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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May 08. 2024

어디에 팔 것인가 1-당근


팔 물건이 정해졌다면 어디에 팔지 고민해봐야 한다. 물론 어느 한 곳을 정해놓고 거기서만 팔아야 한다는 법이 있는 건 아니니까 심사숙고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시장의 특성을 알아두면 괜한 고생은 덜할 수 있을 것이다.


1. 당근

중고거래 하면 당근이라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예전에는 중고 물건을 팔 때 중고나라로 처분하는 경우가 많아서 ‘안 맞으니 중고나라행’이라는 식으로 표현했지만, 당근마켓이 등장해서 판도가 크게 바뀌었다. 근거리 직거래 위주로 소개하니 버릴 만한 소액 일상 용품도 쉽게 거래되고, 사기 위험도 줄어든 덕에 매우 많은 사람이 부담없이 쓰게 된 것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전국이 하나의 시장으로 묶이는 게 더 나을 것 같지만, 싸고 좋은 물건이라도 살 때 택배를 거쳐야 하면 귀찮을 뿐더러 불안해져서 내키지 않게 된다. 그런 불안과 걱정이 살 만한 물건을 발견한다는 보상의 순도나 확률을 낮추고, 결과적으로 중고 거래를 하는 사람만 하는 남의 일로 만들었다. 이 딜레마를 당근은 ‘애초에 직거래 가능한 범위만 보여주자’로 해결한 셈이다. 덕분에 누구나 당근으로 뭐든지 나누고 거래하는 시대가 열렸고, 빨리 처분해야 할 물건을 싸게 처리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이후로 아주 좋은 물건을 당근으로 싸게 구했다는 자랑이 SNS나 입소문을 통해 널리 퍼지며 중고거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고 안 쓰는 물건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자세를 일부 바꾸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당근은 위에 적었듯이 근거리 직거래를 기본으로 하는 장터다. 검색, 표시 범위를 넓히면 상당히 범위가 늘어나긴 하지만 ‘직접 가기엔 귀찮고 택배로 시키긴 좀 억울한’ 거리까지밖에 늘어나지 않는다. 그 탓에 내 동선에서 꼭 직거래로 팔아치워야만 할 이유가 없고 전국민 누구에게 택배로 팔아도 괜찮을 만큼 작은 물건은 당근으로 파는 게 불리할 수 있다. 다만 범위만 따져볼 때 그렇다는 얘기고, 실제로는 당근의 이용자가 워낙 많은 터라 당근으로 안 팔릴 물건이 다른 곳에서 팔리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아마 서울 같은 대도시에선 당근 외에 다른 시장을 알아보지 않아도 물건 파는 데에 아쉬울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당근은 최근부터 한 장소를 추가로 등록해서 두 장소 인근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변경했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은 거주지에 있는 시간보다 직장에 있는 시간이 기니까 분명 현실적인 수정이다. 나는 직장이 없는 터라 어디 놀러갈 때마다 그 동네를 추가해서 이곳 사람들이 무엇을 파는지 구경하기도 하고 가끔은 물건을 올리기도 한다. 거주지에서 너무 먼 곳을 등록하면 계정이 정지된다는 얘기도 있긴 하나, 시스템이 바뀐 것인지 이상 이용으로 간주되지 않은 것인지 나는 아직 문제가 된 적이 없고, 원래 지역에서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팔리지 않던 물건을 새 지역에서 파는 데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니 노출되는 지역을 필요에 따라 조금만 더 넓혀줬으면 하는 바람인데, 당근은 애초에 ‘당신 근처’의 마켓으로 출발한 데다 지역 기반 커뮤니티로 기능을 강화하고 있는 만큼 당근으로 전국 거래를 할 날은 오지 않을 것 같다.


당근은 거래하기 애매한 물건이나 다루기 힘든 물건을 거래하기 특히 좋다. 너무 싼 물건을 직거래로 처리하기도 좋고 크고 무거워서 택배 거래가 어려운 물건을 와서 가져가라고 하기도 좋다. 택배 거래가 딱히 안 될 이유는 없으니 사실상 뭐든 팔기 좋은 셈이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직거래를 권장하는 터라 택배에 필요한 정보를 주고받으면 경고문이 뜰 지경이며, 택배에 관한한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고 사기 거래 방지에 도움이 될 시스템도 없는 것 같다. 직거래하러 나갔을 때 사람을 찾기 좋게 앱 내 통화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으나 나도 써본 적은 없다. 약속 장소에서 기웃대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 해결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근은 ‘전문업자’가 물건 파는 것을 인정하고 있지 않으며, 내 물건이 상단에 오도록 갱신하는 것도 2일에 한 번만 가능하다. 급하니까 돈을 내고서라도 더 하고 싶어도 그런 시스템 자체가 없다. 하루에 갱신 가능한 게시물의 갯수도 5개로 제한되어 있다. 심지어 15회를 갱신하고 나면 추가 갱신은 불가능하다. 안 팔리는 물건을 한 달 내내 팔려는 사람은 다양한 물건을 오랜 기간 파는 업자로 간주하는 듯하다. 요컨대 진짜 돈을 목적으로 판매에 매달리는 사람이 아닌 일반 이용자의 자연스러운 시장 형성을 추구하는 셈이다. 벼룩시장이나 바자회에 전문업자들이 늘어서서 자기 상품을 파는 게 많이 보이면 영 구경하는 재미가 없어지는 것처럼, 당근의 홈화면에 이웃이 파는 저렴한 물건들 대신에 전문업자 매물이 많아지면 이용자의 기대감이 낮아지리라 보는 게 아닐까. 이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긴 한데, 사실 당근을 비롯하여 여러 장터에 동일 물건을 파는 전문업자를 나는 몇 번이나 찾아냈고, 물건이 안 팔리는 것도 슬픈데 갱신 한도를 넘긴 게시물을 삭제하고 재작성하자면 억울하기까지 하다. 전문업자를 가려내려면 다른 방식이 낫지 않을까?


(당근의 성공은 브랜드 네이밍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당근이 아니라 '빈티지 킹갓엠퍼러' 따위였다고 생각해보라)


당근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이용자가 많고 입문 장벽이 낮아서 매너가 없는 사람을 만나기 쉽다는 것이다. ‘당근 괴담’ 따위를 검색하면 별 이상한 경우를 다 볼 수 있다. 일단 깎아달라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올려놓은 값에 거래될 가능성은 없는 게 아닐까 싶을 지경이다. 가격 제안 불가 표시가 따로 있지만 아무도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5만 원짜리를 3만 원에 달라는 사람이 넘쳐난다. 설명을 읽긴 하나 싶은 사람도 끔찍하게 많다. 택배 거래만 하겠다고 암만 써놓아도 직거래를 요구하는 사람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이래서야 사용법이나 관리에 필요한 방법을 따로 숙지해야 하는 물건은 팔기가 무섭다. 물건을 판 뒤에 한참동안 사용 방법을 채팅으로 안내해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너무나도 무섭다.


이런 식으로 진상까진 아니지만 상대하기에 도무지 유쾌하지 않은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아마 디지털 리터러시나 온라인 거래 매너에 대해 배운 적도 없고 고려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환불을 해달라는 것도 아닌데 뭐 좀 물어보는 게 왜 잘못인가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할인 요청은 분명 사람 영혼을 갉아먹고 판매자가 물건값을 더 비싸게 책정하도록 해서 시장을 교란한다. 그러니 당근은 신고와 차단 말고 적절한 대안을 좀 마련해줬으면 하는 심정이다. 다음중 해선 안 될 행위는? 같은 퀴즈로 포인트라도 좀 주면 안되려나…….


이렇게 써놓으니 당근에서 거래할 생각을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수준으로 보이는데, 그래도 당근은 이용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시장인 데다, 별별 잡다한 물건이 다 나온다는 특징 덕분에 나처럼 벼룩시장 구경하듯 틈틈이 뒤적이는 사람도 많아서 내 물건이 노출될 기회도 많다. 알아보는 사람만 가치를 알아볼 법한 마니악한 물건, 가령 성우 친필 사인이 들어간 드라마 CD 등이 아닌 다음에야 당근에 물건을 올리는 게 손해는 아니다. 그러니 당근을 기본적인 선택지로 생각해도 괜찮을 것이다.



*추신 

저는 언제나 돈과 일을 구하고 있습니다.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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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고 2023년 2차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저의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 지금도 절찬리에 판매중입니다.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살려주세요...


종이책: https://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39577892619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kz1M5 

밀리의 서재 요약본 오디오북: https://millie.page.link/ExY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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