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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Aug 17. 2021

느티나무가 보낸 엽서

눈물은 왜 짠가

전라북도 군산시와 고군산군도, 부안군을 연결하는 길이 33.9km의 새만금 방조제를 달리다보면, 중간에 쉬어가는 해넘이휴게소가 있다. 거기 작년까진 안 보이던 엽서모양의 조형물이 보였다.

엽서 안쪽 눈에 잘 안 띄는 곳에

이 작품의 이름과 크기(엽서라서 규격이란 표현을 씀^^), 제작년도 아래 작품을 만든 의도가 나와 있었다.

작품명: 연결고리

규격: 5300 × 300×2,000mm

연도: 2020년

- 본 작품은 한 통의 편지가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 시대와 시대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인 점을 형상화하여 만들었다.

편지는 말로 전하기 힘든 마음을 글로써 전달해주는 귀중한 연결고리가 되어준다. 이내 사라져 버리는 말과는 다르게 언젠가 꺼내볼 수 있는 아련한 추억이 남는 편지를 통해 우리의 연결고리를 생각해볼 시간이 되길 바란다.

작품에 담긴 내용이 좋아서 사진에 담아왔는데

오늘 함민복 시인의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를

읽다가 딱 이 엽서가 떠오르는 글을 만났다.

그대 집안이 파산하여 빚잔치하고 고향을 떠나던 날이었다. 그대는 빚쟁이들이 트럭을 붙들어 늦고 지친 이삿짐을 먼저 보내고 집으로 가는 길을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거워진 마음만큼 버스는 좀처럼 오지 않고 두부처럼 가슴 눌리고 있을 때 그대에게 다가온 자전거처럼 깡마른 우편배달부 아저씨를 그대는 기억한다.

그대는 또 무슨 빚 때문일까. 가슴이 툭 멎는 듯했다.

그 아저씨는 할말이 있다며 그 대를 다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 아저씨는 뜻밖에도 그대의 손목을 잡아 주었다.

“우리가 하는 일에도 즐거운 일,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네. 자네가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꼬박꼬박 부쳐 오던 전신환, 자네 부모만큼 나도 고마웠다네."라고 말하며 어디를 가든 열심히 살라는 말로, 낮달처럼 쓸쓸히 고향 떠나던 그대의 가슴에 따뜻한 우표 한 장 붙여 주던, 자전거처럼 깡마른 우편배달부 아저씨. 그러한 따뜻한 기억이 그대를 왕복엽서처럼 고향에 돌아오게 만들었다.

그대도 이제 보았지 않은가.

망자들마저 불러 저리 잔치를 벌여 주는 고향의 마음. 추석 한가위, 흩어졌던 곡식 낟알도 저리 한 세대를 살고 곳간에서 다시 만나는 고향의 가을.

그대 이제 고향에 자주 오라. 그대 고향 마을 들목에 있는 나, 느티나무는 그대 아팠던 기억마저 따뜻하고 푸근한 보름달로 머리에 일지니.

ㅡ 느티나무 중에서 / 함민복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

벌써 노랗게 물든 계수나무 by 빛피스


누군가의 마음에 우표를 붙여주어서 왕복엽서처럼 그렇게 계속 고향을 오갈 수 있게 한 것은 깡마른 우편배달부 아저씨이기도 하지만, 그 모든 풍경을 한 자리에서 말없이 바라보며 품어준 느티나무이기도 하지 않을까?

붉게 익은 꽈리가 놓인 음양탕 by 조연화

가을 오는 소리가 타박타박 들려온다.

편지 쓰기 좋은 계절, 가을.

아껴두었던 엽서를 꺼내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손글씨로 편지를 써서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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