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유연성을 키우게 도와준 항암치료
암을 치료하면서 초기에 가장 어려웠던 점 중에 하나는 이율배반적인 것 같아 보이는 2가지를 한꺼번에 수용하고 실행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특히 항암치료의 경우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내 몸속의 정상세포들에게도 독이 되는 약물을 내 몸속에 투여하도록 허용해야하고 심지어 나의 경우는 그 행위를 8번이나 반복해야 했다. 그 행위를 함으로써 내가 받을 수 있는 보상은 5년 혹은 10년이라는 기간 중 6%의 생존률 향상이었다.
처음 종양내과 진료를 갔을 때였다. 내 담당의는 30대로 보이는 젊은 분이었는데 그래서인지 해외사이트를 직접 열어 보여주면서 내 병과 관련된 이력을 입력한 후 생존률 향상 데이터를 직접 내 눈으로 볼 수 있게 배려했다. 그런데 이런 친절하고 세심한 설명을 듣고 난 나의 반응은 그의 기대와는 달랐다.
“고작 6%의 생존률 향상을 위해서 굳이 이렇게 위험하고 힘든 치료를 해야 하는 건가요?”
불쑥 튀어나온 내 말에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던 의사의 표정이 단번에 굳어졌다. 그 순간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만큼 항암치료에 대한 거부감이 컸고 그 과정을 이겨내는 것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까지 나는 뭔가 완벽하게 논리적으로 혹은 직관적으로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했던 것 같다. 건강을 위한 것이라면 아주 작은 조각 하나까지 한 치의 오차나 흐트러짐도 없이 건강이 좋아지게 만드는 데 플러스가 되는 것으로 보이는 것만 허용하고 싶었던 것이다. 모든 것에는 양이 있으면 음이 있기 마련인데 그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채 그냥 무조건적인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것의 양면을 모두 보고 알게 된다는 것은 완벽한 것에 대한 나의 환상이나 집착에 실망감을 안겨주는 것이니까 말이다.
내 질문에 대한 의사의 대답은 짧고 간결했다.
“네, 그렇습니다.”
치료실을 나오고 난 후로도 나는 한동안 정말 이 치료를 받는 것이 내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중에는 현대의학에 대한 불신과 회의로 가득 찬 책들과 유튜브 영상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 집어든 책에서 항암치료는 암환자에게 독극물과 같고 암으로 인해 약해진 체력과 건강상태를 더욱 더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이야기가 씌여 있었다. 그 책에 따르면 항암치료는 절대 받아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대신 음식을 철저하게 가려먹고 명상을 통해 호흡을 개선하고 운동을 하는 등 건강에 도움이 되는 다른 실천들을 통해서 이겨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고민 끝에 나는 그 책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렸다. 당장 항암치료를 앞두고 있는 내게는 너무 부담되는 내용이었고 치료에 도움은커녕 내적갈등만 증폭시킬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겹게 시작된 항암치료이다 보니 처음에는 불안과 긴장으로 그 부작용이 증폭되는 듯 했다. 모든 것이 조심스럽고 의심스럽고 힘겨웠다. 그렇지만 1차 2차 3차 그렇게 차수가 늘어가고 시간이 지나면서 내 몸도 어느 정도는 약의 부작용에 대해서 미리 준비하고 대처해 나가는 것 같았다. 이를 테면 항암주사를 맞기 며칠 전부터 내 몸은 이미 항암주사를 맞은 날처럼 약간의 메스꺼움과 울렁거림을 경험하게 했고 스테로이드제를 투여하고 난 뒤의 항문 쪽을 비롯한 온몸의 따끔거림을 약하게 느끼게 했다. 어떤 기전에 의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예상되는 충격에 대비하려는 인체의 신비한 작용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였다. 그래서인지 점점 불안과 긴장이 줄어들고 몸에서 경험하는 충격도 무뎌지는 것 같았다.
5차부터는 새로운 약을 투여하게 되었는데 그 때는 약을 맞는 도중에 갑자기 숨쉬기가 힘들고 소화기가 굳어버리는 듯한 부작용이 생겼다. 담당의와 연락하여 부작용완화주사를 맞고 진정이 되긴 했지만 다시 또 그런 상황이 벌어질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날 빈속에 주사를 맞다가 그리된 것 같아 그 다음부터는 속을 든든히 설렁탕 같은 밥으로 채우고 주사를 맞는 중에도 허기가 지는 느낌이 들면 준비해간 간식을 먹으면서 속을 채워주려고 했더니 좀 덜 힘들었다. 간식은 평소에는 먹지 않던 달달한 대만샌드위치와 식혜를 준비했다. 그리고 투약할 때의 긴장감을 덜기 위해서 평소에 보고 싶었던 티브이 프로그램의 영상을 보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주사를 맞으면서 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영상을 보는 재미에 푹 빠져서 약으로 인한 몸의 변화에 주의를 덜 기울일 수 있었다. 그렇게 무사히 8차의 항암치료를 마치고 나니 하늘을 날아갈 듯 너무 기쁘고 뿌듯했다. 힘든 시간을 견뎌낸 내 스스로에 대해서 대견하고 감사했다. 도와준 가족들과 친구들에게도 너무 고맙고 소중함이 배가 되어 가슴에 남았다.
항암치료를 무사히 마친 후 나는 이율배반적인 어떤 것에 대해서 훨씬 더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완벽하게 딱 떨어지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덜 불편해할 수 있게 되었다.
방사선치료까지 모두 마친 내게 제일 걱정이 되는 것은 곽청술을 통해 림프절을 모두 드러낸 왼쪽 팔에 림프부종이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삶의 질은 엄청나게 떨어뜨릴 수 있는 부작용이다. 매일 팔이 붓지 않게 신경을 써야하기에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자외선을 직접 쏘이거나 덥고 습한 곳에 오래 머물거나 하는 것들은 평생 금지이다. 그 걱정과 불안 때문에 처음에는 너무 신경이 쓰이고 우울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러다가 결국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자고 마음먹었다. 항암치료가 내 정상세포를 죽인다는 걸 알면서도 그 치료효과 때문에 내 몸속에 들어오는 걸 허용했더니 그 과정에서 균열이 가기 시작한 완벽주의의 성벽은 여기서도 조금씩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다.
완벽한 무언가가 아니면 시작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만족하지 못하는 것.
그래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
그런 것이 암 치료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다. 피할 수가 없었다. 강제로 직면해야만 했다.
나는 의심하기보다는 겪어가면서 적응하고 대처해 나가는 쪽을 선택했고 그 험한 과정을 무사히 지나올 수 있었다.
친한 언니와 오랜만에 통화를 하다가 문득 내 변화가 소소하지만 느껴졌다.
살은 빼야하는데 빵은 먹고 싶어서 어제도 빵을 먹었다는 내 말에 언니의 강경하고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빵은 먹지 말아야지. 빵은 진짜 아니다.”
“그래야죠.”
하고 대꾸하면서도 나는 속으로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빵이 몸에 좋지는 않지만 한번쯤 먹는다고 크게 대세에 영향이 있지는 않겠지. 혹은 영향이 있다한 들 과연 그것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문제일까? 인간의 건강과 죽음의 영역에서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얼마나 될까?’
그 사이에 언니도 조금 누그러져서 천천히 바꿔가야겠다는 쪽으로 이야기를 돌린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과 아집으로 받는 고통과 불안, 분노 등이 주는 부작용이 어쩌면 더 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밀가루음식이 살을 빼는데 도움이 안 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일순간에 바꾸기는 힘들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더 몸에는 해로울 수 있다. 적당히 먹으면서 차차 줄여가고 자연스럽게 더 건강한 식생활습관을 가꾸어가고자 하는 마음과 실천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