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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명 Dec 18. 2018

서울 청계천 물길 여행

청계천 물길 따라 걸으며 자연 감성 회복하기



청계천 물길 따라 걷던 그 날, 깊은 마음의 잠에서 깨어났던 그때 그 순간


2013년 7월 어느 날, 문득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무작정 걷고 싶었습니다. 풀릴 듯 풀리지 않는 일 때문이었을까요? 처음과 끝이 명확한 장소를 걷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청계천이 떠올랐지요. 그동안 통 인연이 닿지 않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공간이었는데, 그날은 생각난 김에 큰 맘먹고 청계천 시작부터 끝까지 완전하게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마음 무게만큼이나 발걸음도 무거웠습니다. 걷는 내내 무덤덤하게 청계천 사진기록을 이어갔지요. 그렇게 무의미한 여정을 이어가던 도중 눈길을 사로잡는 안내문구를 오간수교 부근에서 발견했습니다. 바로 '물고기 피난처' 안내표식이었습니다. 그 순간 잠시 잊고 있었던 '길 위에서 자연 친구들 만나기' 모토가 떠올랐습니다. 깊은 마음의 잠에서 깨어났던 순간이었습니다.


잠시 잊고 지냈던 자연감성을 일깨워 준 물고기피난처 안내표식


청계천 물길에서 만난 야생동물 친구들


갑자기 청계천 물길이 다르게 보입니다. 주의를 기울이며 천천히 청계천을 들여다보니 그 안에서 살아가는 친구들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물속 친구들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일이 쉽진 않았지만 난생처음으로 어류 친구들 모습을 제대로 들여다보았죠. 피라미, 모래무지, 돌고기, 그리고 커다란 잉어들에 이르기까지 청계천이 품고 있는 이들 모습을 바라보며 그동안 몰랐던 청계천 매력을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오간수교 구간에서 만난 모래무지(좌), 잉어와 돌고기(우)


황학교 부근부터 청계천 분위기가 확 달라집니다. 물길이 넓어지기 시작하면서 하천 산책로 주변에는 커다란 나무들이 모습을 드러내지요.  달라진 청계천 모습을 몸으로 느끼며 계속 여행을 이어가려는 찰나 머리 위쪽에서 낯선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소리를 따라간 제 시선 끝에는 사진과 TV로만 봐 왔던 해오라기 친구가 있었습니다. 도심 한 복판에서 해오라기를 만난다는 일은 생각도 못했는데 막상 길 위에서 마주치고 나니 가슴이 막 두근거렸죠. 자칫 놀라게 하면 날아가버리까 조심스럽게 몸을 숨기고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제 인생 첫 해오라기 만남을 지켜보았습니다.


황학교 구간에서 만난 해오라기 친구들


난생처음 해오라기와 마주친 설렘을 안고 계속 청계천 물길을 따라갑니다. 비우당교를 지나 고산자교에 도달하면 이제 도심하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넓은 자연하천 모습이 등장합니다. 이 구간부터가 바로 '청계천 철새보호구역' 시작점입니다. 신답교를 거쳐 마장교로 향하는 물길에서 흰빰검둥오리, 쇠백로, 왜가리, 심지어 민물가마우지까지 다양한 물새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다큐에서만 보던 민물가마우지 잠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본 순간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 제 인생의 명장면 중의 하나랍니다.


청계천 철새보호구역에서 만난 조류 친구들


살곶이 공원 표지판이 나타나면서 청계천은 이제 종반부로 접어듭니다. 이 곳 산책로를 따라 걷느라 잠시 물길과 멀어집니다. 그러다 다시 청계천 물길이 제 눈 앞에 펼쳐지는 살곶이 공원 구간에서 저를 반겨준 특별한 인연을 만났지요. 바로 서울에서 아주 사라진 줄로만 알고 있었던 제비 친구입니다.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야 할 이 친구들을 이곳에서 정말 오랜만에 다시 만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리고 바다에서만 사는 줄 알았던 괭이갈매기를 만나는 동안 한강도 갈매기가 살아가는 삶터라는 사실을 새롭게 배울 수 있었지요.


살곶이 공원 구간에서 만난 괭이갈매기(좌)와 제비(우)


청계천이 중랑천으로 바뀌는 순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제 산책길도 막바지에 접어듭니다. 그동안 저와 함께 걷던 청계천 물길이 생을 마치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그 끝은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집니다. 물길은 청계천이라는 이름을 버리는 대신 중랑천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지요. 청계천 물길이 시작하고 여러 생명을 품고 흐르다가 결국에는 자기 이름을 버리며 생을 다하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니 물길이라는 것이 우리 인생살이와 별다를 게 없는 것 같아 괜히 숙연해집니다.


청계천 물길 종점 - 중랑천에 합류하는 힙수구간


청계천 종주를 마치며


아마 그날 경험했던 청계천 종주 나들이길이 아니었다면 아직까지도 청계천이 지닌 진짜 모습과 의미를 모른 채 살았을 것 같습니다. 그 날 이후 살곶이공원 청계천 구역과 중랑천 철새보호구역은 제가 서울살이를 하는 내내 좋은 자연 학습터가 되어 주었지요. 그리고 다시 서울 곳곳을 다니며 자연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여정을 시작했지요


진짜 잘 보존되어 있는 좋은 공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그 안에서 생을 이어가는 자연친구들이 고맙기만 했습니다. 특히 저를 긴 잠에서 깨워준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을 통해 '생태공간'이라는 용어에 대해 내 생각을 정립해 봅니다.


"생명을 품어야 진짜 자연이다"


황학교 구간 생태안내판 - 청계천의 동식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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