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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Apr 05. 2024

남자는 언제 철드는가?

가자미눈 남편

고깃국을 뜰 때마다

남편은 가자미눈이 된다


아들 국그릇이랑 내 거랑

너무 차이가 큰데?


고기가 적어서

세상 서럽다는 듯

한 말씀하신다


숯불에 땀 뻘뻘 흘려가며

고기를 구워서 앞접시에

먹기 좋게 잘라줬더니

싫은 소리를 하길래


흥!

안 잘라주면

나야 편하지~ 하고

아들 앞접시에다만

고기를 잘라줬더니


이틀 지나 하는 말이

아들 거는 고기 크게 잘라주고

나는 고기 작게 잘라주더라?


@_____@;;;

난 똑같이 잘라주었는데!


이래서

옛 어르신들이

남자는 나이를 먹어도 애니라~

큰 아들 키운다 생각하거라~~

하신 게지.


네네

알겄습니다요

히유~~~

남자는 도대체 언제 철이 드나요?




고깃국을 끓일 때마다, 고기를 구워 자를 때마다 아들한텐 고기 많이 주고, 자기는 고기 적게 준다고 툴툴대던 남편이 떠올라 썼던 글이랍니다.


지난주 올린 글에

독자 가운데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나도 남자지만, 여자는 남자를

애 아니면 개로 보더라구요~ --;;"


"에이~ 설마요. 아닐 거예요~"


하고 답을 달았는데,

 역시도 이럴 땐 남편을 애로 보게 되더라구요.^^;;


하지만 얼마 전에 이 생각이

조금은 달라지게 된 사건이 있었답니다.  






환절기에 하루 일교차가 15도가 넘다 보니, 감기가 무서운 속도로 퍼서  병원에 가면 감기환자들이 가득다는 뉴스가 나오던 때였어요.  어린애들 있는 집에서나 걱정할 이겠거니 했는데, 이제 막 만으로 스물이 된 아들도 덜컥 감기에 걸려 3월 중순 토요일에 밤새 앓았답니다. 


금요일 밤에 스무 살 생일 하루 앞두고고등학교 친구들 일곱을 만나 치킨집에서 1차 하고, 자정이 넘어가니 편의점에서 술 사다가 동네 공원에 가서  밤새 부어라 마셔라 했다니, 토요일 저녁부터 열이 오르는 바람에 집에 있는 감기약을 먹어도 열이 떨어지질 않밤이 깊어가고 있었어요.


감기에서 제일 무서운 건 열이라 따끈하게 덥힌 물수건을 머리에 얹어주며 열을 내주느라 들 옆을 밤새 지키다 보니, 안 그래도 못 자던 잠을 거의 못  눈이 때꾼해진 상태였죠. 그 상황에서도 '날이 밝으면 일요일에도 하는 동네 병원에 데리고 가봐야 하는데,  몸상태가 메롱이라 밖에를 못 나가니 어쩌나~ "하다가 역시나 잠 안 자고 안방에서 취미생활 중인 남편이 눈에 들어왔어요. 


아들은 나의 자식이기도 하지만 남편의 자식이기도 하지요. 즉 남편에게도 보호와 돌봄의 의무가 있다는 사실이 퍼뜩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남편한테  밝으면 아들 좀 병원에 데리고 가라고 하니까 이 남 대뜸 한다는 말이,


"다 컸는데 병원쯤은 이제 혼자 가도 되지 않아?"


아니, 이 양반이!

열이 펄펄 끓는 얼라한테 지 혼자 병원 가라고라???

갑자기 없던 열이 확 뻗쳐올랐지만, 진정 진정~ 암 다운! 목소리를 가다듬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어요.


"열이 높으니까 혼자 가다가 어질어질해서 쓰러질 수도 있고, 병원 가서 기다리다가 너무 힘들 수도 있으니 보호자가 옆에 있어줘야지~."


맨날 사랑한다고 부벼대는 아들한테 아빠로서 그 정도도 못해주나 싶어 서운한 마음 확 답니다. 뭐 그리 바빠 보이지도 않고, 내가 어디 밖에서 낳아온 자식도 아닌데...


남편은 나이 오십이 넘었어도, 은행 일 보러 갈 때조차 마눌이 같이 가주길 바라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제 갓 스물 된 아들은 다 컸으니 병원은 혼자  하는 거 아니냐고 하니, 기함을 할 노릇이었죠.


아들이 감기로 골골하면 집 떠나 서울의 좁은 기숙사로 들어갈 생각만 해도 는 벌써 마음이 아프고 신경이 쓰이는데, 남편은 아들이 프건 말건 신경이 안 쓰이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아침 되어 밥을 먹고 나니,

밤새 무슨 대오각성이 있었던 것인지 남편이 서둘러 아들을 잘 챙겨서 병원 데리고 답니다. 진찰받고 주사도 맞고 약도 타서 먹은 덕분에 아들은 많이 좋아진 상태로 집에서 쉬다가, 아빠가 운전하는 차에 타고 기차역까지 무사히 도착해 서울행 기차를 탔더랍니다. 




남편이 매일 하는 일과 가운데 하나가 구글포토에 뜬 '과거의 오늘' 사진들을  가족방에 공유하는 것이에요. 아들이 서울로 떠난 다음날 아침 가족방에 14년 전 오늘 사진이 올라왔는데... 그때도 아들은 아파서 아빠품에 포옥 안겨 있군요.


14년전 남편과 아들 사진 투척!둘 다 복장 불량이네요^^


애기 때부터 쭉 아빠를 무서워했던 아들은 아빠가 품에 안기만 하면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더랍니다. 그런데 이 사진처럼  아빠품에 얌전히 안겨있는 건 아들이 아파서 발버둥 칠 힘이 없다는 거죠. 얼마나 아팠나 축 늘어져서 아빠품에 착 달라붙어 있는 아들을 보니, 그때 생각이 나며 측은지심이 마구 솟는 사진이었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아들은 아파서 기운이 없어 보이는데, 아들 품에 안은 편은 세상 기분 좋 얼굴인 거예요. 평소랑 다르게 자기한테 착 안겨있는 아들이 너무너무 나 봅니다. 발버둥 치며 벗어나려는 아들보다, 아프더라도 자기 품에 안긴 자식이 너무 좋았던 남편의 14년 전 과거 사진을 보면서, 자식 아프다고 잠 못 자고 돌보는 게 엄마 마음이면, 아프더라도 자기 품에 쏘옥 안기는 자식이 예쁜 게 아빠 마음이런가 싶었어요. 울면서 자식을 안는 게 엄마라면, 웃으면서 자식을 안는 게 아빠인가 싶고요.  


14년 전이나 지금이나 들은 내게 애기와 같은 존재여서, 아프면 여전히 신경 쓰이고 "아이구 내 애기, 아프지만 마~" 하는 마음이 들지만, 남편에게 아들의 존재는 같은 남자로서 약간의 질투를 느끼는 경쟁상대 여기는 것도 아이를 보는 아빠 마음은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럼에도 다 큰 아들이 아플 땐 부모로서 어떤 도움을 줘야 하는지 알게 되면, 누구보다 어른답게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는지 누가 알려주지 않아서, 아빠로서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라서 하지 않은 것이지 알고도 하지 않은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러니까 남자가 철들게 하려면

좀 귀찮아도 하나하나 친절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는 것, 알려주지 않으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는 것, 이 두 가지를 꼭 기억해야겠더라구요. 아시겠쥬?^^




덧) 한 남자분이 그러셨어요.


"나랑 우리 아빠랑 내 아들이랑 집안의 모든 남자들을 꼼꼼히 분석해보니, 남자는 죽을 때까지 철부지 애야"

 

그래서 결론은 남편을 아이 대하듯 칭찬해주고, 격려해주고, 잘난 척하면 들어주고~ 그러면 서로가 편해질 거라고 하네요.


다른 분들 생각도 그러신가요?

제 생각엔 이 방법도 꽤 슬기로운 남편사용법 같은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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