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하지 않는다
대학병원에서 극초기의 녹내장으로 진단받았다. 엎친데 덥친다더니 유방암이후에 당분간은 아프고 싶지않다는 바램을 여지없이 깨버렸다. 의사는 빨리 발견했으니 운이 좋은 경우라고 하며 가볍게 안약을 처방해주었다. 저녁에 받아온 안약을 넣고 잤는데 다음날 눈을 뜨기가 어려웠다. 생각해보니 안약을 넣은 후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부작용이 심한 것 같아 불안한 마음에 병원에 전화를 하고 다시 예약 날을 잡았다. 마음이 심란했다. 초진인데도 불구하고 나의 병력을 전혀 들어보지도 않았을 뿐더러 녹내장의 원인이나 안압의 정도 등 아무런 검사결과도 나와 공유해주지 않았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저녁시간이 되자 온 몸에 다시 긴장감이 돌고 팔목과 반목 등의 혈관이 돌출되거나 쪼여드는 듯한 느낌이 반복되어 불안함이 더 올라왔다.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지금이라도 산책을 하면서 긴장을 좀 풀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어폰을 꽂고 밖으로 나갔다.
걸으면서 찬구와 전화로 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는 최근에 몸과 관련하여 책을 보면서 실습을 해보고 있는데 그걸 통해서 자신이 몸에 대해 너무 무관심했고 몸의 감각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항상 약한 몸에 대해서 짜증스러운 마음이 컸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최근의 나도 그랬다는 자각이 밀려왔다. 처음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 방사선치료를 무사히 넘긴 직후에는 내 몸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최근 들어서는 그런 마음이 모두 사라지고 내가 하고 싶은 뭔가를 하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이 된 듯 한 내 몸에게 이런저런 짜증과 화가 솟구치고 있었던 것 같다. 혈액순환이 잘 안되어서 원고를 쓰고 수정하고 책을 읽는 등의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잘 하지 못하게 한다. 녹내장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질환으로 복근운동도, 컴퓨터사용도, 핸드폰 사용도 모두 편한 마음으로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냥 뭔가 시작해보고 싶지만 내 몸과 체력의 불안정성에 대한 불안감으로 쉽사리 시작을 못하고 있고 또 한 편으로는 그게 핑계와 합리화가 아닐까하는 의심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 몸이야말로 지난 1년이라는 시간동안 너무 많은 고생을 했다. 갑작스러운 수술로 왼쪽 가슴과 복부에 칼로 난도질을 당했고 날카로운 바늘로 꿰매어졌을 것이다. 그 상처가 좀 아물기 시작하자 곧 바로 독한 약물들을 전신에 주기적으로 주입하여 암세포와 함께 정상세포에게도 충격을 주었으니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너무 급작스럽고 놀랍고 공포스럽지 않았을까? 그게 몸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라는 것을 알았겠지만 그렇다고 그 두려움과 공포와 긴장, 불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2번째 항암치료를 받고 난 다음날 강렬했던 몸의 반응이 생각난다. 마치 작고 가느다란 집게로 내 몸 구석구석의 세포들을 하나하나씩 꼬집어 뜯어내는 것 같았다. 방사선치료 때 가슴주변 겨드랑이의 피부가 전부 다 빨갛게 진 무르고 그 조직이 갈기갈기 헤어져서 구멍이 나는 동안 그래도 꾸역꾸역 보호연고를 발라가며 끝나는 날까지 잘 버텨준 것도 너무 고마운 일이었다. 최근에 본 암에 대한 책에서도 치료 후 1년에서 2년 정도까지는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지금은 내 몸에 더 세심하게 집중하고 보살펴야할 시기인 것 같다.
“내 몸아... 그동안 참 고생이 많았다. 갑작스럽고 충격적이고 두렵고 놀라운 일들의 연속이었을 텐데 잘 받아들여주고 무사히 지나올 수 있게 버텨줘서 너무 고마워. 지금 이렇게 멀쩡히 책상에 앉아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내 몸의 상태로까지 회복해주어서 너무 고마워. 나는 이번 일을 통해서 네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어. 그래서 가능하면 너를 아껴주고 귀하게 여기고 최우선 순위에 너를 놓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어. 그게 내가 살 길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요즘 들어 내가 너무 너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이런저런 욕심에 눈이 멀어 짜증과 화를 냈던 것 같아.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를 하는데 있어 네가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아니야. 네가 지금만큼 잘 지내주고 있어서 그나마 내가 이렇게 일상을 평온하게 영위하며 살아갈 수 있는 거였어. 당장 자꾸 몸이 긴장되고 신경이 곤두서던 느낌은 내 안에 짜증과 화를 내가 어찌할 줄 몰라서 몸으로 다시 표현되었던 것 같아.”
“사랑하는 나의 몸아. 부족한 사람이라 내가 자꾸 너에 대한 고마움과 소중함을 어느새 잊어버리고 또 왜 너는 그렇게 약하냐고 버티질 못하냐고 짜증을 낼 수도 있겠지만 잊지 않으려고 노력할게. 너와의 만남의 시간을 매일 한 번씩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너를 살뜰히 돌보고 아끼는 습관을 들여 볼게.”
“고맙고 사랑한다. 우리 서로 도와가며 앞으로 잘 지내보자.”
나는 내 몸에 대한 스스로의 기준으로 ‘무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100세 철학자 김형석 선생님도 인터뷰에서 자신의 장수비결로 무리하지 않는 것을 꼽았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것이 몸에 베어 있다는 것이다. 역경이 왔을 때 잘 넘어가기 위해서는 평소 생활에서 너무 애를 쓰거나 최선을 다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남아있던 여분의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다. 무리하지 말고 내 몸에 감사하며 남은 생의 바다에서 살짝은 가볍게, 때로는 파도도 타면서 그렇게 흘러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