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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명 Aug 11. 2018

서울 선정릉 숲길

도심 속 왕릉을 걸으며 만나는 자연과 생명



선정릉과 맺은 첫 인연


사람 인연이 그러하듯 장소 인연도 참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늘 가 보고 싶은 위시리스트에 올려놓더라도 평생 한 번 못 가기도 하고,  첫 방문 추억이 너무 좋아 자주 드나들 줄 알았는데 그 이후로 재방문할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아 마냥 그리워하는 경우도 있지요. 반대로 언제 한번 거길 가 보겠어하고 체념하고 지내다 생각지도 않게 그 장소를 가게 되는 것을 보면 분명 사람과 장소 사이에도 보이지 않지만 서로 연결된 끈이 존재한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선정릉이란 곳이 제게 그랬습니다. 스무 살 청춘 시절 친구들로부터 '강남에 가면 도심 한 복판에 왕릉이 하나 있는데 그렇게 데이트 코스로 좋더라'는 얘기를 건네들은 후부터 늘 가보고 싶은 장소 중의 하나였지만 이상하게도 인연이 닿지 않는 그런 곳이었지요. 군자동에 정착을 한 이후에도 강남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도 언제나 맘만 먹으면 쉽게 갈 수 있는 장소였지만 이상하리만큼 쉽게 만남이 이루어지진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정릉 존재를 알게 된 지 21년 만에 드디어 첫 인연이 맺어졌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나 시간이 많이 남기도 했지만 지하철이 선릉역에 섰을 때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선정릉이나 가볼까?' 하는 생각에 계획에도 없던 선정릉 나들이를 시작했지요. 그리고 처음 선정릉에 들어선 순간부터 떠날 때까지 분명 도심 속에 있지만 도심을 멀리 떠나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마냥 걸었습니다. 자연스레 고민도 생각도 다 비운채 선정릉을 걸었던 첫 만남의 순간이었습니다.

선정릉과 첫 인연을 맺은 날



선정릉에서 만난 자연친구들


당시 선정릉을 방문했을 시기가 3월 중순을 막 넘어가는 때라 아직 겨울색을 다 벗지 못했습니다. 이제 막 푸릇푸릇 풀이 돋아나는 정도라 다소 황량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형형색색 화려한 봄꽃은 아직 피지 않았지만 그래도 선정릉에도 봄이 오고 있음을 조용히 알려주는 여러 야생동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나비 중에서도 다른 나비들보다 훨씬 빨리 이른 봄부터 활동을 시작하는 종들이 있는데 뿔나비가 바로 그 주인공 중의 하나입니다. 이 곳에서도 뿔나비들이 날아다니며 선정릉 봄소식을 전하고 있더군요. 길을 걷다 멈췄다를 반복하며 그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아봅니다

선정릉 봄소식을 전하던 뿔나비


장소를 옮겨가며 걷던 도중 또 다른 반가운 친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재개한 다람쥐 친구입니다. 가까이 다가서면 놀래서 도망갈 법도 한데 볕을 쬐면서 먹이활동을 하는 것이 더 중요했는지 오늘은 저에게 가까운 거리를 허락해 줍니다. 그렇게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다람쥐 친구와 노닥거려봅니다.

선정릉에서 만난 다람쥐 친구


도심 속 자연공간을 걷다 보니 굳어있던 몸과 마음이 천천히 풀어집니다. 그만큼 눈에 보이는 것도 들리는 소리도 더 풍요로워집니다. 산책 초반부에는 잘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제 마음속으로 들어옵니다. 늘 찾아가던 어린이대공원에서도 만나기 쉽지 않았던 동고비를 여기 선정릉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청딱따구리가 땅에 내려와 열심히 먹이를 찾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참새, 까치, 까마귀, 멧비둘기 등 다양한 텃새 친구들이 이 곳 선정릉에서 삶을 이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선정릉에서 만난 텃새 친구들, 동고비와 청딱따구리


선정릉에서 경험했던 가장 놀랍고 반가웠던 만남은 바로 꿩 친구와 만난 순간이었습니다. 도심 속 녹지공간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주변 녹지공간과 단절되어 있는 생태섬이기에 꿩까지 살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막상 제 눈 앞에서 열심히 움직거리고 있는 이 친구들을 보니 선정릉이 지닌 생태적 의미와 가치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선정릉에서 만난 놀라운 인연, 꿩을 만난 순간


선정릉 산책길을 마치며


사실 조선왕릉이 지니고 설계와 구조적 의미, 역사 이야기에 대해서는 기초적인 사실만 알고 있을 뿐 깊이 매력을 느끼거나 쉽게 다가서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산책길을 경험하면서 막연하게 멀게만 느껴졌던 이 곳이 친숙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선정릉을 걸으며 생각과 고민을 덜어내고 이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연친구들을 만나는 동안 서울살이 추억이 담긴 일상 공간으로 다가왔습니다.


선정릉을 비롯해 문화유산이 보존되어 있는 사적지를 다니는 동안 느낀 점이 있습니다.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개발이 멈추고 관리되는 동안 이 공간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야생동식물이 살아갈 수 있는 삶터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고층빌딩, 문화유산, 그리고 자연이 묘하게 공존하고 있는 선정릉을 걸으며 도심 속 오아시스 같은 이 공간이 지금 모습 그대로 쭈욱 잘 보전되기를 바랍니다.


'도심 속 오아시스 같은 쉼터 공간'

'야생동식물에게 서식지를 제공하는 선정릉 생태적 가치'


내 기억속에 남은 선정릉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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