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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Dec 20. 2021

달라진 제사풍경

코로나시대의 제사

코로나 첫 해였던 작년엔 제사 2주 전부터 생선 사다가 손질해 말려놓고, 물김치 담고, 각종 나물도 양껏 물에 담가 불려놓으면서 제사준비를 착착 하다가...


제사를 사흘 앞둔 날 어머님께서 고민끝에 용단을 내리시길,


"이라고 전염병이 창궐할 때는 귀신도 조심해야재. 죽은 사람 받드느라 산사람 코로나 걸리믄 안된께 올해 제사는 접자!" 그리하여 아버님 돌아가신 1997년 이후 23년간 쭉 지내오던 제사를 한 해 건너뛰었더랬다


그런데 올해는 작년보다 코로나가 더 심해진 상황이지만 제사는 지내기로 했다. 다만 멀리 사는 아가씨들은 오지 않고 우리 식구들끼리만 하기로.


올해 유난히 안 좋은 일들이 많아서 이게 다 아버님 제사를 안 지내서 생기는 일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종종 들곤 했던 나는 대환영이었다.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제사를 지내며, 우리 가족 잘 살펴주시라고 아버님께 빌 작정이었다.  


"올해는 뭐 많이 준비하지 말고 딱 한 가지씩만 올려서 제사 흉내만 내자잉?"


하신 어머님은 일주일 전 시내를 다녀오시던 날, 제수용 조기랑 병어를 사오시며 제사준비를 시작하셨다. 미리미리 나물도 불려놓았다 삶으시며 제삿날을 기다리셨다.


나는 제사 이틀 전, 1박 2일에 걸쳐 마트 세 곳과 재래시장, 동네슈퍼를 열심히 돌아다니며 박스 가득가득 장 봐다가 제사 당일 오전, 어머님과 커피 한 잔씩 하고  요리하기 시작!

건강을 많이 회복하신 어머님께 나물과 생선찜을 맡으시고,(식혜는 하루 전에 완성) 나는 전 종류와 탕, 적을 맡았다


평소 같으면 오후 4시쯤은 되어야 끝날 요리

얼추 1시 전에 끝났다. 식구가 적으니 우선 음식 양이 적었고, 가장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동그랑땡은 시중에 냉동으로 조리된 것을 사다가 부치기만 해서 간단했다. 늘 다섯 가지 이상 하던 전의 종류도 이번엔 딱 세 가지만 해서 올리기로 해 더더욱 간단쓰!


"식구가 적은께 이라고 빨리 끝난다야. 인자 점심 때 됐는디 다 해부렀네~"


"그러게요. 제사 지낸 이후로 제일 빨리 요리가 끝난 날이네요.


"딸네들 오믄 그것들 나중에 집에 갈 때 나물이고 전이고 싸줌시롱 집에서도 좀 먹어봐라~ 해야 한께 뭐든 많이 해야 하는디, 우리 식구들밖에 없응께 조금씩만 해도 된께 편하긴 하다~ㅎㅎㅎ"


말씀은 이렇게 하셔도 어머님은 나중에라도 다녀갈 아가씨들을 위해 불려놓은 나물 중 반 정도는 따로 물 빼서 보관해놓으셨다. 제사 일주일 전에 영광시이모님께서 고사리며, 박나물이며 귀한 나물들을 왕창 보내주셔서 아가씨들도 맛보이고 싶으셨던 것이다. 말려진 채로 주면 아가씨들 해먹기 성가시니 상황봐서 아가씨들 내려오면 그때그때 해서 주실 생각인 듯


시댁식구들은 어머님 생신과 아버님 제사 때만 모이는지라 1년 동안 아가씨들 얼굴 볼 일이 한 해에 두 번을 넘기기 어려웠다. 그나마 작년엔 아버님 제사를 안 치뤄서, 올해는 어머님 생신모임을 따로 하지 않은 탓에 아가씨들 얼굴을 한 번씩밖에 못 보았다. 딸들 입장에선 엄마얼굴 보고 싶을 텐데, 오빠랑 새언니가 부담될까봐 보고 싶다고 마음대로 와보지도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우리 친정부모님은 지금까지 고향집에서 두 분만 살고 계시니 언제든 내가 시간 나고, 보고 싶을 때면 찾아갈 수 있지만 동생네 집에서 살고 계신다면 그게 쉽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집 제사 전통은 제삿상에 절 올릴 사람만 모이면 제사를 지내고 저녁을 먹는 것이다. (제사 많은 친정은 지금도 밤 12시까지 기다렸다가 하는지라 아빠가 아시면 깜짝 놀라실 일이지만 각자 집안 풍속대로 하는 것이지요~ 난 이 시댁풍속이 꽤나 마음에 든다^^)


남편 퇴근시간에 맞춰 제삿상을 차리기 시작해, 7시쯤부터 향불을 피우고 남편 혼자 절을 했다. 예전 같으면 두 사위에 손주들까지 웅성웅성 모여 차례를 기다려 절을 했을 텐데, 이번엔 절도 단촐했다. 마침 기말고사 기간인 아들이 시험 준비로 학원에 잡혀서 언제 올지 모르는 상황이라 마냥 기다릴 수가 없었다.


"작년에 건너뛰어서 올해는 아버지가 친구들 약심 데리고 오셔서 자실 것이다. 친구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양반이라 오늘 내 제삿날이라고 친구들 불러서 우루루 오시겄지~ 요즘 귀신들은 제삿상에 프라스틱만 짠뜩 올라와서 먹으려다가 이빨 깨지는 줄 알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는디 우리집은 그럴 일 없응께."


"왜 플라스틱만 상에 올라와요?"


"뭐 제사 치르기 귀찮응께 모형으로 만든 프라스틱 쪼가리들만 올려놨능갑재. 근디 진짜로 그러겄냐? 다 웃자고 하는 말이재~


어머님말씀에 절 올리고 난 남편이 한 마디 한다


"나는 종이에다 사진 프린트해서 올릴 거라 이빨 아플 일은 없겠네."


"종이에다 프린트를 왜 해?"(나)


"어머님 계시니까 이렇게 거하게 상 차려서 하지, 어머님 돌아가시믄 아버지 제사는 간단하게 형식만 차릴 거야. 너두 편하고 좋지 뭐~


"그럼 어머님 제사도 그렇게 할 거야?


"아니~~~ 엄마 제사는 잘 차려서 해야지!"


"아이구 뭔 소리냐? 내 제사는 치르지 말라고 진작에 말했는디! 죽으면 그걸로 땡이여. 절대 제사 지내지 마라. 니 아버지 제사도 내가 살아있응께 하는 거재. 나 죽으면 다 하지 마라.


"엄마는~ 그럼 동생들 얼굴 언제 봐요? 엄마 제사 핑계로나 모일 텐데.


"참 어머님도~ 제사는 지내야죠. 아버님 제사랑 어머님 제사를 하루로 합쳐서 하라고 하셨던 건 기억나는데, 언제 또 제사 지내지 말라로 바뀌셨대요?


"니들 복잡시럽게 뭔 제사여. 동생들 보고 싶으믄 그냥 따로 날 잡아서 만나믄 되재.


"에이~ 어머님 살아계셔도 1년에 두 번을 볼까말까인데, 어머님 돌아가시면 제사 핑계라도 대야 만나지죠~"


"그라까? 뭐 그람 그건 니들 알아서 하고. 내 원칙은 제사 지내지 마라다."


어머님은 아버님 제사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면서도, 정작 당신의 제사는 자식들 고생할까봐 못하게 하시는 그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요즘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라는 책을 읽고 있다. 2020년 6월 출간 이후 독자들 사이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아온 책이다.


생전 '형식만 남고 마음이 사라지면 고생일 뿐'이라고 제사를 반대했던 심시선. 나 죽어도 절대 제사 따위는 지내지 마라고 한 심시선 여사의 유언을 고대로 지켜온 자식들이 10주기를 맞아 엄마 제사를 지내보자고 의견이 모인다. 집에서 하는 평범한 제사 대신 심시선이 제일 처음 사진신부가 되어 갔던 하와이로 단체여행을 가서 어머니이자 할머니인 심시선이 좋아할만한 물건을 제사상에 올리기로 하면서 각자에게 벌어지는 일들이 펼쳐진다.    


우리나라의 제사 전통에 신선한 물음을 던지는 소설인데, 어머님이 제사 지내지 마라는 말씀을 한 순간 딱 이 소설이 떠올랐다, 어쩌다 보니 마침 읽고 있었던. 소설의 1/3을 남겨놓은 상태라 아직 결말은 모르지만 읽은 사람들의 호평이 많으니 꽤 괜찮은 결말이 나오리라 예상한다.


이 소설을 다 읽고도 오랜 시간이 흐른 뒤겠지만, 어머님 제사는 심시선여사의 제사 방식을 따라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10주기 때만 할 게 아니라, 매년 어머님께서 좋아하시고 어머님을 추억할만한 음식과 물건들로 채운 제삿상을 차린 모임이길 바란다.


아버님 제삿날엔 첫눈도 내리고 보름달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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