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는 공포 낮추기, 방법은 적극적 정보수집행동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그 이름이 주는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한없이 우선순위가 밀려 매번 ‘언젠가는’이라는 수식어 뒤로 숨는 그 무엇이었다. 그러다가 암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하는 수 없이 꺼내들었을 때 그 무게가 너무 무거워 내려놓지도 못하고 쩔쩔매고 있는 내가 보였다. 암은 죽음에 대한 나의 공포를 내 코앞에 가지고 와서 들이밀며 이게 진실인데 언제까지 피하고 모르는 척 할 것이냐는 질문을 던져주었다. 막다른 골목. 피할 수 없는 마지노선. 거기에 나는 다시 한 번 서게 되었다.
여기저기에서 죽음과 관련해 내 불안과 공포를 덜어줄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닥치는 대로 수집했다. 무겁지만 그래도 의식적으로 두 손 위에 올려놓고 들여다볼 수 밖에 없는 절박함이 내게 생긴 것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일본 작가가 쓴 <암에 걸렸다는데, 저는 건강히 잘 살고 있습니다: 암 환자의 마음을 회복하고 면역력을 높여주는 27가지 질문>이라는 책을 발견하게 됐다. 나에게는 오아시스와도 같은 신기한 작용을 하는 책이었다.
이 책은 정신종양학과 의사와 4기 유방암 선고를 받은 카피라이터의 대담형식인데 여기에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뜨거운 감자와 같은 주제를 과연 어떻게 해결해야할 것인가.
첫째,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왜 죽고 싶지 않을까?‘로 전환하여 탐색한다. 이 질문을 통해 살아 있는 동안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삶의 목표를 찾을 수 있다. 한정된 삶의 시간 안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어디에 집중해야할지 알아차리게 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배경으로 사라지게 된다. 나의 경우 죽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선명한 그림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죽음이라는 것이 오히려 생보다 더 편안한 어떤 상태로 다가왔다. 그렇지만 그건 내 본심이 아니었고 다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을 때 당장 내일이라도 죽을 확률이 있다면 무엇을 하면서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가에 대해 더 초점을 맞추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은 사람에 따라 다른데 영성이 있는 사람, 사후세계를 믿는 환자가 보다 평온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영성이란 삶과 죽음에 대한 가치관이 있다거나 사후세계를 믿는다거나 신앙, 종교에 대한 관심 등 인간의 지식이 미치지 않는 사상이나 사물이 있음을 받아들이는 인생관을 말한다. 나의 경우 낯설지만 영성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생겼고 틈틈이 알아보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책 <생의 수레바퀴>에 나오는 ‘암에 걸린 아이에게 보낸 편지’속 이미지도 내가 죽음에 대해 좀 더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었다.
“우리가 지구에 보내져 수업을 다 마치고 나면 몸은 벗어버려도 좋아. 우리의 몸은 나비가 되어 날아오를 누에처럼 아름다운 영혼을 감싸고 있는 허물이란다. 때가 되면 우리는 몸을 놓아버리고 영혼을 해방시켜 걱정과 두려움과 고통에서 벗어나 신의 정원으로 돌아간단다. 아름다운 한 마리의 자유로운 나비처럼 말이야.”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은 생각보다 강력한 위로가 되어 주었다.
융분석가인 이나미 교수의 책 <인생이라는 멋진, 거짓말>에 나오는 구절도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면 좋을지에 대한 힌트를 내게 주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시지만 그 분들의 유전자를 내가 받았으니 여전히 내 안에 살아있는 것이고, 부모의 가르침이 내 머릿속에 있고 내가 그것을 잊지 않고 실천한다면 여전히 부모의 영혼이 내 안에 살아있다는 것. 그러니 부모의 죽음, 먼저 가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슬퍼하지 말고 그들과 나눈 시간과 경험과 지혜를 잘 간직해 가능한 많이 꺼내 많이 써먹으면 된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될까. 사랑하는 사람의 유전자 혹은 기억이 내 몸과 마음속에 있는 한, 죽음으로써 그들이 내 곁을 떠난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내려놓기 위해서 죽음에 대한 앞서간 사람들, 지혜로운 사람들의 말들을 수집했다. 무엇이든 나의 두려움을 달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일단은 그냥 적어놓고 읽고 또 기록하고 했다.
결국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주어진 하루하루를 충실히 사는 것만이 내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