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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Sep 24. 2021

유일하고 희귀한 예산 명물

화순옹주 홍문과 백송

추사고택과 김정희묘, 추사기념관을 둘러봤다면 추사고택 오른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화순옹주 홍문과 백송도 빼놓지말고 가보기를 추천한다. 조선왕실의 유일한 열녀문과 우리나라에선 보기드문 희귀한 소나무이기 때문이다.


홍문은 충남 예산군 신암면 추사고택로 261 (용궁리)에 있는 조선시대 유일한 왕실열녀문으로 영조의 딸이자 추사 김정희의 증조모인 화순옹주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정조가 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5호로 정면 8칸, 측면 1칸이다. 근래에 담장을 설치한 이 열녀문은 추사고택 유적지 안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에는 홍문 외에 화순옹주와 김한신의 합장묘, 김정희묘·김정희고택이 있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송이 있다.

이 열녀문의 주인공인 화순옹주는 영조의 둘째딸로 당시 영의정 김흥경의 아들인 한신과 혼인하였다. 13세 때 화순옹주와 결혼한 김한신은 월성위에 봉해졌고, 잘 생기고 총명하여 영조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오위도총부도총관·제용감제조를 지냈으며, 1758년 사도세자와의 말다툼 끝에 벼루를 맞고 39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화순옹주는 이에 격분하여 영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4일 동안 식음을 전폐한 뒤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두산백과 등에는 10일로 되어있으나 홍문앞 표지판에 쓰인 설명이 더 정확하리라 본다) 영조는 화순옹주의 정절을 기리면서도 부왕의 뜻을 저버린 불효라 하여 정려를 내리지 않았으나, 뒤에 정조가 내렸다고 한다.

영조는 인간적으론 참 불행한 사람이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끼던 딸은 아비가 살라고 애원을 해도 죽어버리고, 왕좌를 이을 유일한 아들은 살려달라고 간청을 했어도 기어코 뒤주 속에 넣어 죽게 만들어 자식들을 모두 앞세웠으니 말이다.

홍문의 묘막터 정문 위에 “烈女綏祿大夫月城尉兼五衛都摠府都摠管 贈諡貞孝公金漢藎配和順翁主之門 上之七年 癸卯一月十二日 特命旌閭(열녀수록대부월성위겸오위도총부도총관 증시정효공김한신배화순옹주지문 상지7년 계묘 1월12일 특명정려)”라고 판각되었다. 묘막터는 53칸이었다고 하나 현재는 불타 없어지고 주춧돌만이 남아 있다.

홍문 뒤로는 백송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백송의 유래와 특징, 추사 김정희가 남긴 작품들을 주제로 한 조각품들, 사이사이에 젊은 백송들로 꾸며진 공원이다.

보통의 소나무가 잎이 2개씩 달리는 것에 비해 백송은 잎이 3개씩 달리고, 눈비늘이 일찍 떨어지며 길이가 7~9mm 넓이는 1.8mm 이다. 꽃은 암수한그루이며 수꽃은 타원형, 암꽃은 난형이고 5월에 개화하고 10월에 열매를 맺는다. 솔방울 크기는 길이 6cm, 넓이 4.5cm 로서 달걀 모양 이고 50~90개의 열매조각이 있다. 열매조각은 갈색이고 옆으로 난 주름살이 있다. 종자는 길이 9~12mm, 넓이 7~9mm 로 검은빛을 띤 갈색이지만 반점과 날개가 있다.

줄기에 하얀빛을 띄고 있는 백송은 중국북부 지방이 원산지로 우리 나라에 몇 그루 없는 희귀한 수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백송의 번식이 어려워 현재 남아 있는 백송은 대부분 조선시대에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사람들이 가져온 것이다. 그래서 오래된 백송은 대부분 서울 경기 지역에 남아있다. 원효로(제6호), 재동(제8호), 서울 조계사(제9호), 고양 송포(제60호), 이천 신대리 백송(제253호) 등이다.

예산의 백송은 천연기념물 제 106호인데 백송공원에는 아무리 찾아도 추사가 직접 청에서 가져온 백송은 없다. (우리는 멋모르고 공원을 몇 번이나 돌며 한참 찾았다. 모르면 손발이 고생이여~--;;)

그 백송은 홍문과 백송공원을 지나 300m쯤 (추사고택에서는 600m쯤) 북쪽으로 올라가면 왼쪽으로 허리를 살짝 튼 채 높다랗게 서있는 백송을 볼 수 있다. 백송의 자태도 멋지지만 주변에 호위하듯 둘러선 소나무들도 웅장한 멋이 있다.

예산의 백송은 추사선생이 25세 때 청나라 연경에서 돌아올 때 백송의 종자를 붓대 속에 넣어가지고 와서 고조부 김흥경의 묘 입구에 심었던 것으로, 수령이 200년 가량 되었다. 이 백송은 추사 김정희 집안의 상징처럼 여겨진다고 한다.

나무껍질은 거칠고 흰색이 뚜렷하며 주변의 어린 백송들과 함께 자라고 있다. 원래는 밑에서 50cm부터 세 줄기로 자라다가 서쪽과 중앙의 두 줄기는 부러져 없어지고 동쪽의 줄기만이 남아서 자라고 있다. 지금은 노령목으로서 수세가 쇠퇴한 편이지만 나무의 크기는 높이 10m, 가슴높이의 줄기둘레 1.9m이고, 수관폭은 사방 12m 정도로 발달하여 있다.1980년도에 줄기의 피해 부분을 외과 수술하여 치유하였고, 생육공간을 넓게 해주어 철저하게 보호, 관리하고 있다​.


어제로 추분이 지나면서 이제 점점 밤이 길어지는 계절에 들어섰다. 무르익어가는 이 가을에 부부사랑이 애틋했던 화순옹주의 열녀문에서 옛 선현이 남긴 사랑의 흔적을 찾아보고, 고고한 자태로 하얗게 빛나며 홍문과 추사고택을 내려다보는 200년 수령의 백송을 알현해 보는 건 어떨까?


* 추사고택이 궁금하시다면

https://brunch.co.kr/@malgmi7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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