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3일 목요일 아침에 식사를 하시다 갑자기 울렁증이 나고 어지럽다고 하시더니 바로 토하시고는 거실에 쓰러지듯 누우셨다.
의식은 있으신 상황이어서 어머님은 이렇게 누워있다 보면 괜찮아질 거라고 극구 병원을 안 가시겠다고 고집을 부리셨지만, 작년 5월 8일에 급성뇌경색으로 쓰러지실 때랑 비슷한 상황이라 119에 신고해 구급차를 불렀다.
남편이 아직 출근전이긴 하나, 어머님이 기운없이 드러누우셔서 꼼짝하시질 못하니 일반 차에 태울 수 없는 상황이었고, 출근시간대라 우리차로 갔다간 출근길 정체에 밀려 빨리 응급실로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화 뒤 10분만에 구급차가 도착해 어머님을 들것에 태우고 다니시던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역시 구급차로 가니, 보통 30분 이상 걸릴 거리를 10여분만에 달려서 도착해 접수하고 부랴부랴 각종검사를 실시했다. 심전도, 혈압, 피검사를 거쳐 엑스레이와 MRI까지.
검사결과 다행히 뇌에는 이상이 없으시고, 전해질수치가 많이 떨어지셔서 그런 거라고 입원해서 집중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상태에서 조금만 더 늦었으면 뇌부종이 와서 돌아가실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작년 6월에 전해질수치가 떨어지셔서 3주간 입원을 하셨더랬고, 이후로 쭉 외래진료를 받으시다가 12월 21일에 신장내과 교수님이 이제 약을 더 안 드셔도 될 것 같다고 하셨더랬다. 그래서 전해질 수치 조절해주는 호르몬 없이도 괜찮으신지 두 달 뒤에 보자며 드시던 약을 끊었는데, 그때부터 서서히 전해질 수치가 떨어져서 이렇게 위험수치까지 오신 것이었다. 전해질쪽은 이제 걱정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 뇌경색이나 뇌출혈쪽만 걱정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전해질 수치가 떨어지면서 두통도 오시고, 혈압도 오르시고, 걷는 게 예전같지 않으시고, 기력도 없어지신 것이었다. 전해질 수치가 떨어지면 뇌의 물주머니가 커지면서 신경이라든지 다른 것들을 압박하므로 그렇게 된다고 한다. 뇌경색이나 뇌출혈은 아니지만 결국 뇌의 문제였다. 뇌에서 전해질수치를 조절해주는 호르몬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 전해질이 낮아지면서 이런 문제가 생겼으니 말이다.
주치의는 어머님 상태가 간호간병통합병실을 사용하실 수 있는 상황이니 거기로 바로 입원하시면 된다고 하셨는데, 작년 12월부터 코로나시국이 더 심각해지면서 병원지침이 바뀐 걸 모르시고 한 말씀이었다.
응급실 간호사는 어머님의 코로나 검사결과가 나오긴 전까진 일반 병실을 못 쓰고 격리병실을 쓰면서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처음엔 보호자가 옆에 없어도 된다고 해서 어머님 응급실에 계신 동안 어머님 쓰실 물품만 챙기러 후딱 집에 다녀왔는데, 나중에 격리병실 올라가보니 보호자가 옆에 있으며 하룻밤을 보내야 할 상황이었다. 응급실 간호사도 모르고 있었던 부분이었다.(의사는 병실 상황을 모르고, 응급실은 병동상황을 모르고 ㅜㅜ)
그리고 어머님뿐만 아니라 나도 같이 코로나검사를 받아서 둘 다 음성이 나와야 일반병실 이동이 가능하고, 현재로선 통합병실에 자리가 없으니 며칠 더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집에 가서 내 물건도 챙겨오고 코로나검사도 받아야 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병원을 세 번씩 왔다갔다 하며 정신없이 하루가 가버렸다.
어머님은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또 토하셨고 금식조치가 내려졌다. 정확한 전해질 수치를 측정하기 위해 외부에서 영향을 주는 요인도 차단할 겸 수분이 들어가면 안 되니 물 한모금도 못 드시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난 또 옆에서 밤새 간병을 해야 할 처지라 빈속으로 있을 수는 없어서 간호사실에서 보호자식 신청하실 거냐고 물으니 대뜸 하겠다고 했다.
저녁 식사 나올 땐 4인실인 격리병실안에 우리만 있어서 어머님 바로 옆이 아닌 비어있는 다른 침상쪽으로 가서 식사를 마칠 수 있었지만, 아침식사가 나올 무렵엔 밤새 응급실 통해서 격리병실 들어온 분이 3분이라 병실이 꽉 차서 어머님 바로 옆에서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 회진시간(8~9시)이 지나면 상태봐서 금식이 풀릴 수도 있을 테니, 그럼 그때 보호자식으로 나온 식사를 어머님께 드리면 되겠다 싶었는데(격리병실은 도시락으로 포장되서 식사가 나오니 보관이 가능하다) 아직은 더 금식을 하셔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어머님 병상의 식탁을 펼치고 나 혼자 먹어야 했다.
"어머님은 어제부터 쫄쫄 굶으셨는데 저 혼자 먹어서 죄송해요."
"아니다. 그런 소리 말아라. 너도 못 먹고 있으면 내가 월매나 속상하겄냐? 나 신경쓰지 말고 먹거라 잉."
조심조심 밥을 떠먹고 반찬을 집어먹고 있는데 어머님이 또 그러신다.
"니는 먹는 소리도 이뻐야. 너가 뭐 먹으면 아삭아삭 씹는 소리가 참 맛있게 들려~"
반찬 가운데 깍두기가 있어서 오독오독 씹고 있는데 어머님께서 그 소리가 듣기 좋다고 칭찬을 하시는 거였다. 난 그래서 어머님 듣기 좋으시라고 열심히 깍두기를 씹었다.
"작년에 어머님 처음 쓰러지시고 병원 계실 땐 저도 입맛이 하나도 없어서 며칠 동안 뭘 먹지 못했는데, 이번엔 아무렇지도 않게 이리 먹네요^^;"
"그땐 너도 놀라서 그랬겄재. 그라고 지금은 간병하는 니가 기운차리고 있어야 일을 본께 잘 묵어야재~"
그 말씀에 다른 반찬들도 최대한 맛있게 먹고 국도 후루룩 마시면서 도시락에 담긴 음식들을 싹싹 비웠다. 평소 집에서 먹는 아침밥의 두 배는 될 양을 꾸역꾸역 다 먹었다.
다행히 어머님 전해질수치가 많이 올라가서 점심부터는 드셔도 된다고 하여, 어머님께서도 점심 때는 흰죽과 이런저런 반찬을 곁들여서 잘 드셨다. 어머님 드시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참 좋았고, 난 아침 먹은 게 여적지 소화가 안 되서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점심 보호자식은 신청하지 않았다.)
사실 난 어머님께서 "니는 밥 먹는 소리도 이뻐야~"라고 하신 순간 이미 배가 불렀다. 사람은 칭찬만으로도 배가 부르다는 걸 어머님은 잘 아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