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궁궐을 만나는 또 다른 방법, 궁궐 속 자연생태 나들이
아직도 그 날 기억이 생생합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창경궁 외각 둘레길을 따라 걸으며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조용한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려는 찰나 궁궐 담장 쪽에서 검은색 동물이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던 그 순간을 말이죠. 처음에는 고양이인 줄 알고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뭔가 느낌이 많이 달라 자세히 보니 바로 너구리였습니다. 저도 놀랬고 그 친구도 놀랬는지 잠시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망부석처럼 서 있었습니다. 그렇게 1분간 있었을까요? 그 사이 저는 생애 첫 너구리 만남을 사진으로 기록했고, 그 친구 역시 저를 지긋이 쳐다보다가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그 날 창경궁에서 만난 너구리와의 만남을 계기로 궁궐이란 공간이 즐겁고 재미있는 곳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을 거점 삼아 생태기행을 새롭게 시작했지요. 궁궐을 거닐며 다람쥐, 원앙, 딱따구리, 멧비둘기, 붉은머리오목눈이, 직박구리, 황조롱이 등 다양한 야생동물 친구들을 만나며 궁궐이라는 공간과 친해지는 경험을 얻었습니다.
궁궐에서 우리 꽃과 나무를 만나는 일 역시 궁궐 생태기행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 중의 하나입니다. 궁궐에서 서식하는 식물들은 이름표를 달고 있어 방문객들이 식물이름을 배우고 익히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궁궐 안에서 계절 따라 피는 우리 꽃 이름을 알아가는 과정은 좋은 자연학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고급 코스로 넘어가 보물 찾기를 하듯 궁 안에서 조용히 생을 이어가는 야생화를 찾는 일도 꽤 재밌는 일이었습니다.
궁궐 산책길에서 나무 친구를 만나는 일도 뒤늦게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나무 꽃과 열매를 만나거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특별한 나무를 만나는 일은 궁궐 생태기행을 즐기는 방법 중의 하나였지요. 그 날 따라 유독 눈에 쏙 들어오는 나무풍경을 감상하는 일 역시 궁궐에서 얻을 수 있는 작은 행복이었습니다. 그렇게 궁궐 산책길에서 식물 친구들과 친해지는 과정을 배웠던 순간은 잊히지 않는 멋진 서울살이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현미경 같은 시선으로 궁궐 생태기행을 떠나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모든 것 다 내려놓고 궁궐 풍경에 몸을 맡긴 채 그냥 걸어 다니기만 해도 좋은 방법입니다. 경복궁을 거닐며 내 눈 앞에 생생하게 펼쳐진 북악산과 인왕산 산세를 생생하게 즐겼던 기억도 잊지 못할 추억 중의 하나이지요.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생각을 비우며 천천히 거닐었던 창경궁 산책길과 춘당지 풍경이 여전히 그립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큰 맘먹고 찾아간 창덕궁 비원이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창덕궁 비원은 왕을 위한 비밀정원이란 이름으로 소개될 만큼 우리나라 전통정원을 대표하는 곳입니다. 첫 방문 때 저를 맞이해 준 화려함과 고요함이 공존하는 묘한 풍경에 마음을 확 뺏겨서 단풍이 찾아온 늦가을 다시 한번 더 그곳을 찾았지요. 기회가 닿으면 꽃피는 봄이나 눈 내리는 겨울 비원을 거닐며 비원의 사계절 모습을 깊이 느껴보고 싶습니다.
전통사상, 전통건축, 그리고 조선왕조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궁궐을 이해한다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궁궐에 들어설 때면 우리 궁궐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 어려운 숙제를 받아 든 기분이었고 그래서 궁궐 나들이는 늘 어려웠지요. 그러던 어느 날 궁궐 안 자연과 생명을 만나는 여행을 알게 된 후 그제야 그리 멀게 느껴졌던 궁궐이란 공간이 즐겁고 가까운 곳으로 다가왔습니다. 너무 뒤늦게 찾은 저만의 궁궐 산책 방법이라 더 오래 더 깊이 경험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아직은 지역살이에 한참 정착하는 중이라 언제 다시 궁궐을 찾아갈지 모르지만 궁궐 자연과 생명을 만나는 생태기행을 꼭 다시 이어가고 싶습니다.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도심 속 생태공원, 우리 궁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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