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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Apr 10. 2024

중고 거래가 쉬워졌지만 사고 팔기는 여전히 어렵다

서문



나는 내세울 게 별로 없는 터라 자기 수식용 문구로 ‘중고 거래 외길 20년’이라는 말을 쓰고 다니곤 했다. 약간 과장은 있지만 완전히 거짓말은 아닌 것이, 중고등학교 때부터 보드게임을 취미로 즐기며 잡다한 게임을 커뮤니티 중고 장터에서 사서 하고, 질리거나 잘 맞지 않는다 싶으면 도로 내다 파는 게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별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한글판 보드게임이 쏟아지지도 않았고 해외 직구를 하자면 대단히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 호된 비용을 지불하고 오래 기다려야 했던 데다, 심지어 한국어 번역 자료까지 따로 준비해서 문자 그대로 직접 ’패치‘해야 했으므로, 게임을 중고로 거래하는 일련의 과정은 그냥 당연히 거쳐야 하는 과정이나 다름없었다. 마치 스마트폰이 없던 때 공중전화를 쓰는 게 너무 당연해서 불편하다는 느낌조차 받지 못한 것처럼.


그런 식으로 아무렇지 않게 중고 거래를 일찍부터 몸에 익히고 살다 보니, 별안간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했다. 곧이어 여러 중고 거래 앱들이 나와서 컴퓨터를 켜지 않고도 중고 거래 글을 검색하고 자기 물건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카메라를 동원해서 사진을 찍고 메모리카드에서 데이터를 뽑아 첨부한다는 성가신 짓을 생략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가히 혁신적인 변화라 할 만했다. 여러 기기가 통합되고 항시 인터넷 연결이 되는 환경이 갖춰지며 중고 거래도 날개를 단 셈이다.


하지만 중고 거래가 정말로 일상화된 것은 ‘당근마켓’의 등장 덕분이었다. 사내 플랫폼으로 시작되어 지금은 중고거래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성장한 이 앱은 가까운 동네 사람들끼리 간편히 만나서 물건을 직접 보고 거래하자는 콘셉트가 주효했다. 나처럼 마니악한 물건을 거래하는 사람은 전국의 마니아를 찾아야 거래가 가능했던 터라 택배 거래가 기본인데, 사실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택배 거래를 번거로워서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쉽게 다닐 수 있는 범위만 제한적으로 보여줘서 직거래를 권장한 당근마켓은 너도나도 잡다한 물건을 쉽게 사고 팔수 있게 해줬고, 재택 근무가 보편화된 코로나 19 유행기를 거치며 일상속에 확고히 자리잡았다. 필요없는 물건을 ‘당근 해야지’라거나 무엇을 ‘당근’으로 싸게 구했다는 말은 이제 설명이 필요없고, 심지어 다른 앱으로 예약해서 직거래를 하면서도 당근하러 오신 분 맞냐는 질문도 주고받게 되었다.


요즘 세상 참 좋아졌다는 말이 비난받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중고거래 환경과 인식의 변화는 정말 너무나도 엄청난 터라 그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주머니에 넣어 다니는 통신 기기로 사진을 찍어서 바로 판매글을 올리고, 필요한 물건을 바로 검색해서 구매자와 판매자가 실시간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이런 광경은 신기술에 대한 상상을 즐기고 과학 소설을 쓰기도 하는 나도 예측하거나 상상해본 적이 없다. 신기술을 생각하면 자연히 새 상품, 새 물건에 초점을 맞추지 헌 물건을 다루는 생활의 양상을 떠올리진 않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과잉 생산과 과잉 소비를 줄이고 자원을 다시 쓰는 일이 중요해진 지금은 기술의 발전이 생활을 어떻게 바꾸었나 짚어볼 때 중고 거래의 양상도 다룰 만하다고 생각한다.


(매장에 가야 했던 과거와 달리 중고 거래의 장도 초연결 공간에 들어왔다)


그러나 이렇게 중고 거래가 편리해졌음에도 중고 거래를 고려하지 않거나 대단히 귀찮게 여기는 사람도 아직 많다. 2023년 하반기 컨슈머인사이트 조사에 따르면 1년 내에 중고거래 앱을 이용해본 사람은 60퍼센트다. 따라서 40퍼센트는 이용하지 않은 셈인데, 나는 그 이유를 중고 거래가 번거롭고 복잡한 데에 비해 보상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물건을 팔려면 사진도 찍고 글도 써야 하며 가격도 알아봐야 할 뿐더러 문의자의 질문에 대답도 하고 거래가 성사된 후에도 물건을 택배로 보내거나 약속을 잡아 건네줘야 한다. 사는 쪽도 쉽지 않은 건 매한가지다. 물건을 다루는 품은 덜 들지만, 내가 찾은 물건이 괜찮은 물건인지 아닌지 가격이 싼지 비싼지 알아보기도 이만저만 어렵지 않다. 심지어 뉴스에서는 파는 쪽에서 사기를 친 사건도 사는 쪽에서 도둑질을 한 사건도 심심치 않게 나오는 데다, 큰맘먹고 거래를 시작해도 매너가 이상하기 짝이 없는 사람을 접하는 경우마저 있다.


이런저런 연유로 아직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물건들이 수없이 버려지고 새 물건이 소비되는 것을 생각하면 여간 안타깝지 않다. 이미 여러 해 동안 엉망진창으로 오르내리는 기온을 겪으며 잘 알게 된 기후 위기 문제를 떠나서 생각하더라도, 무엇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제 수명보다 이르게 끝을 맞이하는 모습은 마치 재능 있는 젊은이가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광경처럼 비극적이다. 새것으로 대체하면 그만일 물건에 비극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과하다 싶으면 비합리적이라는 말로 대신하자.


사실 나는 중고 거래를 하거나 낡은 물건을 고쳐 쓰는 일이 비용과 노력을 계산해볼 때 합리적이지 않을 때가 많다는 한탄을 글로 쓴  적이 있다. 그 생각은 여전히 그리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합리적이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이지 모조리 틀렸다는 말은 아니며, 들이는 노력과 위험부담을 조금씩 줄이면 합리적인 방향으로 저울눈이 기우는 경우도 아주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노력과 위험부담을 줄일 가장 간단한 방법은 중고 거래를 하는 방법과 주의점에 대해 미리 익히는 것이다.


지난 20여년에 걸쳐 나는 의무감이나 사명감 없이 자연스럽게 중고거래를 하고 낡은 물건을 고쳐 쓰면서 지냈고, 근래에는 그 이야기를 열심히 전하려 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이야기들은 그런 생활에 대한 나의 경험과 상념을 다룬 것이지, 실전적 방법론을 다룬 것은 아니었다. 이에 이번에는 작정하고 방법과 요령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물론 이 역시 지구를 구하고 세상을 더 나은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뜻이 넘쳐서라기보다는 그간 했던 이야기와 다른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하는 시도 때문이라 할 수 있겠으나, 이어질 글이 많은 사람에게 참고가 되어 중고 거래에 나설 마음을 먹는 이가 늘고 거래 환경이 한결 나아진다면 나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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