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명 Dec 18. 2018

서울 한강 산책길

자연 친구들과 함께 걷는 한강 산책길



한강이 새로운 의미로 내 삶 속으로 들어온 순간


어린 시절 열차를 타고 한강철교를 건널 때면 누나랑 함께 '한강이다' 하고 크게 소리치며 한강을 반갑게 맞이하던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주변 모든 것들에 서서히 무감각해졌고 어린 시절 그렇게 좋아하던 한강 역시 내 삶에서 지워져 갔지요. 그러던 어느 날 청계천 종주길에서 자연친구들을 만난 이후 감각과 마음이 다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해 겨울, 수년 만에 처음으로 뚝섬유원지를 다시 찾아갔습니다. 예전에 저였다면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그냥 걷기는 했을 텐데 그 날은 주위를 충분히 보고 느끼며 걷는 산책길을 걸었습니다.


산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저 멀리 한강 위에서 무언가가 하류 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내 눈에 들어왔습니다. 궁금한 마음에 카메라를 꺼내 들고 그 모습을 찍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그때는 청둥오리밖에 모르던 시절이라 제가 무엇을 봤는지도 몰랐습니다. 집에 와서 도감을 찾아본 후에야 그 친구들이 비오리인 것을 알았습니다. 한강을 헤엄치며 이동하던 비오리를 만난 그 날 이후 한강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고 저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한강 산책을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했습니다.


한강산책길에서 만난 첫 친구, 비오리


공존의 의미를 배웠던 광나루 한강 산책길


그 이부터 한강은 생활 일부가 되었습니다. 넉넉한 시간이 주어질 때마다 뚝섬유원지를 중심으로 광나루까지 거슬러 올라가거나 아니면 서울숲까지 물길 따라 걷는 산책을 즐겼지요. 한참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는 속도에 취해서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한강이 흐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으니 그제야 제가 그동안 놓치고 살았던 많은 것들이 보입니다.


광나룻길에서 천연기념물 큰고니를 난생처음 만난 순간이 잊히지 않습니다. 평생 언제 한번 고니를 만나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멀리 떠나지 않고도 일상생활 속에서 큰고니가 노니는 모습을 만날 수 있었던 그 순간이 마냥 고마웠습니다. 그렇게 발걸음을 멈추고 큰고니기 물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지나가던 부부가 다가와 말을 건네 왔습니다.


''무얼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어요?."

"백조요. 백조는 오늘 처음 보는 거라 반갑고 신기해서요."

"정말이네요. 매일 이 곳을 다니는데 한 번도 못 봤네요. 있는 줄도 몰랐어요. 덕분에 귀한 구경하고 가네요."


큰고니들은 한강을 터전 삼아 오랜 시간 동안 그 자리에서 삶을 지켜왔을 것입니다. 그냥 우리가 마음을 닫고 사느라 그들이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몰랐던 것뿐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공존에 대한 의미를 배웠던 만남이었습니다.   


광나루에서 만난 천연기념물 큰고니


자연 친구들과 함께 걷는 한강 산책길


한강에서 특별한 만남을 두 차례 경험하고 나니 한강이 한결 더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한강은 좋은 학습터이자 만남의 장소가 되어 주었지요. 습니다. 처음 고비를 넘기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생각보다 더 쉽게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죠. 집에서 가장 손쉽게 갈 수 있었던 뚝섬유원지에서 큰부리까마귀, 괭이갈매기, 백할미새, 물닭, 논병아리, 뿔논병아리와 같은 조류 친구와 야생화, 그리고 곤충친구들을 만나며 자연세계를 배우며 함께 걸었습니다.  


뚝섬유원지에서 만난 조류 친구들


시간이 흐르고 더 느리고 더 깊은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방법을 알게 되니 전혀 있을 것 같지 않던 물총새도 만날 수 있었고,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 어느 날에는 운 좋게 천연기념물 흰꼬리수리나 말똥가리 같은 대형 수리류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강 산책길이란 '오늘은 누굴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과 설렘을 갖고 걷는 기분 좋은 일상이었죠.


한강 산책길에서 만난 조류 친구들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는 한강 산책길 풍경


한강 산책길에서 기대하지 않은 좋은 자연풍경을 만나는 일도 한강이 제게 건네 준 선물 중의 하나입니다.

조카들과 함께 뚝섬유원지를 갔다가 우연히 하늘에 나타난 환수평호 현상을 발견하고 같이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었던 순간도, 성수대교 위로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사라져 가던 해넘이 장면도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는 멋진 순간이었죠.


한강 산책길에서 경험한 환수평호 현상과 해넘이 풍경


동네 산책길에서 만나는 한강 모습이 어느 순간 익숙해질 무렵 자연스럽게 동네와 멀리 떨어져 있는 한강을 찾아 나들이길을 나섰습니다. 그때 경험했던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풍경은 서울 한 복판에서 야생을 느끼고 경험했던 멋진 순간이었습니다. 여의도 외각을 따라 흐르는 샛강을 따라 걷는 내내 높은 빌딩과 복잡하고 분주한 일상으로 가득 찬 여의도가 아니라 서울에서 쉽게 경험할 수 없는 날 것 그대로의 야생이 묘하게 도시와 어우러져 있는 새로운 여의도를 발견할 수 있었지요.


자연괴 도시가 묘하게  어우러진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풍경


무더운 여름이 끝나고 가을로 넘어가던 어느 날, 세빛둥둥섬 사진을 찍으러 한강 반포공원을 찾았다가 마치 하얀 가루가 수북이 뿌려진 것 같은 작은 섬을 우연히 발견한 순간도 소중한 한강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바로 메밀꽃도 처음 보고 서래섬이라는 존재도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메밀꽃이 핀 풍경은 어떤지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상상만 해 왔었는데, 굳이 봉평까지 갈 필요 없이 가까운 한강 산책길에서 메밀꽃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반가웠던 하루였습니다. 그렇게 메밀꽃으로 뒤덮인 하얀 서래섬 산책길을 마냥 거닐며 생애 처음이자 최고의 메밀꽃 추억을 만들었지요.  

                                                                   

......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


메밀꽃 필 무렵, 서래섬



자연친구들과 함께 한강을 걸으며 배운 것들


오랜 시간 동안 한강을 잊고 지내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따금 한강을 찾긴 했지만 아무런 감정도 기억도 남아 있지 않은 채 그냥 소모적으로 흘려보냈던 순간들이었죠. 그러나 어느 순간 한강을 따라 걸으며 생명을 만나고 멋진 자연풍경을 느꼈던 순간들이 쌓여갔고 그 기억들은 수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제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연 친구들과 함께 한강을 걸으며 살아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배웠으며 한강을 제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습니다.


'한강도 생명을 품고 흐르는 강'

'그들도 우리와 함께 한강을 나눠 쓰는 친구들'

 

행주산성에서 바라본 한강 하류


이전 09화 서울 청계천 물길 여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