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해도 실패해도 책임지기가 쉽다
요즘 일이 너무 잘 풀려서 신이 나 있는 친구가 한 명 있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들어서니 즐겁고 재미난 일보다는 책임질 일이나 해결해야할 거리들이 넘쳐나지만 그 친구는 좀 다르다.
전화통화를 하다가 내가 요즘 고민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다. 뭔가 하고 싶은 것은 있는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를 모르겠다는 것. 사실은 정확히 뭘 하고 싶고 뭘 할 수 있는지도 판단이 잘 서질 않는다. 너무 오래 쉬었기 때문에 혹은 자신감이 없어서. 사소한 경험이라도 성공경험이 쌓여서 자기 효능감이 올라가는데 지금껏 아이와 가정을 돌보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다보니 바깥에서 하는 일에 대한 감각이 많이 무뎌졌고 무엇보다 스스로 자신감이 없는 게 제일 큰 문제였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난감하던 차에 일이 잘 되어가는 친구가 있으니 물어보았다.
자폐스펙트럼 장애 아이들을 만나서 치료를 하다 보니 미술작업을 반복적으로 하고 재능이 있어보이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의 부모님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그 그림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반면 친구는 그 그림들이 너무 아깝고 발전시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작업이 재미있기도 해서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봤더니 서울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고 무작정 그들에게 연락을 해서 자신을 소개하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연결된 후 그분들이 하던 사업의 일부를 친구가 사는 지역에서도 나누어서 진행하게 되었단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으니 고맙고 또 거기서 고정적인 수익이 나게 되는 거야.”
봉사료를 주긴 줬지만 적은 금액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홍보를 온라인에서 해주고 친구가 운영하는 센터의 홍보도 되었고 친구 개인에 대한 홍보도 되었다고 했다. 대기업이 사업을 후원해줌으로 인해서 그 기관을 매개체로 여러 가지 일에 참여했고 세상을 배우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고 한다. 자신이 이상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점점 현실에 가까워지기 시작하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즐겁다고 했다. 조금씩 시작해서 여기저기 발을 담그고 있다보니 그것들이 연결이 되고 어느 순간에 실현이 되었다고 한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찾아서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나서 궁금하던 것을 얘기하다보면 내가 무얼 해야 될지 대한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이 가고 끌리는 것이 있으면 일단 연락처를 알아내서 두드려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하고 계신 활동에 대해서 저도 관심이 많은데 혹시 한 번 찾아뵐 수 있을까요?”
그런데 친구와의 통화를 끝내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도 이미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낯선 분야의 낯선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고 실행을 해 본 적이 있었다. <나를 망치는 나쁜 성실함>의 초고를 완성하고 제일 처음 내가 연락을 시도했던 분은 내가 사랑했던 소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의 김형경 작가님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회신이 안오는게 당연하다는 마음으로 그 책의 뒷면에 적힌 출판사에 이메일을 보냈었다. 작가님이 직접 전화로 원고에 대한 피드백을 주셨고 그 일이 시작이 되어 우여곡절 끝에 결국 첫 책을 출간까지 할 수 있었다. 20군데가 넘는 출판사에 이메일로 연락하여 나를 소개하고 원고검토를 요청했었다. 막막하던 그 때 나는 이미 내 안의 동기를 불쏘시개삼아 문제해결에 나셨고 결과를 얻어본 경험이 있었다.
나는 이미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암이라는 역경을 맞아 현재에 집중하느라 조금은 희미해졌던 과거의 나를 낯선 눈으로 다시 바라보게 된 순간이었다.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이 될 때에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답이다. 그래야 성공해도 실패해도 책임지기가 쉽기 때문이다. 성공하면 그야말로 제일 좋은 것이고, 만약 실패하더라도 후회가 덜 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