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퇴원 전에 마지막으로 다녀온 곳이 달성 하목정인데, 이곳은 배롱꽃 핀 풍경이 참으로 아름다운 정자이다. 그런데 6월 말에 갔더니 아직 배롱꽃은 필 기미가 보이지 않아 아쉬움을 안고 떠나와야 했다.
7월 중순 접어든 요즘이 딱 배롱꽃이 만발하기 시작한 때다. 새벽에 길을 나서면 함초롬히 이슬을 머금은 배롱꽃이 눈을 환하게 해준다.
관평천 들어가는 초입의 산책로에서 마주친 비둘기들. 이 녀석들 살이 많이 찐 닭둘기도 아닌데, 내가 가까이 가도 도대체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딱 저자세 저대로 나를 쓰윽 쳐다보며 "가던 길 가시지 왜 쳐다보슈?"하는 눈빛이다. 내 참 살다살다, 저리 당당한 비둘기는 처음 보네. 하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이라, 비둘기들이 사람 무서운 줄 모른다. 비둘기 좋아하는 딸이 봤으면 아주 신이 나서 옆에 딱 붙어서 사진을 찍어댔겠지만 난 쿨하게 한 장만 찍고 가던 길 간다.
사람들이 덜 다니는 산책로 한쪽엔 이렇게 길냥이들 천지다. 오늘은 좀 수가 적어서 네 마리.
어떤 땐 새끼냥이들까지 대여섯 마리가 기본이다.
겨울엔 이곳을 지나가면 어김없이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는 강아지도 한 마리 있었는데, 몇 달만에 가보니 이 녀석은 안 보이고 고양이 수만 더 늘었다. 길냥이에게 집도 만들어주고, 먹이랑 물이랑 비 안 들치게 우산까지 받쳐주는 분들이 꽤 계시는 듯. 곳곳에 고양이 집과 먹이통들이 보이는데, 훼손하거나 갖다버리면 동물학대죄로 신고한다는 푯말도 있다.
관평천과 배밭 과수원 사잇길을 본격적으로 걷다보면, 자꾸 발걸음을 붙드는 야생화들이 있다.
달맞이꽃, 메꽃, 금계국. 심지어 이 길에서는 능소화도 야생화처럼 길가 생울타리 위로 피어난다.
집앞에 꽃을 잘 가꾸시는 시골집 마당 곳곳엔 특이한 무궁화와 접시꽃, 비비추도 볼 수 있다.
햇빛이 눈부신 아침이었는데, 태양 위로 먹장구름이 가득한 걸 보니 얼마 뒤엔 태양도 저 구름 뒤로 숨을 건가보다. 비가 내릴 수도... 걸음을 빨리 해본다.
1985년엔가 지은 오래된 다리인데 이 부근을 지나면 꼭 아주 상큼하고 좋은 향이 난다. 특별히 꽃이 보이지도 않는데, 한겨울 빼고 늘 같은 향이 나서 이 향기의 발원지가 어딘지 궁금하게 만든다. 사진엔 향기를 담을 수 없어 아쉽다. 언젠가는 향기를 담은 사진도 나오게 되지 않을까? 이슬에 젖은 사철나무의 이파리가 싱그럽다.
저기 보이는 개울은 동화천이다.
위에서 말한 그 다리를 기점으로 관평천과 동화천으로 나뉜다. 같은 줄기의 개울이지만, 이 동네에서는 그리 부르는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위에서 말한 저 다리 이름도 '동화교'이다.
동화천
관평천
동화천이 근처에 지어지는 새 아파트와 맞물려 최근 싹 밀고 정비를 했는데 안타까움이 크다. 이 이야긴 쓰다보니 길어져서 다음 기회에...
이번 아파트개발에서 제외된 묵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너른 밭은 언제 봐도 정갈하게 관리되고 있는데
내 생애 처음으로 고구마꽃을 발견한 곳이기도 하다.
이 날도 고구마꽃이 잎사귀 사이로 보였다.
빈땅을 점령한 풀밭과 초록 벼들이 넘실대는 논을 지나고
개인과 회사에서 운영하는 텃밭들을 지나면
소나무농장이 보인다. 소나무 키워서 파는 곳이라 소나무들이 예쁜데, 오늘은 배롱꽃이 눈길을 끈다.
아직 햇빛이 미치지 않아 새벽빛 남은 길에
분홍빛 배롱꽃이 길 밝히는 전등이라도 된 듯 환하다.
하목정의 배롱꽃도 만발했을 텐데....
바로 위에는 관음정사에서 관리하는 마당텃밭이 있다.
요런 방울토마토도 있지만 대표메뉴는 블루베리다.
처음엔 돌사자 주위에 한두 개 블루베리 화분을 놓았더랬는데, 해가 지날수록 화분이 늘더니 올해는 아주 마당을 다 점령했다. 그리고 더 이상한 건 보라색으로 익은 블루베리가 화분에, 바닥에 마구 떨어지는데도 딸 생각을 안 한다. 그래서 이 앞을 지나칠 때면 한두 개씩 따서 먹는다. 어차피 버려지는 거... 오늘은 잘 익은 블루베리 세 개를 따서 사자에게 내밀었다.
사자야, 너두 한 입 먹어볼래?
사자 : 시로시로~ 난 채식 안 해~~~
내가 왜 여기서 블루베리 지키고 있는뎅~~
그래서 내 입에 홀랑 다 털어넣었다. ㅎㅎㅎ
사자 : 이 블루베리 도둑아~~~
오늘 소개할 식물 중 압권은 바로 이 하얀 가지다.
맛집으로 알려진 두 도토리묵식당 사이에 작은 텃밭이 하나 있는데 요기에 어느날 보니 하얀 가지가 자라고 있었다. 가만 보니 꽃도 하얀 색. 아하~ 보라 꽃은 보라 가지, 하얀 꽃은 하얀 가지가 달리는 거구나!
도라지는 하얀꽃이든 보라꽃이든 상관없이 똑같은 도라지가 생기는 걸로 아는데 가지는 다른가 보다. 하얀 가지는 처음이라 또 신기해서 찍었다.
그 사이 태양은 구름에 숨고, 묵마을 앞을 지나
나의 텃밭으로~ 장마철 전에 감자 캐고나서 밭을 쉬게 두었던 텃밭 초입의 밭에 어느덧 풀이 무성하다. 매년 밭을 깔끔하게 관리해오던 어린이집 전용밭인데 올해는 무슨 일이신가 싶다. 쉼터 앞에는 관리인이 신경써서 가꾸시는 꽃밭이 매일매일 다채로워진다. 오늘은 나리꽃까지!
쉼터 옆 공간에도 이렇게 토마토를 심어놓으시고
쉼터 뒤 화장실 너머의 버려진 공간도 작은 텃밭으로 재탄생했다. 늘 다니던 길이 아닌 이곳을 지나쳐 내 밭으로 올라가다 보니, 다른 밭에서 키우는 작물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애호박, 참외, 미니단호박에 메리골드까지~ 참 열심히들 키우신다.
밭둑길로 나오니 풀이 무성하다.
장마철을 거치면 이렇게 금방 풀이 자라버린다.
관리인께 예초 좀 해주시라고 말씀드려야겠다 싶었는데
저녁 때 가보니 그새 잡초들을 다 손으로 제거하셨네.
하루 전 저녁에 갑자기 내린 비에 쓸려내려온 소갈비들이 텃밭옆 오솔길 양옆으로 파도처럼 흔적을 남겨두었고, 우뚝 선 소나무는 왠지 더 씩씩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