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엔 친정 가기 전인 시월 첫 날 밭에 다녀온 뒤론 비가 자주 와서 텃밭을 듬성듬성 다니고 있다. 그럼에도 텃밭에 갈 때마다 텃밭이웃들이 베풀어주시는 것들을 착실하게 나눔받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날 보면 뭐든 주시고 싶어하는 분들 덕분에 애호박, 대파, 고추, 가지, 깻잎들에 이어 예쁜 실내화도 받고, 오늘은 귀한 땅콩도 얻었다.
땅콩을 주신 분은 구청에서 임대하는 텃밭이 아니라, 그 아래 본인의 땅을 갖고 계신 분이다. 밭에 따로 수도시설이 없다 보니 매번 집에서부터 페트병에 물을 채워서 손수레로 끌고 다니시는 걸 본 내가 공동텃밭하는 사람들이 모인 텃밭대표방에 회비로 만원만 내시면 텃밭 수도를 편하게 이용하실 수 있다고 했더니, 바로 회비를 내시고 공동텃밭 수도를 이용하고 계신다. 사실 주변에 개인 텃밭하시는 분들 가운데는 따로 이용료 내지 않고 무단으로 갖다 쓰시는 분들도 있으신데, 이 분은 사용료라도 내야 마음 편히 쓸 수 있겠다며 내신 거였다. 그게 4년 전쯤 일이다.
밭이 떨어져있다보니 그 뒤로는 자주 뵙지 못했고, 코로나로 인해 같이 텃밭을 경작하는 모둠원들과도 만나기 어려워지면서 통 못 뵙다가 얼마전 텃밭 가는 길에 아파트 옆 솔숲길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반갑게 인사를 드렸더니,
"아유~ 이게 누구유? 먼저 인사하니까 알았지 모르고 지나칠 뻔 했네. 마스크를 쓰고 다니니 사람을 잘 몰라봐~ 전에도 고구마 캔 거 좀 주고 싶어서 비슷하게 생긴 사람한테 인사를 했더니, 딴사람이더라구요. 내가 실수했지~"
"어머 그러셨어요?"
"내가 그때 일 고마워서 뭐든 챙겨주고 싶었는데 만날 수가 있어야지~. 이렇게 만나니 반가워요."
"저두 반가워요~ 코로나 터지고는 처음 뵙는 거 같아요."
"그러게. 나는 코로나 이후론 어디 모임에도 안 나가고, 주구장창 밭에서만 사니까 코로나 한 번도 안 걸리고 잘 지냈어요. 다음에 만나면 내가 뭐 좀 줄게요~ 잘 가요^^"
밭의 갈림길에서 이런 대화들을 하고 헤어졌는데
오늘 텃밭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다시 그분을 만나게 되었다.
"마침 잘 만났네. 애호박 좀 가져갈래요?"
"이번에 시골 다녀왔더니 애호박이 집에 많아요~.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럼 땅콩을 좀 줄까? 오늘 캤는데.."
"땅콩이요? 그건 없어요. 좀만 주시면 잘 먹을게요~"
그랬더니 얼굴이 환해지시면서, 바퀴 달린 손수레에서 이것저것 꺼내시더니 밭에서 갈무리해서 오신 땅콩을 비닐 봉지 가득 담아주시는 거다.
"조금만 주세요~ 너무 많이 주시네요. 힘들게 키우신 건데..."
"아니야. 내가 주고 싶어서 그래요. 이거 껍질 까면 얼마 되지도 않아~"
"요즘은 국산 땅콩 비싸서 잘 사먹지도 못하는데, 덕분에 귀한 땅콩 잘 먹겠습니다. 감사해요~"
"저기 6단지 앞에 있는 산이 우리집 임야인데, 난 따러 갈 시간도 없어서 다른 사람들 따라고 냅둬요. 글구 우리 며느리가 친정 한 번씩 다녀오면 밤을 이따만큼 갖다주니까 안 줘도 돼요~"
"에고, 다 있으시네요. 저도 뭐 좀 드리고 싶은데"
"우리 남편이 고마운 사람한테는 꼭 갚으라고 그랬어. 내가 그간 참 고마웠는데, 마음만 갖고 있다가 이렇게 뭐라도 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 그니까 신경쓰지 말고 맛있게 먹어요~"
이렇게 말씀하시고 갈길 가시는 그분^^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져 돌아오는 길
어찌나 땅콩을 많이 주셨는지,
집에 들고 오면서 팔 빠지는 줄~
6단지 앞산은 산밤나무가 많아서 우리 동네 사람들이 가을만 되면 새벽 일찍부터 밤 주우러 다니는 곳이다. 어머님도 오래전 입주 초기엔 친구분들과 함께 아침 일찍 앞산에 가서 밤을 한 봉지씩 주워오시기도 했다.
반면 4단지 앞산은 산너머에서 식당을 하던 집의 소유인데, 거긴 사람들이 아파트 앞산이라 별 생각없이 지나만 다녀도 왜 남의 사유지를 다니냐고 식당 할아버지가 호통을 치는 바람에 동네 인심을 잃었다. 동네사람들 상대로 음식장사를 하면서도 어떻게 저러나 싶어 점점 사람들이 발길을 하지 않게 되어 결국 식당도 문을 닫은 것으로 안다.
그런데 6단지 앞산은 사람들이 아무리 산책을 다니고 밤을 따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어서 주인이 없거나, 있어도 멀리 살아서 산에 신경을 안 쓰는 사람인가 보다~ 했는데, 바로 한 동네 사시면서도 자신의 소유권을 내세우며 뭐라 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인심을 팍팍 쓰신 거였다.
남에게 베푸는 걸 즐기는 사람은 평소 생활에서 티가 나고, 얼굴에 드러난다. 베풂의 미덕이 그분들의 얼굴에 여유로움과 평온을 선물한 게 아닐까 한다. 그런 분들은 왠지 가까이 하고 싶고, 함께 있으면 즐겁고, 물질적인 것이 아니어도 마음으로 얻는 것들이 꼭 있다. 반면 욕심이 과하고 자기것만 챙기려는 사람은 얼굴에 그런 이기심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래서 별로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재미난 것은 오래 텃밭을 하다보면, 자기것만 챙기던 사람도 어느 순간 남에게 베풀기 시작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난 속으로 감동한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내도록 사람을 길들인 땅에 감사하게 된다.
내가 때로 게을러지고, 그래서 풀이 넘실대도록 밭을 방치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텃밭신청기간이 되면 사람들을 모아 올해도 함께 잘 해보자고 으쌰으쌰하며 텃밭을 하는 건, 인생배움터 땅이 이처럼 말없이 주는 감동과 감사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