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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Sep 14. 2021

내 인생의 주도권을 나에게 주세요

사는 게 정답이 있으려나 - 김숙 편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사전정보없이 단지 제목에 이끌려 집어들게 된 책, [사는 게 정답이 있으려나?]

KBS <대화의 희열>에서 아이유, 조수미, 지코, 이정은, 백종원, 김숙, 배철수, 이수정, 박항서, 리아킴, 유시민과 MC 유희열이 나눈 대화를 글로 옮긴 책이었다.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11명의 명사가 자신의 삶에 대해 지금의 '나'를 만든 시간과 모습을 이야기한다.

누구나 한 번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해보았을 테다. 이 책이 그 질문에 대한 정답을 줄 수 없지만, 대한민국에서 최고가 된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내 삶의 방향을 찾는 데 유의미한 지표가 되어줄 것이라는 기획의도가 담겨있다.


처음엔 제목에 끌려 책을 집어들었지만 이 책을 빌려가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건 아이유의 인터뷰였다. 그러나 책 [사는 게 정답이 있으려나?] 리뷰 1편은 흔들리는 세상에서 '중심을 지키는 방법'을 알려주는 김숙 이야길 가장 먼저 해보려 한다.

김숙은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코미디언 겸 MC이다. KBS 공채 개그맨 출신으로, 2020년 KBS 연예대상을 수상했다. 오랜 무명 생활 끝에 송은이와 함께 <비밀보장>이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고민에 대한 명쾌하고 시원한 답변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후 가상결혼 프로그램인 <님과 함께> 시즌 2에 윤정수와 가상 부부로 출연해 '숙크러시'로 열연하면서 기존의 성개념을 엎는 주옥같은 명언을 쏟아내며 큰 호응을 얻었다. 그리하여 남초였던 예능계에서 <밥블레스유>, <언니들의 슬램덩크>, <비디오스타> 등 여성 중심의 예능을 이끌며 이제 우리나라 예능계를 대표하는 희극인으로 자리매김했다.

나는 <옥탑방의 문제아들>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김숙의 존재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소의 눈동자를 연상시키는 커다란 눈동자를 더욱 크게 부풀리며 말하는 그녀가 처음엔 썩 호감이 가지 않았으나, 프로그램에서 그녀를 보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은근 호감이 가게 되었는데, 이번에 책 '사는 게 정답이 있으려나?'를 읽으며 자신만의 철학이 확실한 사람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고, 책을 읽다가 이건 꼭 메모를 해야겠는데? 하면서 인터뷰 내용을 메모하게 되었다.

<셰임>이라는 영화에는 "우리는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 나 쁜 장소에 있을 뿐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도 잘못된 장소에 있다면 나빠질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그 장소에서 나오라고 도움을 준다면 빠져나올 수 있다.

김숙은 한때 게임에 빠져 2년여동안 일거리가 들어와도 잘 하지 않거나 라디오방송을 펑크낼 정도로 게임중독 폐인으로 살았는데, 이때 그녀를 현실로 끌어낸 사람들이 바로 개그맨 선배들이었다고 한다. 나쁜 장소에 있었던 그때 그 장소에서 나오라고 도움을 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희극인들의 연대감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그녀는 중독을 끊어내고 백지상태로 돌아온 이후, 중요한 일부터 차근차근 되돌리며 일상의 소중함을 되살렸다. 앞으로 다시 중독에 빠져들지 않으려면 내가 어디에 어떤 시간을 쓰는지 명확히 들여다보고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 힘을 쭉 빼버리면 가고자 한 적 없는 곳으로 흘러가 헤매게 되기 때문이다. 삶의 밸런스를 지키기 위한 내 인생의 주도권은 항상 나 자신에게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 경험이었다.

소확행에 대한 자기나름의 철학도 참 좋았다.

김숙의 일상을 안전하고 견고하게 지탱해주는 힘은 바로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에 있다. 김숙은 소확행이 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에도 실용적이지는 않지만 기분 전환을 시켜주는 오르골 소리와 같은 잔잔한 행복의 순간을 좋아했다. 일 끝나고 집에서 맛있는 간식거리를 사먹거나, 좋아하는 영상을 알뜰하게 할인가로 시청하는 별것 아닌 순간들이 스트레스를 싹 풀어줬다. 덕분에 내가 여전히 나일 수 있었다.

다만 소확행이 인기를 끌자 어른으로서 우려하는 마음도 생겼다고 한다. 큰 꿈을 꾸기 어려운 현실에 부딪친 청년들이 작은 행복을 채우는 데 만족하고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게 아닐까. 소소한 행복으로 가능한 한 자주, 많이 행복해져도 좋지만 거기에 몰두하느라 커다란 행복을 놓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는데 그 부분이 참 신선했다. 소확행이 무조건 다 좋은 건 아니구나, 더 큰 행복을 놓칠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김숙이 꿈꾸는 미래는 소소하지만 큼직한 테두리로 그의 삶을 아우른다. 그리고 반드시 1등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또 상당히 철학적이다.

햇볕을 바로 받는 나무는 뜨겁지만 나무 그늘은 시원하다. 누군가는 그늘에 선 사람을 보고 '빛을 받지 못한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햇볕 아래보다 훨씬 더 마음 편하 게 쉬었다 갈 수 있는 자리이다. 그러니 꼭 가장 빛나는 꼭대기에 오르지 않아도 좋다. 일단은 내 마음이 편해야 그다음에 하고 싶은 일도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을 테니까. 꼭대기가 아니어도 되는 삶을 영위하는 그녀의 여유로운 삶의 자세를 배우고 싶다.

김숙의 캐릭터가 대중들에게 강렬하게 각인된 건 윤정수 씨와 가상 결혼 프로그램 <님과 함께〉 시즌 2에 출 연했을 때였다고 한다. 가상부부로 결혼생활을 시작한 김숙은 "남자가 조신하니 살림을 잘해야 한다.", "남자 목소리가 담장을 넘으면 패가망신한다.", "그깟 돈이야 내가 벌면 되지." 등의 명언을 남기며 성별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거침없이 뒤집었다.

사실 <님과 함께> 출연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는데,

<님과 함께>를 찍기 전에 비슷한 프로그램에서 출연제의가 들어왔을 때 김숙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운전은 내가 해야지! 어디 운전대를 남자 한테 맡겨? 내 차 내가 운전해서 데리러 갈 거예요. 음식 뭐 싸오나 한번 봅시다."

어김없이 숙크러시다운 대사를 날린 셈인데, 그땐 그런 말때문에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못했지만 그러든 말든 김숙은 자신의 길을 걸었고 결국 그걸로 대박이 났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정답은 없다. 누가 뭐래도 내 삶은 오로지 나만이 가장 어울리는 모습으로 설계할 수 있다. 김숙은 이미 그 길을 꾸준하게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다. 누가 알아주든 아니든, 지금까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책 속 사진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나온 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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