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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Apr 24. 2024

무엇부터 팔 것인가



처분할 물건들이 확실해졌다면 그중에서 무엇부터 팔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날을 잡고 대여섯 개를 한꺼번에 다 올릴 경우에는 불필요한 일이지만, 사실 판매글을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로 작성하자면 세 개 정도만 돼도 제법 진이 빠진다. 구매자가 걱정 없이 살 만한 판매 게시물을 작성하자면 잘 찍은 사진이 많게는 10장까지 요구되기 때문이다. 특히 의류는 사이즈까지 측정해야 해서 더욱 오래 걸린다. 따라서 여기선 몇 주에 걸쳐 물건을 시간 날 때 하나씩 올리는 것을 더 보편적인 경우로 간주하자.


처분할 물건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을 나는 세 가지로 본다. 


1. 부피

물건을 정리해서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면 부피를 기준으로 급한 것을 정해야 한다. 특히 옷장이나 신발장, 책장처럼 보관 장소가 한정적인 물건은 공간이 넘치기 전에 빠르게 처분하는 습관을 들이거나 새 물건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스트레스를 적게 받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보통 수납 공간의 80퍼센트를 상한으로 두라고 하는데, 무리한 요구 같아도 실제로 공간을 좀 남겨둬야 보기에도 답답하지 않고 뒤적이거나 배치 정리를 다시 하기에도 수월하다. 특히 책장은 일반적으로 시선이 자주 머무는 생활 공간을 잠식하는 수납 공간이기 때문에, 중간중간을 비워놔야 그 공간까지 트여 있는 생활 공간의 넓이로 인식해서 답답함을 덜 느낄 수 있다. 믿기 어렵다면 책장에서 눈높이의 칸 중에 가로세로 30센티미터만이라도 잠깐 치워보길 바란다. 다시 채우기가 싫어질 것이다.


이런 식으로 비교를 통한 동기 부여를 하면서까지 물건을 줄여야만 하는 것은 사람이 적응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몇 주 이상 계속 본 물건은 어지간히 걸리적거리지 않는 이상 익숙한 광경으로 여기게 된다. 그런 점에서 옷이나 책처럼 하나씩 점점 늘어나는 물건들도 상당히 위험하다. 인식의 틈을 파고들어 알게 모르게 방대한 공간을 삭제하는 탓이다. 처리할 갯수가 많아서 다루기 번거롭다는 점은 큰 물건보다 더 위험하다고도 할 수 있다. 결국 물건이 크든 작든 우리는 늘 경계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물건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거주 공간을 더 빠르게 넓힐 능력이 있다면 상관없겠지만…….


아무튼, 부피를 기준으로 물건을 처분하면 당장 생활 공간이 바뀌기 시작하므로 정리의 효능감을 느끼기 좋다.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라고 할까. 다만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크고 무거운 물건이나 작은 것들의 집합은 팔아 치우기가 그리 쉽지 않다. 실내 자전거 같은 운동 기구는 특히 처분이 어렵다. 나눔으로 내놓은 운동 기구를 중고 거래 앱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딱지를 붙이거나 신고 번호를 써서 내다버린 물건도 자주 본다. 그만큼 돈 받고 팔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우리집에서는 실내 자전거, 트레드밀, 벨트 마사지기, 로잉머신이 하나씩 처분되었는데, 그 크고 무거운 물건들을 수레로 나르고 구매자 차에 조심스럽게 실은 고생과 아주 소박한 금전적 보상을 생각하면 솔직히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집에서 치워버리는 ‘정리’의 효능감을 느끼기에는 좋지만 ‘판매’의 효능감을 느끼긴 어려운 셈이다. 따라서 책처럼 비교적 확실한 매입처가 있는 물건이 아닌 다음에야 중고 거래의 입문자에게 부피를 기준으로 팔 것을 선정하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큰 운동기구 처분에는 큰 수고가 따른다)


2. 가격

집에 있는 물건 좀 팔아치운다고 얼마나 돈이 되겠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대체로 틀린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3만 원짜리 서너개만 팔아도 무시할 돈은 아니고, 학생이나 무명 예술인처럼 벌이가 시원치 않은 경우는 3만 원도 가뭄의 단비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금전적으로 딱히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취미 생활에 쓸 돈을 제한하고 있다면 취미 생활 용품을 새것으로 교체하는 데에 중고품 판매는 매우 유용한 수단이다. 이런 경우에는 비싼 것부터 팔아서 잔고를 채우는 편이 확실히 매력적이다.


비싼 물건을 찾자면 탈것부터 고급 가구, 희귀 수집품, 예술품, 귀금속, 가전제품 등등 다양한 종류가 있겠다. 그러나 희귀하면 희귀한 만큼 방출할 결심을 하기 어렵고, 고장도 나지 않았는데 쓰지도 않는 고가의 가전제품이 남아도는 경우는 적은 편이라 바로 떠올리거나 찾아내기가 어려운 편이다.


게다가 큰 결심을 하고 처분을 감행해도 아주 만족할 확률은 낮은 편이다. 어느 시기나 장소에서만 구할 수 있는 한정판, 사인이 들어가 ‘프리미엄’이 붙는 물건 등을 제외하면 살 때에 비해 가격이 상당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50만 원짜리 기타를 ‘한 번만 쳐봤으니 45만 원에 팔아요.’ 해봤자 잘 팔리지 않는다. 5만 원 아끼자고 어디가 이상한지 어떤지 알 수 없는 물건을 45만 원에 사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이 때문에 비싼 물건일수록 판매시 회수할 수 있는 본전은 줄어든다. 매우 정상이라는 보증, 또는 무상수리 기간 확인 등의 안전 장치가 확실하지 않은 한 반값도 각오해야 한다. 억울해도 어쩌겠는가, 위험을 감수하고 귀한 물건을 ‘약간’ 싸게 구하려는 사람이 얼마 없는 것을…….


본전 손실 얘기가 나온 김에 중고 거래 가격의 하한선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자.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모든 물건은 싸게 팔면 결국은 팔릴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도 옛날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론과 실제는 같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하등 상관없는 5킬로짜리 덤벨을 1000원에 사기 위해 60분 걸어서 거래장소까지 가거나, 무슨 향기인지 정보가 전혀 없는 향수 샘플 2밀리를 택배비 포함 3500원에 주문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아무리 싼 중고 매물도 거래에 드는 비용이 기대되는 효용보다 높으면 팔리지 않으며, 거래에 드는 비용에는 ‘수고’까지 포함된다는 말이다.


이 ‘수고’는 판매자측에 더 강하게 작용하는 사항인데, 물건을 고르고 검수하고 판매글을 작성하고 문의에 답하고 약속을 잡아 사람을 만나서 건네주거나 적당한 박스에 포장해서 택배로 보내는 과정이란 곰곰이 생각해보면 상당히 귀찮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나처럼 중고 거래를 오랜 기간에 걸쳐 밥먹듯 해서 당연한 생활의 일부로 여기게 되어도 바쁜 일이 많아지면 택배 거래는 물론이고 채팅으로 문의에 답변하는 것조차 번거로워진다. 이럴 때 크고 무겁고 다루기 어렵거나 저렴한 물건은 사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도 팔기 힘들어진다. 내가 얻을 이익보다 지불할 시간과 수고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고로 팔 수 있는 물건의 가치에는 하한선이 존재한다. 물론 무인 점포처럼 알아서 살펴보고 돈을 넣고 가져가라는 식의 ‘문고리 거래’로 수고를 최소화해서 판매하거나, 퇴근길에 정해진 곳에서만 직거래하는 식으로 변수를 줄이면 이 하한선을 더 낮출 수는 있다. 여러 물건을 묶어 파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를 제외하면 나는 판매 가능한 가격의 하한선을 5천 원으로 본다. 그것도 버리자니 너무 아깝고 달리 처분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 것을 꾹 참고 팔 때 얘기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1만 원이 심리적 저항선이다. 1만 원에도 물건이 팔리지 않으면 슬슬 내가 고작 만 원 벌자고 이 귀찮은 짓을 해야 하나 싶어 회의감이 몰려오는 것이다.


사람마다 이 저항선, 하한선은 다르겠지만, 팔 물건을 고르기 전부터, 또는 올리긴 했는데 생각보다 ‘찜’이 덜 된다 싶을 때부터 대강이라도 생각해두는 편이 피로와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구체적으로 무슨 스트레스를 줄여주는가 하면, ‘에잇, 더러워서 내가 그냥 갖다 버리고 만다’라는 식으로 딱히 죄지은 적 없는 잠재적 구매자들을 증오할 일이 줄어든다. 얼마나 사람이 비뚤어지면 중고 물건 안 팔린다고 짜증을 내냐고? 여러 물건에 짓눌리는 동시에 본전을 조금이라도 회수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면 그렇게 되기도 한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소리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애초에 시달릴 만큼 과도한 물건을 소유하지 않는 게 답이지만, 이미 저지른 일을 수습하는 얘기를 하고 있으니 과거를 후회하진 말도록 하자. 우리가 할 일은 미리 생각해둔 절차에 따라 묵묵히 물건들을 처분하는 것뿐이다. 아무리 손해보고 팔더라도 꾸준히 지속하면 넓어진 공간과 차오른 잔고, 그리고 자원을 쓰레기로 만들지 않았다는 작지만 확실한 보람이 보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추신 

저는 언제나 돈과 일을 구하고 있습니다.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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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고 2023년 2차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저의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 지금도 절찬리에 판매중입니다.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살려주세요...

종이책: https://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39577892619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kz1M5 

밀리의 서재 요약본 오디오북: https://millie.page.link/ExY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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