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가 내린다는 절기 '상강'을 일주일 앞두고, 지난 주부터 밭에서 고구마를 캐시는 분들이 늘었다. 4월에 일찍 심으신 분들은 9월부터 캐기도 했으나, 고구마는 서리 내리기 전에 캐는 게 보통이다.
난 이웃에서 잘 자란 고구마순을 얻어다 장마철 앞두고 심다 보니, 봄가뭄이 심해 고구마순이 잘 자라지 않은데다 장마가 늦어져서 올해는 7월에야 심었다. 땅속에서 고구마가 영글 때까진 100일 이상을 기다려줘야하기 때문에 상강이 지난 10월 말이나, 11월 초순에 캘 계획이다. 부디 서리가 좀 늦게 내리길 바라고 있다.
고구마는 구황작물이라 다른 농작물에 비해 손이 덜 가면서도 수확은 많이 나오는 편이다. 그런데 올해는 고구마가 한창 자랄 시기에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서, 물 주느라 무진장 애를 썼음에도 고구마 수확이 영 시원찮다고 텃밭이웃들이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셨다. 봄에 수확하는 마늘만큼은 아니어도, 고구마값이 올해도 꽤 비싸겠구나 싶은 참에 광주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글을 쓰시는 페친 이혜숙 작가님의 글이 눈에 띄었다.
평생 같이 농사짓던 할머니가 얼마 전 돌아가시고, 고구마밭에서 우두망찰 앉아있는 할아버지가 그간 농사지은 것을 도둑 맞듯 빼앗기는 것을 보다 못한 아주머니 한 분이 아파트 총무랑 발벗고 나서서 고구마를 캐어 판매까지 착실하게 한 다음, 할아버지께 고구마 판 돈을 드린 이야기다. 읽다보면 마지막에 함께 "만세!"를 외치고 싶어지는 글이다.
난 이런 '아줌마의 힘'이 좋다. 짠한 마음으로 정의(?)를 구현하는 억센 아주머니들 이야기가 참 좋다.
* 고구마 사진 아래는 이혜숙 작가님의 글입니다. 널리 공유하고 싶어서 작가님의 글을 옮겨봅니다
아는 언니가 화급한 소리로 전화를 했다.
"어야~ 불우이웃돕기 좀 하소.
호미랑 상자랑 가지고 와!"
그래서 갔다.
남의 땅 한 줄 얻어 부치는데,
이웃땅 노인이 딱하단다.
고구마 한 줄 심은 언니가 순도 먹고, 고구마도 먹을 양으로 심어 캐는데 이웃할아버지가 "내 고구마 좀 팔아 주시오" 했다는 것이다.
고구마밭에 와 넋 놓고 앉아있던 그 분은
나란히 나와 일하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단다.
캐기는 해야겠고, 끌고 갈 힘도, 박스도 없고,
그냥 캐서 담아가라 했는데...
이웃밭 언니가 보니까, 여시같은 젊은 여자들이 좋은 것으로 잔뜩 담아가며 만 원 한 장이나 주고 가더란다.
언니와 언니네 아파트 총무가
이 밭을 가로챘다.
"할아버지, 가만 있어요!"
총무는 손주를 보러 온 사람이고,
언니 역시 이곳이 고향이 아니다.
총무도 나도 언니도 같이 간 내 친구도 낑낑대며 캤다. 좋은 것만 나오는 것이 아니고, 목침만한 거, 실같은 거, 굼뱅이가 먹은 것 등이 섞여 있었다. 그나마 실수로 호미날에 찍힌 것도 많았다. 그러니까 시장까지 온 것은 농민이 골라서 담는 거였다.
전직 은행원이였다는 총무가
저울을 놓고 얄짤없이 달아 박스를 만들었다.
여기저기 흙 잔뜩 묻혀 왔는데 언니가 전화를 했다.
"어야~ 그런 총무 첨 봤네. 저녁까지 캐고 사람 불러 팔아, 우리가 사십만 원 만들어 할아버지 주머니에 넣어드렸네. 그리고 찍히고 작은 것은 더 싸게 팔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