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건해 Nov 22. 2023

악기는 팔아 치우면 안되는데

조기 교육의 광풍이 한국을 지배하기 전에 태어나기도 했고 부모님도 일찍부터 내게 본격적인 선행학습을 시킬 생각은 없었던 터라, 나는 영어 회화 같은 실용적 학문 대신 악기를 많이 배우고 자랐다. 피아노는 물론이고 하모니카도 배우고 단소도 배웠다. 피아노를 제외하면 학원을 잘 찾아보기 어려운 악기들인데, 이것들을 배운 이유로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것이 주요했다. 지역 청소년 교육 센터 같은 곳에서 아주 싸게 가르쳤고 악기마저 저렴했으니 악기를 배운다는 점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아주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악기라는 게 그냥 그렇게 배우기만 해서 익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고등학교 때 절실히 알게 되었다. 그때쯤엔 이미 돈을 내고 배운 모든 악기의 연주법을 모조리 잊어버렸는데, 어이 없게도 누구 하나 시키지도 가르쳐주지도 않은 기타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기타를 치기 시작한 이유도 터무니 없었다. 친척이 이삿짐 처리 비슷한 작업을 하다 얻어온 물건이 집에 굴러들어왔고, 짐으로 그냥 놔두느니 음계만이라도 익혀두면 어떨까 싶어 독학을 시작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처음으로 칠 수 있게 된 곡이 ‘사랑으로’였다. 친다고 해봤자 고작 단음으로 멜로디만 치는 것이라 기타 연주라고는 도저히 주장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심지어 친구에게 놀림까지 받았지만, 어쨌든간에 한 곡을 스스로 익혀 친 것이라 다음으로 나아갈 발판이 되어주긴 했다. 다음으로 익힌 곡이 영화 ‘쉬리’의 엔딩곡으로 유명한 ‘When I dream’이었을 것이다. 인터넷 카페 따위에서 쉬운 곡을 찾다가 이 곡이 제법 쉬운 편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환호작약하며 익힐 수 있었다.


이때 결정적으로 깨달은 것이, 누구에게든 악기 연주를 가르치기 이전에 음악을 사랑하는 법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점이었다. 좋아하는 곡을 멋지게 연주하고 싶다는 마음을 느껴본 적 없는 사람에게 악기 연주를 가르친다는 것은 시간낭비를 넘어서 고문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책을 좋아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독후감을 쓰라고 시키는 것, 또는 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등산 용품을 강매하고 산에 끌고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말을 물가에 끌고갈 수는 있어도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는 격언이 유명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아무튼 기타 연주를 위한 악보인 타브 악보도 읽게 되고 그럴듯한 곡도 연주할 수 있게 된 나는 전부터 사랑해 마지않던 김광석의 악보들을 사서 나름대로 포크송도 연주할수 있게 되었고, 어찌저찌 기억을 되살리고 연습한 끝에 하모니카와 기타를 동시에 연주해야 하는 곡도 하나 소화하게 되었다. 건방지게 친구 두 명에게 기본기를 가르치다 학부모의 항의 전화도 받아봤다. 나 원 참. 그냥 가르치니까 배울 뿐이었던 음악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뛰어들 줄이야. 피아노를 배우기 전에도 피아노 연주곡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데,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당시에 우리집에는 그런 연주곡을 즐긴다는 문화적 자산도 여유도 없었고, 피아노 학원은 남들과 발맞춰 살기 위한 노력의 일부였으니,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동아리방에 기타를 두고 드물게 연습을 하기도 했는데, 2학년이 되면서 만난 선배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느라 전자 기타에 입문했다. 새 기타와 앰프도 샀고 연습에도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전자 기타로 멋있게 연주할 만한 곡들의 난이도는 포크송과는 차원이 달라서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고, 그 선배와 교제를 시작하면서 기타는 쓸모의 상당부분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것으로 나의 연주 생활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교제가 끝난지 한참 지난 지금도 기타 연주는 여전히 좋아하지만 느긋하게 연습할 여유가 없다. 보름에 30분이라도 연습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스마트폰에 알림을 설정해두기도 했으나 한 번도 그 생각을 지킨 적이 없다. 항상 다른 일정에 쫓기고 있는 터라 우선순위를 조정할 수 없었던 탓이다. 게다가 그나마 숨을 돌릴 수 있는 밤에는 통기타를 칠 수가 없고, 전자 기타는 앰프를 연결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맥이 빠지는데 기타를 꺼내고 앰프를 연결하기가 이만저만 번거로운 일이 아니라 그 귀찮음을 이길 방도가 없었다. 결국 시간이 나면 더 쉽게 즐길 거리를 즐기게 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런 탓에 앰프는 십여 년 가까이 책상 밑에서 내 발판 노릇을 했다. 무슨 공연을 할 것도 아닌데 굳이 큰 것을 사서 고작 두어 번 써보고 그렇게 오래도록 대충 처박아놓고 짓밟아댔으니, 앰프에 입이 있다면 쌍욕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법하다. 그러다 작년 여름에는 좀 멀쩡한 발판을 사는 게 자세 교정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발판을 새로 사고, 앰프는 끄집어내서 점검했다. 영원히 쓰지 않을 것 같으니 팔아치우는 게 여러모로 낫겠다 싶었다. 그러나 테두리가 깨진 것도 모자라서 기타의 연결 상태도 시원치 않았다. 케이블이 접혀서 그런 것인지, 단자가 녹슬어 접촉이 불량해진 것인지 나로서는 알기가 힘들었다. 새 케이블을 사서 꽂아보면 좀 확실해지겠지만 앰프를 처분하자고 케이블을 살 수는 없는 노릇. 결국 팔기도 애매해진 앰프는 소형가전으로 폐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형편없는 소비행태가 또 있을까 싶다.


그리하여 연결할 앰프도 없는 전자 기타는 장식품으로 벽에 걸어놓은 채로 이따금 먼지만 털게 되었고, 통기타는 케이스에 넣어 뒷베란다 구석에 처박아둔 채 존재 자체를 잊게 되었다. 전부 팔아치우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종종 들긴 했다. 그러나 악기는 처분해선 안된다는 게 나의 지론이라 그만두었다. 쓰지 않는 악기를 처분하는 건 흔히들 하는 일이고 쓸 사람에게 넘겨주는 게 악기에게도 좋은 일이 지만, 그건 악기 연주라는 특수한 능력과 여가를 거의 포기해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악기를 처분하고 생긴 공간과 돈이 언제까지고 예쁘게 남아있을 턱이 없는터라 나중에 그 악기를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다시 사들이기가 대단히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창작물에서 형편이 어려워져 집안의 가보를 파는 주인공은 후반에 기어코 성공해서 그것을 되찾고 말지만, 악기를 처분하면 그것을 연주할 능력도 그것에 대한 애정도 공간적 여유도 잃기 마련이라 악기도 연주 능력도 상실하는 결과로 이어질 확률이 대단히 높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어지간히 실력을 쌓은 사람들이라면 자전거 익힌 것처럼 10년 만에 연주해도 잘 되던데요,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건 잡다한 악기를 조금씩 배우고 까먹은 나의 개인적 불안이라고 정정하기로 하자.


(악기를 잃으면 연주 능력도 퇴화한다)


그러나 일주일 전쯤엔 이런 나의 불안과 개똥철학과 다소간의 타협을 이루게 되었다. 책과 보드게임과 신발 등을 비롯하여 잡다한 물건이 하루하루 쌓이고 또 쌓여 빈말로도 깔끔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없게 되자 스트레스가 폭발하고 만 것이다. 나는 잡다한 물건을 닥치는대로 처분하고 몇몇 잡동사니는 뒷베란다에 처박았다. 이 과정에서 구석중의 구석에 처박힌 기타 밑에도 물건을 더 쌓게 되었는데, 그러자니 치지도 않는 기타 역시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영광을 언제 누릴 수 있다고 이 물건을 오래도록 보관하고 있단 말인가?


물론 잘 생각해보면 뒷베란다는 잘 가지 않는 장소고, 구석은 더더욱 볼 일이 없다. 그러니 기타를 그대로 잘 넣어둬도 삶의 질을 저해하진 않았으리라. 하지만 나는 늘어나기만 하는 내 물건들을 작정하고 줄여야만 한다는 일종의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고, 소리가 큰 통기타를 안심하고 칠 수 있을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거라고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먼 옛날의 청춘시대처럼 기타를 매고 다니며 친구들과 들에서 산에서 노래를 할 것도 아니지 않은가. 밟고만 있다가 결국은 내버린 앰프처럼 무용지물로 놔두는 것보다는 새 주인을 찾아주는 게 나을 게 분명했다. 게다가 정 기타를 치고 싶은 날이라면 전자 기타를 칠 수 있으니까 기타라는 악기와 영원히 작별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하여 나는 기타를 케이스에서 꺼내 닦고 끈 거는 고리를 재접착한 뒤에 당근에 올렸다. 시세보다 만 원은 더 싼 값에. 공간의 압박감에서 벗어나려면 빨리 처분해야 했다. 그 덕에 30분도 지나지 않아 연락이 왔고, 15분만에 나가서 거래했다. 상대는 나이를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차림의 키 작은 여성이었는데,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우니 밴드를 하려는 학생인지 학원을 다니거나 독학을 하려는 직장인인지 인테리어 소품이 필요한 자영업자인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나는 동봉된 고리와 기타줄에 대해 설명하고 돌아왔다. 거래 후기는 무척 좋았지만, 기타가 있다가 텅빈 자리는 원래 뭐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적극적인 음악 생활의 일부를 처분한 뒤로도 내 방에는 아직 전자 기타가 걸려 있다. 오랫동안 그 자리에 놓아둬서 평소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지경인데, 이따금 먼지를 털 때면 역시 이것도 새 주인을 찾아주고 기타 자체를 포기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노년에 운전면허를 반납하고 공식적으로 운전 생활을 종료하는 사람처럼. 악기를 다루고 즐기기에 적합한 마음이나 삶의 형상이 정해져있다고는 할수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 그리고 근미래의 나에게 근사한 전자기타가 적합하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저 묵직한 물건은 좋았던 시절의 쓸쓸한 트로피일까 여유로운 삶에 대한 막연한 희망일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미련은 더욱 무거워진다.





*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은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 2023년 2차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되었습니다. 독자분들께 다시 감사드립니다.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 – Daum 검색


구매와 응원이 저의 생존과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이전 04화 골든구스의 매력과 낡은 신발의 미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