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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May 22. 2024

어디에 팔 것인가3-중고나라와 세컨웨어 등



3-1. 중고나라

당근과 번개장터 이전에는 누구나 알듯이 ‘중고나라’가 중고거래의 메카였다. 네이버 카페를 기반으로 한 이 장터는 2003년에 개설되었으며, 회원은 약 1900만 명에 달한다. 당근의 누적가입자가 2023년 12월 기준 3600만 명, 번개장터가 2022년까지 약 2000만 명이니까 근래에 최고로 사랑받는 시장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여전히 대단한 수준인 셈이다. 오랫동안 뭐 처분할 때는 ‘중고나라행’이라는 식으로 말했던 만큼 이용자도 많고 인지도도 변함없이 높다. 자료를 기반으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인터넷 보급 이후 온라인 교류 활동의 주된 공간을 인터넷 카페로 인지하게 된 중장년층은 여전히 중고나라를 익숙한 중고거래 장터로 여기는 듯하다.


이용자가 많은 만큼 중고나라도 방대한 양의 매물이 올라온다. 다만 5만 원 이하의 매물이 제법 보이는 당근이나 번개장터보다는 매물의 가격이 약간 더 높은 편이고, 스마트폰, 생활 가전, 차량 부품, 전기자전거, 취미용품 등 ‘확실히 돈이 되는 물건’들을 작정하고 올리는 사람이나 전문업자가 다른 곳보다 자주 보인다. 이것도 내 느낌에 불과하지만, 전통있는 시장인 만큼 경제력이 충분한 연령대가 많이 이용해서 거래 가격의 심리적 하한선이 높은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이유로 나는 중고나라를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처분이 아니라 구입을 위해 중고 거래 앱들을 설치하고 구경했기 때문에, 헐값에 파는 신발이나 등산용품 따위를 주로 찾는 나로서는 중고나라가 그렇게 매력적인 장터가 아니었다. 다만 물건을 빨리 처리하려고 중고나라에도 올린 적은 몇 번 있는데, 다른 곳에서 먼저 거래되었으므로 판매가 성사된 적은 없다. 나의 체감으로는 당근과 번개장터의 ‘타율’이 더 높았다. 장기간 체험하며 비교한 게 아니라 자신있게 단언할 수 없으나, 이 경험에 따르자면 물건을 처분할 때 누가 검색해서 찾아볼 물건, 그중에서도 20만 원을 넘는 물건 또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아닌 연령대가 선호할 만한 물건은 중고나라에도 올려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용자가 많으면 필연적으로 사고도 많이 따르기 마련이라, 중고나라 역시 기괴한 사람과의 거래에 대한 괴담이나 사기 거래 얘기가 많이 돌았다. 그러나 당근이 대중화되며 그런 이야기의 발원지도 당근으로 바뀌고 중고나라는 화제거리에서 살짝 비켜났는데, 이것이 저무는 징조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강력한 네임밸류와 충실한 이용자수를 갖춘 중고나라는 지속적으로 더 나아지고 있다. 카페 기반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다른 장터처럼 앱을 통해 간편히 이용할 수 있으며, 안전거래와 할부를 지원하고, 이벤트로 택배 할인을 진행하기도 한다. 판매자 신뢰 지수와 간단후기도 있다. 게시글 주소를 아는 사람만 접속 가능한 비밀 거래도 가능해졌다. 심지어 어떤 상품을 중고로 사면 탄소 발생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도 표시되고, 거래를 통해 적립한 ‘에코마일’을 따로 사용할 수도 있다.


중고 물품을 사서 ‘돈을 아끼자!’ 대신에 ‘환경을 보호하자!’라는 흐름은 근래에 들어 중고거래 앱이나 중고제품 판매 사이트에서 관찰되는데, 사실 그중 일부는 너무 갖다붙였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치 ‘저희는 환경 보호를 위해 포장을 최소화하여 종이 박스 대신 비닐봉지만을 사용합니다’처럼. 비슷한 예로 애플 역시 탄소 배출을 줄인다면서 제품에서 충전기를 빼는 한편으로 자사 독자 규격 충전 단자를 오래도록 고집해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중고나라처럼 환경 보호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수치로 보여주는 건 그럭저럭 긍정적으로 보인다. 근본적으로는 고객 포인트 제도에 가깝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수치를 따져가며 자주 거론하는 편이 아무 얘기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나으리라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기왕 할 거 더 요란뻑적지근하게, 그동안의 거래로 나무 몇 그루를 심은 것과 같은 효과를 거뒀다고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며 효능감을 주입해주면 좋을 것 같다.


각설하고 중고나라는 여전히 유력한 시장이다. 배너 광고가 과도하게 커서 누군가 앱을 실행하자마자 내 상품을 발견할 확률은 전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는 문제는 번개장터보다 더 심하지만, 다양한 이벤트를 열고 트렌드에 맞게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개선한다는 점에선 분명 생기가 넘친다. 번개장터에서 제공하는 대행 판매나 검수 같은 부가 서비스가 필요하지 않다면 비싼 물건을 중고나라에 올리는 것도 괜찮은 방법으로 보인다.


(물건을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고 나도 득을 보는 효율적 방법은 궁리가 필요하다)


3-2. 세컨웨어

‘헬로마켓’이었던 이 앱은 근래에 들어 세컨웨어로 이름을 변경했다. 뭐든 사고파는 평범한 중고장터에서 의류 전문 장터로 콘셉트를 바꾼 셈인데, 새로운 콘셉트에 맞게 기능을 개편하여 이용자가 등록한 사이즈에 해당하는 매물만 볼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중고장터를 뒤적이다 제법 마음에 든다 싶어서 열어본 물건이 내 사이즈가 아니라 실망한 경험이 있다면 이게 얼마나 강력한 기능인지 실감할 것이다. 덕분에 이 기능을 써서 세컨웨어를 구경하면 화면에 표시되는 정보의 가치가 매우 높아진다. 판매자가 그만큼 사이즈를 잘 살펴보고 포맷에 맞춰 게시글을 올려야 한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지만, 이용자가 내 상품을 대충 흘려넘길 가능성은 낮아지니 감수할 만한 수고다.


나는 사이즈 필터링 기능이 모든 중고장터 앱에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리 심각하게 어려워보이지는 않는 이 기능이 도입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이것을 광고비 문제가 아닐까 추측한다. 이용자가 이 상품 저 상품 뒤적이면서 앱을 오래 구경하고 있어야 광고가 더 많이 노출될 테니 앱의 운영사측에선 이용자가 관심을 가질만한 상품만 보여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좀 치사하다 싶지만, 고객의 상품 구매로 얻는 이득이 크지 않은 중고장터앱의 특성상 이해를 못할 정도는 아니다. 물론 ‘사이즈는 사진 확인’이라며 대충 작성한 게시물 때문에 제품 사진을 몇 번이나 넘겨보게 만드는 사태만은 앱에서 막아주는 게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하지만.


이용자 입장에서 보기에 매우 합리적인 시스템을 갖춘 덕에 세컨웨어는 내 매물이 노출될 기회가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자신있게 말하지는 못하겠다. 의류 외에도 거래는 가능하지만 사이즈 필터링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의류뿐이고, 세컨웨어에서 강점으로 제시하는 ‘AI 자동 판매 서비스’가 어느 정도로 효과가 있는지 직접 체감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체 서비스가 의류에 특화된 만큼 홈화면에 보이는 추천 상품은 제법 구경할 만한 것들이지만, 열어보면 의외로 또 내 사이즈가 아닌 게 많다. 이래서야 인공지능이 어느 정도로 어떻게 일을 잘 하는 것인지 영 체감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세컨웨어는 이용자 수가 2023년 4월 기준 585만 명으로, 적은 것도 아니지만 많다고도 하기 어렵다. 홈화면에 제시되는 상품의 무작위도가 높은 당근(이용자 3600만 명)에 비해 고객을 6배 이상 잘 끌어들인다면 판매할 때 세컨웨어를 이용하는 보람이 확실히 있겠지만, 그렇다는 근거도, 그렇지 않다는 근거도 구할 수 없다. 본 사람이 살 확률은 확실히 높겠거니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세컨웨어는 번개장터처럼 전문 판매업자를 지원해주는 편인데, 그 방법이 다소 신기하다. 다른 장터의 내 판매자 정보를 알려주면 그곳의 상품을 알아서 다 세컨웨어에도 등록해주는 것이다. 다른 장터에 수십 수백 가지의 물건을 올려놓은 전문 업자가 그것들을 하나씩 다 똑같이 올리기란 대단히 어려우니 입력 대행으로 대량의 매물을 유치하는 셈인데, 그런 서비스의 영향인지 세컨웨어의 매물에는 촬영용 배경을 마련하고 찍은 전문 업자의 매물이 상당히 많다. 때문에 세컨웨어의 검색 결과는 중고장터보다는 빈티지샵을 보는 느낌이 들곤 하는데, 이것은 장점이나 단점이라기보다는 특징으로 보는 게 좋을 듯하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이제 의류를 집중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만큼 세컨웨어는 의류와 신발을 처분하려는 사람에게 고려할 만한 선택지다. 사이즈 필터링 덕에 이용자가 보는 정보의 순도가 높다는 점이 매력적인 데다가 근래에는 프리미엄 매입이라고 해서 유명 브랜드 의류를 직접 매입하는 서비스를 개시했고, 이것들을 직접 판매하기도 한다. 교환이나 환불도 가능한 터라 구경하러 오는 이용자가 제법 많지 않을까 싶다. 나도 심심치 않게 구경한다. 헬로마켓 시절에 카메라를 여기서 사기도 했고, 신발을 판 적도 있어서 제법 정이 간다. 검색 기능을 편리하게 만들었더니 저렇게 잘 되더라, 하는 업계 모범으로 성장하면 좋겠다.



경험 부족으로 더 다룰 수 없지만, 이외에도 ‘후르츠 패밀리’ 같은 유명 브랜드 중심의 중고 의류 중고거래 앱, ‘데얼스’ 같은 아웃도어 용품 전문 중고거래 앱, 중고 보드게임 거래가 활발한 커뮤니티 ‘보드라이프’ 등 분야별로 특화된 중고장터가 다양하니 해당되는 분야가 있다면 써보길 바란다. 이미 썼듯이 어지간하면 ‘당근’ 하나로 해결되는 게 사실이긴 하나, 더 넓은 범위로 거래하려면 어차피 다른 장터도 알아볼 수밖에 없고, 여러 장터가 활성화되는 편이 잉여 자원의 재분배와 시장 다양성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나 저러나 내 인생에 그닥 영향이 없는 탄소 배출 절약 포인트를 직접 보는 게 그러지 않는 것보다 나은 것처럼, 더 넓은 시야를 갖고 대의를 생각하며 물건을 파는 것도 썩 괜찮은 일이다.




*추신 

저는 언제나 돈과 일을 구하고 있습니다.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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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고 2023년 2차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저의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 지금도 절찬리에 판매중입니다.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살려주세요...

종이책: https://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39577892619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kz1M5 

밀리의 서재 요약본 오디오북: https://millie.page.link/ExY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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