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60대의 전문직 여성 두 분이 자신의 일을 그만 두셔야 했는데,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가 병든 남편을 돌보기 위해서였다.
"내가 이렇게 아픈데 일 그만두고 내 옆에 있어주면 안 되겠냐?"
고 호소하는 남편의 간곡한 청을 받아들이신 것이다. 그리 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
그런데 반대의 경우라면 그게 과연 가능할까?
해외토픽기사에서는 간혹 접했지만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를 지닌 남자가, 그것도 아직 경제활동을 왕성히 하는 전문직 종사자가 아내가 아프다고 간병하기 위해 일을 그만 두는 경우는 우리나라에서 아직 본 기억이 없다.
며칠 전 아빠가 보내주신 '부부의 정'이란 글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얼마전 병문안을 드려야할 곳이 있어, 모 병원 남자 6인 입원실을 찾았다. 암 환자 병동이었는데, 환자를 간호하는 보호자는 대부분이 환자의 아내였다.
옆방의 여자 병실을 일부러 누구를 찾는 것처럼 찾아들어 눈여겨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환자를 간호하는 보호자 대부분이 할머니를 간호하는 할아버지가 아니면 아내를 간호하는 남편이었다.
늙고 병들면자식도 다 무용지물,
곁에 있어줄 존재는 오로지 아내와 남편뿐이라는 사실을 깊이 느꼈다.
간혹 성격차이라는 이유로,
아니면 생활고나 과거를 들먹이며,
부부관계를 가볍게 청산하는 부부도 있지만..
젊음은 찰나일 뿐,
결국에 남는 것은 늙어 병든 육신만 남아 고독한 인생여정이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때는 잘 나가던 권력자나 대기업가라 할지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권력의 뒤안길에서 그들이 지금 누구에게 위로받고 있겠는가?
종국에는 아내와 남편 뿐일 것이다.부귀영화를 누리며 천하를 호령하던 이들도, 종국에 곁에 있어 줄 사람은 아내와 남편 뿐이다.
이 글을 쓰신 분은 암환자들이 입원한 남자병실에 병문안을 가셔서 병상을 지키는 보호자 대부분이 아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슬쩍 여자병실도 살펴 보니 남편으로 짐작되는 사람들이 곁을 지키더라고 하셨는데...
내가 어머님이 병실에 입원해 계신 동안 느낀 것은 달랐다. 남자병실은 분명 아내로 짐작되는 분들이 보호자로 계신 게 맞지만, 여자병실은 딸이나 아들 같은 자식들이 대부분이었고 어쩌다 젊은 여자 분의 경우에만 남편이 보호자로 계셨는데 알고 보니 자식이 없는 부부였다.
'부부의 정'이란 글을 쓰신 분은 늙고 병들고 나면 옆에 남은 건 아내와 남편 뿐이니 젊은 때 시답잖은 이유로 쉽게 갈라서지 말고, 오래오래 서로의 곁을 지키는 것이 더 현명한 처사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병문안 갔을 때 본 풍경을 예로 든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내가 느낀 현실은, 그리고 많은 분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늙고 병든 남편을 끝까지 지켜주는 사람은 아내가 맞지만,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왜냐면 남편이 아내보다 먼저 세상을 등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으니까. 비록 그럴 마음이 있다고 해도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이 무슨 수로 곁을 지킬까.
심지어 어떤 집은 아내가 남편의 병수발을 10년간 극진히 해서 남편의 건강을 회복시켜놓았는데, 막상 아내가 병 드니 남편이 나몰라라 하면서 자신의 할일을 자식들에게 떠넘겼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 집은 어머님이 돌아가신 이후 자식들이 아버지에게 등을 돌렸다고 한다.
부부는 서로에게 잘해야 하는 게 맞고 서로를 소중히 여겨야 하지만, 특히 남편이 아내에게 더 잘해줘야 하는 이유는 남편의 노후를 책임져주는 것은 아내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더 건강하고 젊을 때 부부의 정을 차곡차곡 쌓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후를 위한 적금처럼 말이다.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우고 난 중년의 부부가 서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더욱 필요한 까닭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