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즐러는 숨 막히는 감시사회였던 동독에서 비밀경찰로 일하면서 억압되고 기계적인 삶을 사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작가인 드라이만과 그의 연인 크리스타의 삶을 도청하게 되면서 미묘한 변화가 시작된다.
첫 시작은 드라이만의 집에 있던 브레히트의 시집을 가져와서 읽는 장면이었다. 비즐러의 크고 푸른 눈에 흔들림이 감지된다.
두 번째는 드라이만의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 피아노 연주를 들을 때였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세 번째는 헴프 장관으로부터의 강압적인 요구를 받아들이고 집에 와 웅크린 크리스타를 모든 걸 눈치챈 드라이만이 안아주는 장면에서였다. 비즐러는 도청 헤드폰을 끼고 마치 자신이 안아주는 것도 같고 안겨있는 것과도 같은 자세로 그들의 삶 속에 푹 빠져든다.
사랑과 자유, 예술에 대한 끌림은 인간의 본성이다. 비즐러는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점점 바뀌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꼬마가 말한 이웃을 감시하는 '나쁜 사람'에서 혼란스러워하는 크리스타 앞에 직접 나타나 조언을 해 줄 정도로 '좋은 사람'으로.
비즐러의 적극적인 비호에도 불구하고 드라이만과 크리스타는 크리스타의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그 일로 비즐러 또한 한직으로 강등되어 조용한 삶을 이어간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자신도 감시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드라이만은 분단시절자료열람소에서 자신에 대한 자료들을 보고 비로소 진실을 알게 된다.
비즐러가 도청을 통해 드라이만의 삶을 보았듯이 드라이만도 기록을 통해 크리스타와 비즐러의 삶을 지켜보게 된 것이다.
절필했던 드라이만은 그 뒤로 다시 글을 써 새 책을 출간할 수 있었고 책을 통해 비즐러에게 감사를 표현한다.
엄혹한 시대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을 통해 그들은 인간다움을 되찾을 수 있었다. 미처 인지하지 못한 타인의 도움으로 스스로의 삶을 앞으로 밀고 나아갈 수 있었다.
영화의 서두에 드라이만이 인간이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인물이라는 말이 나온다.
누군가의 삶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돕는다는 것이 가져올 수 있는 변화. 이 영화의 감독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인간의 변화에 대한 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