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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May 01. 2024

무엇부터 팔 것인가2-팔리는 것부터 팔자



3. 판매 난이도

공간적 보상도 금전적 보상도 매우 귀하고 아름답긴 하나, 나는 중고 장터에서 물건을 처음 팔거나 판 경험은 있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빨리 팔리는 것’부터 팔기를 권하고 싶다. 게임도 시작부터 어려우면 그만두기 쉽듯이, 중고 물건 판매라는 일도 반응이 빨리 와야 이게 쉽게 잘 되는구나 싶어 보람도 느끼고 재미를 붙여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 썼듯이 금방 팔리겠거니 생각하고 실컷 사진 찍어 올렸는데 암만 시간이 지나도 반응이 없으면, 혹은 찜하는 사람만 있고 문의는 없으면 재미가 없는 수준을 넘어서 초조해지거나 짜증이 나기도 한다. 찜만 해놓고 사지 않는 잠재적 구매자들을 도둑놈의 심보라고 매도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작년부터 줄곧 기를 쓰고 잡다한 물건을 정리하고 처분하는 과정에서 괜히 이런 걸 사서 공간을 죽이다가 번거롭게 처리하게 되었다고 자책하기를 백 번도 더 한 것 같다.


이런 일이 드물면 좋겠지만, 어지간히 과감한 헐값 정리를 하지 않는 이상 안 팔릴 줄 알았던 물건이 빠르게 팔리는 경우보다는 팔릴 줄 알았던 물건이 도무지 팔리지 않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특히 실내 자전거처럼 운반이 어렵거나 잘 쓰지 못하게 될 확률이 높은 물건, 오래 사용해서 수명을 알 수 없는 무선 이어폰처럼 위험부담이 높은 물건은 충격적일 정도로 안 팔린다. 그러니 거래 경험이 적고 처리할 게 많다면 위험부담이 적고 누군가 찾을 만한 물건부터 팔아서 정신건강도 보호하고 재미와 보람도 얻는 게 좋다.


매물의 위험부담에 대해서는 이후에 다루기로 하고, 여기선 누군가가 쉽게 살만한 물건이란 무엇인지 이야기하자. 단순히 생각해 보면 누구나 호불호를 따지지 않고 이용할 물건이 바로 그런 물건일 것이다. 가령 휴지나 치약, 세제같은 생필품은 쓰다 말아서 안전성이 의심스러운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쇼핑몰 최저가보다 조금만 싸도 누구나 살 만하다(중고 거래의 수고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하지만 이런 물건은 주문 수량 실수 등의 기묘한 사정으로 보관이 곤란할 정도로 쌓이지 않는한 결국 본인이 쓸 테니 팔 이유도 별로 없고, 팔아봐야 큰 이익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그보다 가격이 높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물건으로는 가전제품이 있다. 청소기나 선풍기, 텔레비전 같은 필수 가전은 근래에 들어선 성능차가 있어도 감수할 만한 영역을 거의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영원히 안 팔릴 우려는 적다. 물론 특별한 사양을 필요로 해서 리뷰나 후기를 잘 알아보고 사는 사람이라면 콧방귀를 뀔지도 모르겠으나, 그런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 편이다. 진공청소기의 흡입력이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선풍기의 풍속과 회전 반경을 굳이 알아보는 사람보다는 브랜드를 믿는 사람이 더 많다.


IT기기는 일반 가전제품보다 스펙이 중요한 편이다. 특정 기능이 없거나 성능이 목적에 필요한 수준 이하라면 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부터는 각종 기기의 성능이 일반 사용자의 요구를 충분히 충족하는 수준에 올랐다. 인간의 신체 능력이 변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기기 이용 환경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했다고 책상 위의 모니터를 24인치에서 50인치로 바꾸는 사람은 적은 편이다. 카메라 성능이 다소 좋아졌어도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7인치보다 큰 화면으로 보지 않는다. 돈이나 명예를 노리고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 외에는 8k 영상 편집이 원활한 기기가 필요하지 않다. 물론 언제나 더 빠른 기기를 원하는 게이머를 예외로 둬야 하겠지만, 게이머도 최고의 기기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고로 이런 기기들 중 가장 대중적으로 쓰이는 노트북은 대체로 문서 작업에 무리가 없고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이 원활하다면 어찌저찌 팔리기 마련이다. 스마트폰도 6년쯤 된 모델까지는 정말 심각한 문제가 있지 않은 다음에야 팔리는데, 스마트폰 매매의 허용범위는 생각보다 넓어서 화면이 좀 깨지거나 잔상이 생긴 것들도 활발히 매매되는 것으로 보인다. 업무를 위해서든 게임을 위해서든 여러가지 이유로 서브폰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많고, 당장 급한대로 스마트폰을 구해야 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취향이나 조건을 크게 타지 않고 많은 사람이 쓰는 물건은 비교적 빠르게 팔린다. 이밖에 인공지능 스피커, 모니터, 무선 고속 충전기 등등 IT기기와 그 주변기기도 팔자면 팔리는 편이며, 물건의 부피와 무게에 비해 가격이 높아 운동 기구처럼 간신히 팔고 나서 ‘내가 이 돈에 이 짓을……’ 같은 회의감을 느낄 확률도 낮다. 이런 부분까지 생각하면 환금성이 높다고도 할 만하다.


(잘 보관한 취미 용품은 보물과 같다)


누구나 쓰는 것은 아니더라도 수요가 어느 정도 수준으로 유지되어 시장이 존재하는 물건도 거래가 제법 잘 되는 편이다. 취미 용품이 그렇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에 비해 취미 용품은 교체 주기가 짧고 한 사람이 많은 양을 구입하는 편이다. 콘텐츠나 성능 또는 유행 변화에 따라 변경하거나 추가 구입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당장 나만해도 보드게임을 20년 가량 즐기면서 세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많은 게임을 사고 다시 팔았고, 요즘은 등산에 맛을 들이며 등산화와 바람막이 따위 장비 여럿을 거래했다.


여기서 잠깐 나의 과소비를 변호하고 넘어가자. 등산 장비 얘기가 나오면 히말라야 산맥을 오르는 것도 아닌데 뭐 그렇게 좋은 게 많이 필요하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게 합리적인 지적이긴 하다. 서울 근교의 일반적인 등산로를 다닌다면 등산화 한 켤레에 잘 마르는 운동복과 바람막이 한 벌만 마련해도 필수 장비는 다 갖춘 셈이다. 하지만 더위와 추위, 피로와 통증을 소지품만으로 알아서 잘 해결해야만 하는 문명 격리 상황에서 6시간 가량 산을 오르내리자면 좁쌀만한 불편이라도 줄이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결국 등산에 발목까지 담근 사람은 자꾸만 더 좋다는 장비를 바라게 되고, 그 와중에 최고로 좋은 건 살 엄두가 나지 않으니 가성비 좋은 장비를 중고로 구하길 반복하는 슬픈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다른 분야라도 이런 식의 흐름으로 취미 용품을 자꾸 사는 사람이 상당히 많으리라 짐작한다. 게다가 취미에 깊이 빠지면 세세한 부분도 따져서 물건의 장단점을 파악하게 되는 법이라 상황별로 쓸 물건을 따로 구비하는 지경에 이르기 일쑤다. 이러한 소비의 반복과 공간 잠식은 분명 경계할 일이긴 하나, 반대로 중고 물품을 판매하려는 사람에게는 수요가 많아 다행스러운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덕분에 취미 용품은 콘텐츠나 성능 혹은 심미성이 검증된 물건을 조금 싸게 구하려는 사람들이 기웃거리는 시장이 일정 규모로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책과 음반은 오래전부터 대형 업체가 매입해왔고, 비디오 게임 역시 국제전자상가 같은 상점가에서 매우 빠르게 처분할 수 있었다. 근래에는 중고서점 업체에서 비디오 게임도 매입하기 시작했다. 피규어도 중고 매매 전문 업체가 있고, 아웃도어 용품은 거래 앱이 여럿 등장했다. 보드게임은 여전히 전통을 따라 커뮤니티 장터를 기반으로 거래되긴 하지만 가장 큰 커뮤니티인 보드라이프는 덧글 알림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 크게 불편하지 않은 수준이다.


이렇게 취미 용품 거래는 수요가 항상 있고, 별도로 분리된 시장이 따로 존재할 경우엔 내 상품이 노출될 확률이 높아서 거래도 빠르게 이루어지는 편이다. 다만 이용자들이 해당 분야에서 잡다한 정보를 찾아보는 게 일반적이므로 판매글 작성도 대충하면 안된다. ‘잘 되는지 안되는지 모르겠지만 알아서 고쳐 쓰세요.’라거나 ‘구성품 확인은 못했는데 대충 맞겠죠.’라는 식이면 어지간히 싸지 않고서야 팔리기 어렵다. 보드게임 쪽은 이 기준이 상당히 높아서, 내용물은 물론이고 박스의 찍힘이나 변색, 마모 정도도 가격에 곧장 반영된다. 드물게는 내용물을 전부 줄맞춰 세우고 갯수를 인증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까지 성가신 짓을 어떻게 하냐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으나, 그만큼 신경 써서 다루고 정보를 정직하게 공유한 물건은 제법 비싸도 빠르게 팔린다. 심지어 직접 한글화하거나 따로 구한 추가 구성물 등이 들어가면 정가 이상으로도 팔리는 경우가 있다. 아껴 쓴 물건을 이만큼 잘 썼다고 정성껏 소개하면 보상이 따를 확률이 높은 셈이다. 노력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면 즐거워지기 마련이고, 다음 판매도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다. 덤으로 좋은 판매글을 쓰는 연습도 되고, 덕분에 시장도 약간 더 투명해진다. 나의 거래 행위와 시장 상황이 선순환을 이루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취미 용품을 거래하는 것으로 중고 물품 판매에 익숙해지길 권하고 싶다.




*추신 

저는 언제나 돈과 일을 구하고 있습니다.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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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고 2023년 2차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저의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 지금도 절찬리에 판매중입니다.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살려주세요...

 종이책: https://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39577892619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kz1M5 

밀리의 서재 요약본 오디오북: https://millie.page.link/ExY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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