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을 체험하다

소중한 것만 남기기

by 전민재


새로 이사갈 집의 인테리어가 끝나고 이사견적을 받았다. 그중 적당한 곳과 계약을 하고 이사를 했다. 그런데 악화된 실내공기때문에 그 집에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임시거처에서 이불과 교자상 1개만 두고 생활하게 되었다.


새집을 두고 임시거처에 와서 느낀 감정은 당혹스러움이었다. 아무런 가구나 용품들이 없이 텅빈 공간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낯설고 불편했다. 그런 것도 잠시.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미니멀리즘의 가치에 눈을 뜨게 되었다.


미니멀리즘.

무수히 많은 매체와 채널을 통해서 듣기는 들어봤지만 실천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박약하여 실행으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었다. 이번에 이사를 가면서 드레스룸이 통째로 없어지고 7칸 장롱 중 2칸이 없어지는 상황이 되어 많은 옷들을 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미련이 남아 몇 년째 입지도 않은 많은 옷들이 여전히 이사간 집의 옷장을 빼곡이 채우고 있다. 책은 또 어떤가. 서류들도 마찬가지. 중고등학교때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들도 버리지 못하고 모두 이삿짐에 챙겨가지고 갔던 터였다.


그런데 반강제로 아무것도 없는 장소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극한의 미니멀리즘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우연이라도 얻게 되기는 무척 힘들다. 처음에는 콘도에 왔다는 생각으로 지내보자고 서로를 다독였는데 지내다보니 이게 나름 매력이 있었다.


일단은 물건들이 없다보니 무엇이건 주변이 있는 것들 중 하나에 집중하기가 훨씬 편했다. 특히 함께 있는 사람에게. 이 공간에 오직 존재감이 있는 것이라고는 남편과 나, 딸. 이렇게 3사람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서로의 존재와 말과 행동에 더 민감하게 집중하고 반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냥 제자리에 놓여 있는 생명이 없는 사물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책장과 소파 노트북 텔레비전 식탁과 의자 피아노 등등. 그 사물들이 가지고 있는 존재감이 생각보다 컸고 그들에게 빼앗기는 시선과 에너지가 분명히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절대로 알 수가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서로의 존재가 크게 느껴지다 보니 소중함도 절로 인식하게 되고 한결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덤이다.


두 번째 이로운 점은 가능하면 간소하게 먹고 입고 하는 중에 소식과 채식 등을 반강제로 실천하게 되고 몸이 좀더 가벼워지는 경험을 했다. 메인 냉장고는 없이 2칸짜리 소형냉장고를 활용해야 되다보니 먹거리를 살 때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게 되었다. 냉동식품은 보관이 불가능하니 저절로 아웃시키게 되었다. 냉장을 요하는 식품 중에는 조리가 별로 필요없는 샐러드를 주로 사서 넣어두게 되었다. 고기는 한번 먹을 양만 사서 빠르게 조리해서 먹되 자주 먹지 않게 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날이 추워서 베란다에 내어놓기만 해도 어느 정도는 신선도가 유지가 되는 날씨라 야채와 과일은 밖에 내어놓는 것만으로도 괜찮았다. 유방암은 살이 찌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 하는데 내게는 나쁘지 않은 환경이었다.


세 번째 이로운 점은 무엇이 진짜 필요한 물건인지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보게 된다는 점이다. 이 공간에 들여놓는 순간 다시 새집으로 가지고 가야할 이삿짐이 확정되는 것이기에 물건을 하나 들여올 때도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다보니 어떤 것이 실제 생활하는 데에 필수적인 것인지가 명백하게 드러나게 된다.


암과 함께하는 삶이 내게 주는 효용 중에도 미니멀리즘의 자동실천이 있다.


생의 유한함을 매일 마주하면서 살게 되므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선순위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만 남기는 지혜를 발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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