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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May 15. 2024

어디에 팔 것인가2-번개장터



번개장터는 중고나라 다음으로 중고 시장의 대세가 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앱 기반 장터로, 전국을 대상으로 물건을 팔고 싶다면 여기를 알아보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이용자도 많고 시장 범위가 넓다. 공식적으로 프로 상점 입점을 지원하고 있기에 네이버 스마트스토어같은 플랫폼 역할도 겸하고 있다.


번개장터에는 장점이 놀랍도록 많다. 전국을 대상으로 한 만큼 택배도 권장하고 공식적으로 접수 절차를 지원하며, 택배를 보내고 운송장 번호를 입력하면 알림까지 갈뿐더러 추적도 하게 해준다. 게다가 안전결제 시스템이 도입되어 확신하고 살 수 없는 물건의 대금 지급을 구매자의 확인 후로 미룰 수 있다. 돈이 늦게 들어온다는 건 판매자 입장에서 아쉬운 일이지만, 안전결제 수수료는 구매자가 부담하니 그렇게 해서라도 거래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면 분명 좋은 일이다. 구매자 입장에선 ‘문제시 100퍼센트 환불 보장’이라고 적혀 있어도 판매자가 이런저런 트집을 잡고 환불을 거절할까 우려하는 게 당연한 만큼, 중개자가 돈을 쥐고 기다려주는 편이 압도적으로 믿을만할 수밖에 없다.


근래에는 가격 제안 시스템이 아예 공식적으로 탑재되었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채팅으로 구구절절하게 ‘20000원 인데 택포 15000에 안될까요?’ 따위 질문과 ‘딴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따위 답변을 주고받을 필요 없이, 구매자가 제안 액수를 적어 보내면 판매자가 수락이나 거절 버튼을 눌러 흥정을 해결하는 것이다. 당근만 쓴 사람은 채팅으로 해도 될 걸 굳이 왜 복잡하게 그런 시스템을 쓰나 싶겠지만, 흥정이라는 과정이 대화가 되면 아무래도 감정적으로 피곤해지기 마련이다.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무례한 말투로 들으면 정중하면서도 정신 좀 차리라는 의도가 담긴 답변을 짜내야 하는데, 이게 몇 번 해보면 참으로 고역이다. 딱히 직접 보는 것도 아니니 무례한 사람은 대충 대하면 그만 아닌가……라기엔 판매자가 너무나 미약한 을이다. 후기에 맹비난이 달리면 추후 판매가 어려워지고, 뭐 하나라도 더 팔아치울 가능성을 높이려면 그런 사람과의 교류도 버릴 수 없다. 소박해도 어쨌거나 장사를 하는 이상 웃는 얼굴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시스템에 따라 액수만 받고 가부만 결정하는 방식은 아주 멋지고 아름답다. 오프라인 상점의 키오스크 도입에는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비인간적인 절차가 사람의 정서를 지키기도 한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정말이지 세상에 말을 나누기엔 너무 피곤한 사람이 많다.


여담으로 옛날에는 중고거래 앱 중에 구매자가 상품을 보고 하트를 눌렀을 때 판매자가 이 사람을 찾아내서 ‘마음에 드셨으면 얼마에 드릴게요’하고 나설 수 있는 것도 있었다. 마치 심하게 적극적인 직원이 있는 옷가게나 근처만 지나가도 말을 거는 상인이 가득한 용산 전자상가의 디지털판이나 다름없었던 셈이다. 판매하는 쪽에선 그렇게라도 나서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종종 있지만, 구경하는 입장에선 꼭 사려고 하트를 누르는 게 아니라 ‘엄청 싸지면 생각은 해볼만 하다’는 이유로, 혹은 나중에 참고로 살펴볼 작정으로 누를 때가 많은 만큼 판매자가 버선발로 뛰쳐나와 호객하면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일단 안 산다고 하거나 무시했다가 나중에 마음이 바뀌었을 때 다시 문의를 하기도 좀 무안하다. 그래서 중고거래 아이쇼핑도 쉽지 않구나 싶었는데, 이렇게까지 스트레스가 감소하는 방향이 제시될 줄이야.


(중고거래 장터는 사기와 무례함의 폭풍을 피할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이렇게 번개장터의 사업은 당근과 정반대 방향인 듯, IT기기 매입 판매 서비스 ‘셀잇’을 인수하더니 자체 매입도 하고 ‘번개 케어’라는 서비스도 도입했다. IT기기가 판매될 때 중간에서 제품 검수를 해주는 것이다.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의 기능 점검을 비전문가가 하는 게 그리 쉽지 않은 만큼 상당히 취지가 좋은 서비스다. 나는 스마트폰 살 때 신청했다가 판매자가 뭘 어떡하면 될지 모른다고 거절해서 이용할 기회는 없었지만, 기회가 되면 반드시 이용할 의향이 있다.


번개 케어의 범위는 근래에 유명 브랜드 스니커즈와 고급 브랜드 가방등으로도 확대되었다. 번개장터에서 운영하는 스니커즈 커뮤니티 ‘풋셀’을 통해 온라인 정품 인증을 개시하더니 이제는 번개장터에서 판매 대행도 한다. 나는 서비스 테스트 시기에 약간의 혜택을 받고 스니커즈 판매 대행을 신청해 본 적이 있는데, 나중에 판매 가능 기한이 지나서 반송된 제품을 보니 세척 상태나 포장 상태나 모두 흠잡을 구석이 없었다. 워낙 인기가 없는 모델이었던 데다 번개장터도 수수료를 어느 정도 남겨야 장사가 되는지라 가격 인하에 한계가 있어서 대행 판매에 실패하긴 했지만 좋은 시도이긴 했다. 유명한 고급 브랜드 제품을 잘 닦아서 팔아야 하는데 스스로 닦고 판매 게시물을 관리할 여유가 없거나, 가품이 많은 제품을 팔아야 하는데 인증 가능한 정보가 없다면 시험해볼 만한 서비스다.


그밖에도 게시물 갱신이 하루 10회는 물론이고 필요하다면 유료로 더 할 수 있다는 점, 자동 가격 내림 설정이 가능하다는 점, 할부 결제, 사기번호 검색 기능 등등 번개장터의 기능적 장점은 적지 않다. 그러나 직거래 기반이 아니라는 문제가 번개장터를 가장 대중적인 중고거래 앱의 지위에 오르지는 못하게 했다. 아무거나 올려서 근처 산다는 사람 만나 팔아치우는 편의성을 누리지 못한 탓이다. 구색을 맞추듯 근거리에 올라온 매물을 보여주는 기능도 있긴 하지만, 우리 동네는 전문 업자들이 대량으로 올려둔 물건이 다수를 차지하다 보니 구경하는 재미가 별로 없다. 이걸 보면 왜 당근이 일반인 위주의 거래만 상정하려는지 알 만하다.


게다가 번개장터는 홈화면의 3분의 1이 거대한 이벤트 배너로 가려져있을 뿐더러 그 밑도 최근에 본 것, 본 것과 비슷한 것, 관심 있을 브랜드 등으로 카테고리가 나뉘어 있어 뭐가 많긴 한데 별로 끌리는 건 없는 OTT 화면처럼 복잡하고 조작하기가 귀찮다. 잠재적 구매자가 앱을 열자마자 내 상품을 발견할 확률이 높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이것보다는 추천 상품만 쭉 세로로 나열하고, 추천 브랜드 따위는 탭을 나눠 옆으로 넘겨 볼 수 있게 하는게 낫지 않을까? 터치로 특정 부분을 눌러 화면을 바꾸는 것보다 스와이프로 연속성을 유지하는 게 앱의 접근성을 훨씬 높인다고 알고 있는데, 번개장터는 앱을 열자마자 혹하는 물건이 보일 구조에 대해 더 궁리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런 구조상 번개장터는 누군가가 필요에 의해 검색해서 살 물건을 올리는 편이 타율이 높다. 등산 배낭, 캠핑용품, 미개봉 공기 청정기 필터 등등 일상적으로 살 생각이 들 일이 적고 ‘그거 필요한데 중고로는 없나’ 싶은 물건 말이다. 마니아만 구할 물건도 집근처 마니아가 봐주길 기대하는 것보다는 전국의 마니아가 검색해서 찾아주길 바라는 편이 나은 만큼 번개장터를 택하는 게 현명하다. 요컨대 근거리는 당근, 원거리는 번개인 셈이다.


물론 당근과 번개장터를 모두 써서 나쁠 일은 없다. 나도 이 둘을 모두 주력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판매글을 먼저 올리는 건 번개장터다. 번개장터의 게시물은 전체 복사가 간편해서 번개장터에서 작성한 글을 당근으로 복사해 올리는 게 더 쉽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게시물을 두어개 똑같이 올리다 보면 일단 번개장터에 글을 올릴 수밖에 없다. 이런 지점도 고려한 인터페이스라면 정말 사려깊게 시스템을 발전시키고 있구나 싶어 감탄스럽다. 그만큼 홈화면도 고쳐주면 더할 나위가 없겠는데…….




*정정

당근도 가격 제안 기능이 있다. 가격 제안 불가 설정을 해놓아도 채팅으로 가격 제안을 하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이런 기능이 있는 줄 몰랐을 뿐이다. 이 역시 당근의 문제라기보다는 이용자 숫자에 따른 빈도 차이일 텐데, 어느 앱이든 가격 제안 메시지를 자동 필터링해주면 좋겠다.



*추신 

저는 언제나 돈과 일을 구하고 있습니다.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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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고 2023년 2차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저의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 지금도 절찬리에 판매중입니다.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살려주세요...

종이책: https://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39577892619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kz1M5 

밀리의 서재 요약본 오디오북: https://millie.page.link/ExY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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