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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May 31. 2024

이해는 어렵지만 고마운 당신

남편 : 난 이 집이 참 마음에 들더라~


나 : 왜?


남편 : 귀신 나올 거 같잖아


ㅡ 삼척 추암해변 능파대 입구 해암정에서



저는 처음으로, 남편은 몇 년만에 추암해변을 두 번째 찾은 상황에서 나온 이야기인데요, 알고보니 남편은 '해암정'을 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에 꼭 들었다고 해요. 남편은 마음에 든다는 소리를 저렇게 참 희한하게도 돌려 말하더라구요.

 


남편의 정신세계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구나~ 하던 참에 이런 일도 있었답니다.


얼마 전부터 디카시 수업을 듣고 있어요. 디지털카메라(폰카 포함)로 찍은 사진에 5행 이내의 짧은 글로 자신만의 생각과 감상을 시로 쓰는 게 디카시인데요.


우리 또래이신 디카시 시인이자 선생님은 길 가다 마주치는 모든 것이 디카시의 소재가 될 수 있다고 하시면서, 심지어 뱀이 지나가면 그 뱀도 좇아가서 폰카로 찍으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전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며칠 전 진안 죽도에 놀러갔다가 풀이 우거진 숲속 길에서 이 죽은 듯 길 한가운데 가만히 있자, 나무 기를 찾아 들고 뱀을 건들다간 뱀이 도망가니 좇아가면서까지 건들던 남편이 떠올랐답니다.


뱀을 사진으로 찍겠다고 하는 시인의 감성과 뱀을 어떻게든 건드려보겠다는 남편의 장난끼 사이에 괴리를 느끼면서요^^;;



며칠 전 밤에는 부엌에 웬 파리가 한 마리 날아다니길래 남편을 불렀죠.


"남편~ 파리 날아다녀!"


그랬더니 남편 왈.


"어, 파리 한 마리 지금도 날아다니지? 아까도 날아다녀서 파리채 들고 쫓아다녔는데, 파리는 못 잡고 파리채만 뎅겅 뿐질러 먹었어."


그러면서 부러진 파리채의 행방을 알려주더군요.


"저 녀석이 잡기 힘든 구석으로만 날아다니드라궁~ 재주 좋은 마누라가 낼름 잡아 먹어~"


"내가 뭐 파충류야? 파리를 잡아먹게? 그런 재주는 없네요~"


파리채도 없는 마당에 모기약을 치익 뿌려서 기절시켜서 잡아볼까 했는데, 그 파리 녀석 어찌나 잽싸던지 그것도 시도해보지 못한 채로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답니다.

 

아침에 남편이 일어나자마자 이러더군요.


"마눌, 내가 그 파리 잡았어."


"파리채도 없이 무슨 수로?"


"어떻게 잡긴? 손으로 딱 잡았지~"


별로 믿기지 않는 소리지만 암튼 시끄럽게 날아다니던 파리가 안 보이는 걸 보니 잡긴 잡은 모양입니다.


뱀은 못 잡아도 파리 잘 잡는 남편이면 됐쥬~ 안 그려유?^^



25년을 한 이불 덮고 살아도 그분의 정신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옆에 있어 고마운 당신의 이름은 남편 혹은 아내가 아닌가 합니다.



*  뱀발


근데 이 글 올리고 나서

저녁 때 남편에게 다시 한 번 확인을 한 결과,


파리는 손으로 잡은 게 아니라 책으로 잡았다고 합니다.

책으로 딱 쳤는데 조용해졌는데 안 보이길래 죽어서 어디 구석으로 들어갔나보다 하고 말았는데, 30분 뒤 파리 부활!


다시 애앵~~~ 하고 돌아다니길래, 아까 파리 잡았던 책을 다시 들고 가서 탁 때려서 확실하게 잡은 뒤 화장실 변기에 수장을 시켰다네요~ 음냐.


그 파리 참 명도 길었구먼유~


해암정 아래 길냥이들이 여럿 사는데 남편은 길냥이들도 좋아한답니다. 기다렸다가 꼭 폰으로 찍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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