볶이집이라도 존재하는 것이 나는 좋다"고 야무지게 말하는 사람이다.(그 뒤에 이어지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 대체로 모든 게 그렇다. 뭐가 되었든 그닥 훌륭하지 않더라도 어쩌다 존재하게 되었으면 가능한 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 이토록 선한 생각에서 나온 말이라니~ 난 이 말때문에 그녀가 참 좋아졌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난 요조가 싱어송라이터이자, 책방 무사의 주인이자, 팟캐스트 진행자이자, 무려 16권의 책을 펴낸 작가란 사실을 전혀 몰랐지만 이 책으로 인해 그녀를 깊이 애정하는 팬이 되었다)

표지의 레트로스런 공주님표 만화그림 아래 '이건 맛있는 떡볶이다'라는 확신이 왔다는 엉뚱한 문장도 눈길을 끈다.

 ‘엄마와 자신이 만든 음식 다음으로 많이 먹은 음식이 떡볶이’인 요조는 “인간적으로 그동안 떡볶이를 너무 과잉 섭취한 것 같다”며 떡볶이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안에는 흔히 독자가 기대할만한 전국의 맛있는 떡볶이집 순례나 떡볶이 맛집의 레시피가 들어있지 않다. 물론 요조가 가본 특별한 맛과 추억을 지닌 떡볶이 가게가 에피소드와 함게 정확한 상호명이 나오기도 하지만 대체로 우리가 기대하는 그런 내용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계약서를 쓰기 위해 출판사 식구들을 만나러 가면서 시작한 이야기는 그 출판사(2021년 4월까지 총 41개의 '아무튼' 시리즈를 내고 있는 [위고]. 모든 물가가 미친 듯이 뛰는 세상에서 만 원도 안 되는 책값에 책값 이상의 충실한 내용을 담은 아주 가성비 높은 알흠다운 시리즈다) 사장 조소정이 추천한 '코펜하겐 떡볶이'집에서 벌어진 일들로 마무리가 되는 특이한 전개방식을 지녔다.

이처럼 신선한 책의 구성도 재밌지만 무엇보다 글을 이끌어가는 요조의 선하고, 가끔은 슬프고, 그러면서 자주 웃음과 감동을 선사하는 필력에 매료된다. 한 손에 들어오는 147쪽의 작은 책자에 내가 기억해두고 싶어 책장을 접어둔 쪽수가 15쪽이 넘는다.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다 읽어가자 마음이 급해져서 소장하기 위해 책을 후다닥 샀을 정도다.

예전부터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렇게 맥주가 당기곤 했다는 요조는 그의 책을 읽고 도저히 못참겠다는 기분으로 캔맥주를 쩍, 하고 딸 때마다 이것이야말로 참 착실한 리뷰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마도 자신에게 있어 '이 책의 최고의 리뷰는 이 책을 읽고 난 당신의 바로 다음 끼니가 떡볶이가 되는 일일 것이다.'라고 책의 말미를 장식한 글답게 이 책을 읽는 내내 떡볶이가 먹고 싶었고, 책을 다 읽은 순간 너무도 떡볶이가 먹고 싶어졌다. 그러나 여건상 못 먹고 있던 참에 하루 두쪽방의 여름님이 참다못해 당장 밖에 나가 떡볶이 재료를 사다가 이렇게 근사한 떡볶이 한 접시를 뚝딱 만들어내셨다. 여름님 엄지 척!

책을 읽지도 않고 그저 책 표지만 봤을 뿐인데도 이렇게 떡볶이를 만들게 하고야 마는 마성의 떡볶이 책이 궁금하시다면 지금 당장 도서관이나 동네서점이나 인터넷서점으로 달려가시라. 당신을 맛있는 떡볶이가 줄 수 있는 감동, 그 이상의 감동의 도가니에 퐁당 빠트려줄 것이다.^^


#떡볶이 #요조 #신수진 #아무튼시리즈 #위고 

* 책 내용을 꼼꼼히 필사해서 올리는 방식으로 독후감을 써온 나의 리뷰 방식과 달리 이 책에 나온 구절들은 따로 필사해서 올리지 않는다. 많은 분들이 꼭 책을 직접 읽어보셨음 싶어서다. 아마 읽어보시면 왜 내가 이런 말을 하는지 아실 것이다. 필사한 내용은 나만 볼 수 있는 공간에 따로 저장할 예정이다.


* 요조의 글이 가끔 슬펐던 것은 아무래도 8살 어린 동생의 갑작스런 죽음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동생의 죽음에 관련된 요조의 글을 포스팅한 내용이 있어 올린다.
https://m.blog.naver.com/rhdmsdk0/221683663292

* 대한민국 떡볶이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주는 대단한 글
https://m.blog.naver.com/thm7114/222236582863

왼쪽은 도서관 책, 오른쪽은 내가 산 책
책 완독 기념 떡볶이 by 여름
맛나보이는 떡볶이 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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