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푸른수목원 생태나들이

자연 친구들을 만나며 함께 걷는 푸른수목원 둘레길

by 지경


마타리꽃이 만들어 준 푸른수목원 첫 인연


마당에서부터 시작한 생태나들이 여정은 점점 더 먼 장소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2015년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에 있는 어느 날, 오랫동안 생각만 해 오던 푸른수목원을 방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함께 동반한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느라 평소처럼 주변 풍경을 관찰하는 일이 쉽진 않습니다. 이 곳을 가득 메운 '이름표 달린 원예종 친구들' 은 화려하지만 평소 생태나들이에서 만나는 야생화만큼 강한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 산책로에서 조금 떨어진 구석진 곳에서 이름표를 달지 않은 채 조용히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노란 꽃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 '소나기'에 등장하는 마타리꽃이었습니다. 그동안 오랫동안 만나길 고대해왔지만 인연이 닿지 않던 이 친구를 제 눈 앞에서 직접 보는 일이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소설 소나기 속 장면을 떠올립니다.


.....
소녀가 산을 향해 달려갔다. 이번은 소년이 뒤따라 달리지 않았다. 그러고도 소녀보다 더 많은 꽃을 꺾었다.
"이게 들국화, 이게 싸리꽃, 이게 도라지꽃,……."
"도라지꽃이 이렇게 예쁜 줄은 몰랐네. 난 보랏빛이 좋아. 그런데 이 양산같이 생긴 노란 꽃은 뭐지?"
"마타리꽃"
소녀는 마타리꽃을 양산받듯이 해 보인다. 약간 상기된 얼굴에 살포시 보조개를 떠올리며.
다시 소년은 꽃 한 옴큼을 꺾어 왔다. 싱싱한 꽃가지만 골라 소녀에게 건넨다.
......


마타리꽃을 처음 만난 날


푸른수목원 자연 친구들 첫 만남


시큰둥하던 산책길이 확 달라집니다. 지인들과 함께 걷는 도중 '이름표 없이 야생으로 살고 있는 다른 친구들'을 찾는 비밀 미션을 수행합니다. 관리사무소가 철저하게 관리를 하는 그 속에서 나름대로 틈새공간을 찾아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우리 야생화들이 보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고마리꽃과 물옥잠꽃을 숨은 그림 찾기 하듯 만날 수 있었지요. 그리고 이 곳에서 살아가는 여러 자연 친구들을 발견하고 사진에 담기를 반복하며 동행 속 나 홀로 비밀 산책을 즐겼습니다.


제 마음을 열어준 마타리꽃이 아니었다면 그저 흔하디 흔한 산책길에 불과했을 겁니다. 그리고 쌓여가는 일상 속에 쉽게 묻혀버린채 지워졌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했던 작은 만남 덕분에 그 날 하루가 오롯이 제 기억 속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푸른수목원 공간 역시 언제고 다시 오고 싶은 곳으로 자리매김했지요.


푸른수목원 첫 방문에서 만났던 자연 친구들



3년 만에 다시 찾은 푸른수목원 자연 친구들


서울살이를 마친 후 3년 만에 다시 푸른수목원을 찾았습니다. 이제는 서울에 거주하는 생활자 입장이 아니라 큰 맘먹고 시간을 내어 멀리서 이 곳을 방문하는 진짜 여행자 입장으로 이 곳을 둘러봅니다. 한참 무더위가 시작된 수목원 여름 풍경은 지난번과 또 많이 다릅니다. 우리나라 여행은 같은 장소라도 계절 따라 네 번 이상은 둘러봐야 진면목을 볼 수 있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지요.


지난번 산책길과 달리 이번에는 수목원에서 살아가는 야생조류 친구들이 먼저 눈에 띕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항동저수지에는 귀한 물총새 한 마리가 반갑다고 환영인사를 해 줍니다. 갈대숲 사이에는 쉴 새 없이 개개비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물까치와 파랑새가 수목원 내 하늘과 나무를 무대 삼아 활발히 오가며 활동합니다. 그리고 한여름 무더위를 이기기 위해 공원에 만들어진 수변공간을 찾아온 여러 새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푸른수목원 생태 나들이에서 만난 조류 친구들



푸른 수목원과 연결된 항동 철길을 걸으며


수목원 산책로를 따라 한참 걷다 보니 잠시 수목원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작은 출구가 보입니다. 바로 항동 철길과 연결되는 공간입니다. 항동 철길을 따라 푸른 수목원을 찾아 올 수도, 푸른 수목원을 벗어나 철길 따라 걸으며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할 수도 있지요.


지난번에는 북적대는 사람들로 인해 제대로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사람도 없고 홀로 이 공간을 만끽해 봅니다. 다시 되돌아와야 하기에 멀리 가진 못하고 잠시 이쪽저쪽을 왔다 갔다 하며 철길 따라 걷는 시간을 가지며 인생 첫 철길 여행을 기억에 남깁니다.


푸른수목원 내 또다른 여행, 항동 철길을 걷던 그 순간



푸른수목원 생태나들이 추억을 회상하며


공간과 인연을 맺는 일 역시 사람 인연과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아주 사소한 계기 하나가 깊은 인연으로 이어지듯이, 마타리 꽃이 이 곳을 잊지 못할 추억의 장소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방문 때보다 더 느리고 깊은 눈으로 푸른수목원을 들여다보면서 한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었죠. 앞으로 이곳에서 볼 수 있는 봄, 가을, 겨울 풍경은 어떨지 다음 만남을 기약합니다.


"작은 인연으로 시작해 늘 방문하고 싶은 장소가 된 소중한 공간 인연, 푸른수목원"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항동 저수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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