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주차시비

망가질 용기

by 전민재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갔는데 주차할 자리가 없어 근처 공영주차장으로 갔다. 자리가 없어 3바퀴를 돌던 중 나가려는 차 발견. 운전이 미흡하다보니 그 차 주변에서 기다리다가 후진하여 주차하기엔 자신이 없어 한 바퀴를 돌아서 다시 그 자리에 가던 찰나, 차한대가 쏜살같이 그 통로로 들어가더니 그 차보다 2칸 정도 앞에 차를 대놓고 후진하려고 기다리는 게 보였다.

다른 주차자리도 없을게 뻔하고 수술과 항암 치료 후 처음 차를 몰고 나온 터라 생각보다 익숙치 않은 손놀림에 마음이 두근거려 불안이 올라오던 참이었다. 억지라고 상대는 주장하겠지만 나도 쉽게 양보할 수는 없는 처지였다. 싸우는 것보다는 양보하는 게 속편하다고 생각하던 평소와 달리 지금 나는 정말 내 코가 석자인 간절한 입장이었다. 주차되어있던 차가 빠지던 찰나 정방향으로 주행해온 나는 바로 그 자리에 주차를 하려고 핸들을 꺾어 차를 틀고 주차자리로 들어가기 위한 후진을 했다. 그러자 좀 떨어진 거리에서 후진하던 그 차가 큰 소리로 클락션을 빵빵하고 눌렀다. 무슨 말인지 알았지만 나도 질 수 없어 그냥 다시 후진하여 주차를 강행하려고 하자 그 차는 다시 빵빵 거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버티고 그 차도 버티는 신경전이 벌어졌다. 몇 분이 흘렀을까? 그 차가 주차하려고 비스듬히 서있는 내 차 쪽으로 후진을 해오기 시작했다. 하마터면 부딪힐 것 같은 위협을 느낀 나도 클락션을 빵빵 울렸다.


그제서야 그차도 후진을 멈추었다. 화가나기도하고 뭔가 의사소통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차를 그 차 옆으로 운전해서 갔다. 내가 창문을 내리자 그 차 주인도 창문을 내려 나를 빤히 쳐다봤다. 30대쯤 되어 보이는 뽀글한 파마머리의 다소 거칠어 보이는 인상의 남자. 고개를 살짝 아래로 내린 상태에서 눈은 치켜뜨고 들이받을 듯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쪽도 상당히 열받았단 뜻이겠지. 보는 순간 ‘헉’하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민머리에 벙거지 모자를 쓰고 눈썹도 없는 창백한 내 얼굴도 만만치는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차를 그렇게 무작정 후진하시면 어떻게 해요? 부딪칠 뻔 했잖아요.“


"제가 주차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쪽이 모르는 것 같아서 후진한 거예요. 저도 주차하려구요.“


"저도 제가 먼저 도착해서 그 자리에 주차하려고 한 바퀴 돌아서 온 거예요.“


"다른데 주차하러 갔다가 자리가 없어서 다시 온 거잖아요.“


"아니예요. 제가 운전을 잘 못해서 저 자리에 주차하려고 돌아온 거예요. 그 사이에 들어오신거구요.“


"그렇게 운전에 자신이 없으면 나오지를 말던지요.“


"운전을 못해도 꼭 해결해야 될 일이 있으니까 나온 거잖아요.“


갈수록 내 언성은 높아져만 갔고 마지막에는 신경질적인 나의 하이톤 목소리에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얼굴은 빨갛게 달아오르고 울상이 되어버린 나. 남자는 그제서야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위아래로 가볍게 흔들거리면서 옛다 가져가라는 식으로 손짓을 하며 말했다.


"휴.. 그냥 주차하세요. 하세요.“


똥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심정이겠지. 그렇게 남자의 차가 떠나가고 나는 그 자리에 내 차를 세웠다. 그리고 한동안 차안에서 나오질 못했다.


첫째는 내 미숙한 감정처리와 의사소통방식이 부끄러웠다. 가족하고 있을 때나 보이는 감정적인 모습을 처음 보는 낯선 타인에게도 통제없이 드러내다니. 내가 낯설었다.

두 번 째는 험상궂게 생긴 그 남자가 화가 나서 주차장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겁을 주거나 하는 건 아닐까하는 두려움때문이었다. 각자의 차안에 있다는 안도감 때문에 나는 그렇게 내 입장을 큰소리로 격렬하게 얘기할 수 있었을 뿐 그 남자와 직접 대면했다면 그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갈등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내게 참 이례적인 일이 생긴 것이다. 갈등을 피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내 공격성을 마구 표출한 것이다.


한 5분쯤 차안에서 내릴까말까 망설이다가 반납할 책을 챙겨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도서관까지 걸어가는데 얼마나 가슴이 뛰던지. 도서관에서 20분쯤 걸리는 집에 도착하여 주차를 하고 나서야 약간 진정이 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까 그 상황에서 처음부터 그 남자에게 부탁을 해보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니 내가 소리를 지르고 악다구니하듯 내 입장을 얘기했지만 그건 형식이고 결국 내가 그 남자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였다.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암에 걸려 심신이 불안정하고 또 운전에 자신이 없어 제게는 이 주차자리가 너무 절실히 필요하니 괜찮으시다면 한번만 양보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실은 이 말이 하고 싶었던 거였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그 남자의 거친 후진에 열이 받았던 것도 한 몫 하긴 했지만 나도 참 미숙하긴 했다. 다시 한 번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어찌되었든 무사히 내가 하려고 마음먹었던 일을 완결해냈다는 뿌듯함이 올라왔다. 미숙한 방식이었지만 내게는 꼭 필요한 넘어섬 같은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가질지언정 자기 것을 지키는 것. 망가지면서 까지도 내가 원하는 것을 쟁취해 내는 것. 이런 극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깨지 못했을 내 안의 금기 같은 것이었다. 현재의 나로선 최선이었다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해보면서 집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올라왔다.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깜짝 놀라며 어쨌든 주차시비에서도 버틸 줄 알고 내가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칭찬인지 뭔지 아리송했지만 내가 조금은 험한 세상을 혼자 헤쳐 나갈 용기를 내어본 것도 같아서 좋았다. 망가질 용기가 내게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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