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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걷고 싶은 북한산 의상 능선의 설경(개정)

-설산을 걸어본 자는 등산에 사로잡히는 법

by 이건해



사패산의 설경을 헤매다 구사일생으로(과장이다) 돌아온 나는 공모전용 원고 수정에 다시 매달렸다. 그러나 별로 잘 되지 않았다. 잘 풀리는 소설은 술술 풀려 작품 완성도와 별개로 며칠만에 끝나는데, 이번 소설은 늘이고 고치고 다시 바꾸기를 반복하자 단편으로 출발한 게 누더기 중편이 되어 있었다. 계획과 다르게 마구잡이로 만들어진 물건을 보기좋고 짜임새 있는 듯하게 고치기란 지난한 일이라, 나는 자신이 본격적인 암흑기에 빠져들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게 아마 사실일 것이었다. 산에 다니며 내가 물리적으로 오르기 힘든 곳에 올라갈 수 있다는 건 알게 되었지만, 그리고 그게 무척 기분 좋은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삶의 다른 부분까지 개선되거나 새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 건 아니었다. 새로운 취미를 갖게 된 이후 인생이 바뀌었다며 강연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수도 없이 많아도 나는 거기 속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러거나말거나 눈 덮인 사패산에서 느낀 재미를 잊지 못하고 다음주에 곧장 북한산에 가기로 했다. 목표는 의상 능선. 봉우리를 여러번 오르내리는 능선이라 근래에 들어 정비가 되기 전에는 무시무시한 고급자 코스로 불렸다는 곳이다. 얼마나 힘든지 험한 능선으로 가장 유명하다는 설악산의 공룡 능선을 가기 전에 연습삼아 다니는 코스라고도 한다. 그러나 나는 내가 그곳을 오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같은 건 전혀 하지 않고 아무 망설임 없이 출발했다. 서울 산은 다 가봤으니 까짓 거 못 갈 이유도 없지 않나, 하는 자신감이나 만용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쉬엄쉬엄 가면 딱히 못 갈 이유도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실제로 겨울에는 물이 다 떨어져 위험해질 일도 없으니 고열량 음식과 배터리만 충분하다면, 그곳이 걸어다니는 길인 이상 얼마든지 다닐 수 있을 것이었다. 게다가 나는 또 혼자 갈 테니까 아무도 그만 내려가자고 하지 않고, 조금만 더 가자고도 하지 않는다. 내키는 대로 가다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는 내멋대로 내려가면 된다. 어느 시점부터 힘들어 죽을 지경이 되는가, 무릎이 맛이 갈 예정이 되는가는 이제 민감하게 포착할 수 있으니 딱히 건강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다. 요컨대 목표도 책임도 없으니 실패할 것도 없는, 완전한 여가 생활의 영역이다. 아마도 이렇게까지 완전무결한 수준의 여가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의상 능선으로 가는 길은 지하철을 타고 가서 구파발에서 버스를 타야 했다. 서울 산만 다닌 만큼 어지간한 산은 다 지하철만 타고 다닌데다가 원래 버스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약간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래서 북한산성 탐방 지원 센터에서 가는 원래 코스 대신 지하철역 인근의 들머리를 통해 일단 북한산의 아무 길로나 올라서는 방법을 찾아봤으나, 원래 가려던 의상 능선과는 너무 다른 길을 길게 가야 하는 데다가 모르는 길을 헤맬 위험은 가급적 피하고 싶었다. ‘길을 잃지 않으면 새 길을 찾을 수 없다’는 격언도 있지만 그건 인생살이와 도전에 대한 얘기고, 일반 등산객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산속에서 눈을 맞으며 같은 길을 몇 번이나 돌고 어느 바위 틈을 빠져나가야 하나 몸을 여기저기 밀어넣어보면 길을 잃는 낭만도 적당한 수준이 좋다는 걸 알게 되는 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야 했으니, 바로 새 아이젠을 사는 것이었다. 집에 있던 아이젠이 맞질 않아 산에 가는 길에 사야만 하는 상황이었으므로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 방면처럼 등산용품 상점가가 있는 방향을 택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고로 나는 마지못해 구파발에서 버스를 타고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 쪽으로 걸어올라가게 되었는데..... 버스를 타고 오래 이동하는 기분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그 시간에 북한산 옆을 지나는 버스를 타는 사람들이라곤 대개 등산객들인지라, 끼리끼리 지하철보다 더 좁은 곳에 모여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비슷한 목적을 갖고 이동하자니 알게 모르게 동지의식 같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든 안 하든 인생에 별반 차이가 없는 활동에 오늘 하루를 바치기로 한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그 느슨한 동지의식은 시위나 봉사활동, 혹은 여행에서 느끼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참견 당하지 않을 정도로 혼자인 동시에 무슨 일이 생기면 도움을 청할 수 있을 정도로 집단 속에 있다는 실감이랄까. 거기에 자신이 기행을 하고 있지는 않다는 안도감까지 느껴져 마음이 편했다. 넓은 공간과 긴 시간을 공유하는 취미인들이 한 자리에 모인 순간의 느슨한 매력이라 할 만하다.


버스에서 내려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 방면으로 걸어가는 길은 넓고 한적했다. 도봉산 앞은 좁고 복작복작한 마을 같은데 비해 이곳은 번화한지 오래 지난 읍내같다. 등산용품점과 아웃도어 용품 대리점이 제법 많이 보였으나 도봉산 앞보다 수가 적은 듯했고, 무엇보다 길이 넓어서 구경 갈 생각이 잘 들지 않았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대며 걷다가 때마침 아이젠을 쌓아놓고 파는 점포가 있기에 들어가서 등산화에 맞나 차보고 15000원에 구입했다. 너그러운 인상의 주인장은 내가 가게를 나설 때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인사를 해줬다. 단순한 인사일지라도 그 말에선 온기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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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적한 길 끝에 뾰족한 산이 보인다)



참고로 내가 산 아이젠은 체인형 13점으로, 스파이크들을 쇠사슬로 연결해놓은 방식이었다. 13점은 스파이크가 열세 개라는 뜻이다. 그런데 왜 열 세 개일까? 스무 개쯤 있으면 더 고정도 잘 되고 발바닥도 더 평평해져 걷기 좋지 않을까? 아이젠을 사기 전에 찾아봤다. 스파이크가 많아지면 걷기 편한 대신에 스파이크 사이에 눈덩이가 뭉치기 쉬워진단다. 그러면 당연히 눈덩이를 붙이고 눈 위를 걷게 되어 아이젠을 쓰나마나가 된다. 결국 편안함과 실용성 사이에서 잘 타협한 지점이 13점 가량이라는 것이다. 어떤 물건에 숫자가 붙어 있으면 그 수가 클수록 좋을 거라고 넘겨짚는 경향이 있는데, 역시 뭐든 잘 알아보고 정할 일이다.


살 것도 샀겠다, 걸음을 재촉해서 의상 능선으로 향했다. 북한산성 방면 등산로는 가장 대중적인 길이라 그런지 대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큰 도로가 나 있어서 영 걷는 맛이 나지 않았는데, 의상 능선으로 통하는 길은 그 대로 중간에 있었다. 뒷산 산책로보다 더 작은 샛길이라 그 악명 높은 능선으로 간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 길이었다. ‘의상 능선 진입로, 어서오십시오’같은 대문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 악명에 걸맞은 표식 하나쯤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


참고로 이날 나는 유니클로 히트테크 위에 라푸마의 플리스를 입고, 그 위에 K2의 바람막이를 걸쳤으며, 바지는 컬럼비아에 등산화는 네파, 배낭은 블랙야크, 등산 스틱은 헬리녹스, 양말은 다사마라는 꼴로, 그야말로 일부러 브랜드 중복을 피하려고 작정한 듯한 상태였다. 집에 있던 것을 발굴하거나 되는대로 싼 것을 그때그때 구한 탓이다. 등산계에서 교복이라 불리는 고가품을 써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나, 나는 적당한 물건을 싸게 구해서 얼마나 쓸만한지 시험해보는 것도 등산의 커다란 즐거움으로 여기는 터라 불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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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간의 유무보다 디딜곳의 상태가 난이도를 좌우한다)


의상 능선으로 들어가는 길에 나는 곧바로 바람막이를 벗고 플리스 차림이 되었다. 0도에 가까웠지만 그 판단은 금방 정답으로 밝혀졌다. 한 30분도 지나지 않아서 난간 없이 오를 수 없을 지독한 경사로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이렇게까지 빠르게 험해지는 길이 다 있나 싶어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런 한편으로 상반신까지 혹사하며 산을 기어오르는 작업에 깊은 희열을 느꼈다. 눈이 있든 없든 역시 등산은 네 발로 기어다녀야 제맛이다. 그리고 ‘제맛’ 운운할 정도로 즐겁다면 다른 의미 같은 건 딱히 찾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닐까.


그런데 잠시 후, 30분도 지나지 않아서 시작부터 만만치 않다고 느낀 초입이 몸풀기 수준에 불과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난간마저 사라져서 등산스틱으로 땅 짚기를 포기하고 손으로 바위나 나무를 붙잡아야 마음이 놓일 정도로 가파르고 거친 길이 나타난 것이다. 이게 사람 다니는 길이란 말인가 투덜대면서도 오르막을 기어오르고 나니 금방 난간이 다시 나왔지만, 난간이 있다고 체력 소모가 덜해지는 길은 아니었다. 체감상 60도는 되는 것 같은 봉우리를 기어오르는 꼴이라 몇 번이나 멈춰서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숨을 돌리며 아래를 내려다보자니 멀리는 이미 어지간한 산 정상에 올라온 것처럼 도시의 풍경이 펼쳐졌고, 가까이는 단순히 ‘경사로’라고 표현하면 안 될 것 같은 암벽이 이어졌다. 등산할 때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내가 이런 길을 올라왔다니’ 싶어서 놀랄 때가 종종 있지만, 이 길은 그 수준이 각별했다. 이런 급경사는 많아도 이런 길이 이토록 길게 이어지는 건 처음이었다. 의상 능선을 이 방면으로 내려가는 짓만은 하고 싶지 않을 지경이었다. 험로가 즐거운 건 그게 오르막일 때 뿐이다. 그러나 어디선가 우는 까마귀 소리를 들으며 새삼 감탄하고 있자니, 내 옆으로 새빨간 바지가 눈부신 중년 남자가 따라잡기 힘든 속도로 능선을 올라가는가 하면, 핑크색 등산복을 입은 중년 여자가 능선을 별 망설임 없이, 이런 건 일상의 풍경이라는 듯 내려가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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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로를 걷는 속도는 제각각 다르다)


느슨하게 사는 동안 내가 잘 못하는 일을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척척 해내는 걸 보고 놀랄 때가 원래 많긴 했다. 이제는 슬슬 익숙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충격을 이렇게까지 빠르게 체감하기 쉬운 방식으로 받자니, 순간적으로 나는 대체 뭘까, 육체적으로도 무능하고 발전이 없는 인간인가 싶었다. 돌이켜보면 그간의 등산 모두 코스 소개에 나오는 완주 시간보다 20퍼센트는 더 걸렸다. 느긋하게 앉아서 라면을 끓여먹거나 담소를 나누는 것도 아닌데 그 모양이니 내가 대단히 느리거나 자주 쉰다는 건 확실한 사실이었다. 게다가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서울의 높은 산을 다 가봤으면 이제 좀 더 빨리 다닐 수도 있어야 할 텐데......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등산을 시작한지 석달이 좀 지났을 뿐이고, 심지어 그 사이에 무릎이 상했다. 게다가 빠르고 과감한 게 등산의 미덕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다시 난간을 잡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느린 것이 정말로 나의 한계라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갑자기 마음을 고쳐먹고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극복하지 못했다고 해서 잘못이 되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기록을 세우고 싶었던 것도 남과 수준을 맞추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내가 가진 힘에 맞게 즐기며 다니고 싶을 뿐이고, 걸음이 느리다 해서 산이 도망가는 것도 아니니 굳이 애써 낙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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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송이를 품은 침엽수 너머로 흰 봉우리가 보인다)


지독한 오르막을 30분쯤 더 가자 토끼 바위라 불리는 독특한 바위가 나왔고, 경사는 슬슬 완만해졌다. 봉우리 정상에 가까워졌다는 말이다. 높아진 고도를 증명하듯 곳곳에 쌓인 눈이 점점 많아졌다. 바위 위에도 침엽수 위에도 흰 눈이 쌓여 있었고 건너편의 가까운 봉우리는 대부분 흰색으로 덮였는데, 봉우리 정상은 뿌연 구름에 가려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나도 걸어서 구름 높이까지 올라온 셈이다. 조만간 눈이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듯했다.


좀전까지보다는 비교적 완만한 오르막을 30분쯤 더 오르자 드디어 의상봉에 도착했다. 봉우리치고 흙이 많아서 밝은 갈색의 흙과 흰 눈이 여기저기 뒤섞였고 그 위에 침엽수들이 길을 이루고 있었다. 의상봉이라 적힌 나무 기둥 옆에 감사하게도 벤치가 둘 놓여 있기에 쓰러지듯 주저앉아 숨을 돌리며 식사를 했다. 김밥은 싸늘했고 그 자리에서 기막힌 경치가 보이는 것도 아니었으나 나는 일단 의상봉에 도착한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걸음걸음 퍼즐을 풀듯이 적합한 곳을 디디고 당기며 가혹한 경사를 지나 봉우리 위의 쉼터에 나를 내려놓을 수 있었으니 다른 보상은 딱히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러닝의 목적이 이동이 아니듯 암릉길을 오르는 것도 반드시 목적지가 필요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달성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행위야말로 삶을 비옥하게 만드는 양분이 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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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봉 능선의 거점인듯 표지가 어지럽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송이가 작고 반쯤은 비처럼 느껴지는 눈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걸을 때는 물기 없이 좀더 눈다운 눈으로 변했지만 걱정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 날 내가 입은 바람막이는 K2 제품으로, 등산용 하드쉘도 소프트쉘도 아니고 안감이 약간 있는 간절기용 일반 바람막이였다. 눈 내리는 날에 굳이 하드쉘을 놓고 일반 바람막이를 입고 온 건 실험 때문이었다. 그동안 나는 등산용품 중에서 고어텍스 따위 하드쉘이 정말 중요한 장비라고 생각하고 싸고 좋은 걸 찾느라 혈안이 되었는데 그게 맞는 생각인지 궁금했고, 0도 언저리의 온도에서 튼실한 플리스와 바람막이 조합으로 버틸 수 있나 알고 싶었다. 물론 이 실험은 비옷과 패딩을 따로 챙겨 만일의 상황을 대비한 상태로 진행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평범한 바람막이도 예상보다 자기 역할을 잘 해줬다는 것이다. 종종 털어서 그런지 눈 녹은 물이 스미지 않았다. 바람이 뚫고 들어와 시린 구석이 생기지도 않았으며 특별히 덥거나 춥지도 않았다. 대단히 만족스러워 안도한 한편으로 괜히 하드쉘을 찾아다녔다는 후회도 들었다. 요컨대 주의깊게 사용하면 완전방수가 되는 제품이 아니어도 가벼운 강설은 버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방수투습 하드쉘이 쓸모없는 사치품이라는 말은 아니고, 안전상 있으면 좋지만 ‘등산을 하고 싶은데 고어텍스 재킷을 20만 원이나 주고 사야 하나’하는 고민 끝에 등산을 포기하거나 위축감을 느낄 건 아니라는 소리다. 초보가 다닐 만한 환경, 즉 폭우나 폭설이 내리지도, 미친듯한 바람이 불지도 않는 환경에선 나일론 바람막이에 비상용 비옷을 챙기는 것만으로 충분한 듯하다.


이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서울과 근교에서 벗어날 예정도 극한 상황이 펼쳐지는 코스를 갈 예정도 당분간 없는 내가 중고장터에서 이 제품 저 제품 샀다 환불하거나 팔기를 반복하는 비극은 겪지 않았을 것이다. 더 여유를 두고 정말 괜찮은 물건을 하나만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실패를 겪으며 배운 것도 많지만(내구성은 고어텍스가 탁월하다는 사실 등) 꼭 돈과 시간을 들여 알 필요는 없는 것들이었다. 정말 알아둬야 했던 것은 내가 이미 갖고 있는 것도 제법 괜찮다는 사실이었을지도 모른다. 요즘도 자꾸만 더 좋은 물건을 찾아다니는 장비병에 시달리곤 하는데, 그때마다 바람막이의 교훈을 떠올리려 한다. 더 나은 것을 가져야만 한다는 불안은 내가 가진 것의 가치를 확인함으로써 잠재울 수 있는 것이다.


숨도 충분히 돌렸고 밥도 먹었고, 눈이 내려도 어디가 젖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진 않았으므로 걸음을 재촉했다. 의상봉에서 의상능선을 따라 가는 길은 약간 내리막을 거치게 되었는데, 봉우리 바로 옆 능선에 발을 올리자 곧바로 탄성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딱 한 명 걸어갈 길이 나 있는 바위 능선은 좌우의 침엽수보다도 높이 솟아 있어서 드높은 산과 산 사이의 구름다리를 걷는 듯했기 때문이다. 도봉산 Y계곡 위에서 신선대로 가는 능선은 오싹하도록 좁고 뾰족한데다 난간까지 설치되어 백척간두를 걷는 극적인 기분이 들었던 반면에, 이곳은 난간도 없고 길도 평탄한 흙길에 가까워 비교적 평온했으며, 평온하면서도 앞뒤로 치솟은 봉우리들이 눈을 얹은 모습이 이어져 수묵화 속을 걸어 이 세상이 아닌 어딘가로 가는 듯했다. 나는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 펼쳐진 비경을 몇 번이고 돌아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의상봉을 오른 뒤에는 경치 같은 보상이 없어도 만족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옆에 광대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북한산이 품은 감동은 보고 또 봐도 다 즐길 수 없을 만큼 많겠지만 의상봉에서 이어진 능선의 눈덮인 풍경 사이로 지친 몸을 옮기는 순간은 그중에서도 각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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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리 사이를 걷는 길이 마치 허구 같았다)


그림처럼 비현실적인 능선에서 살짝 내려가자 북한산성 성벽과 가사당암문이 나왔다. 암문은 성문 중에서 누각이 없는 일종의 쪽문으로, 비교적 좁고 네모난 구조가 특징적이었다. 굴다리와 흡사해서 별다른 매력이 없는 이 문은 그래서 오히려 정감이 가는 구석이 있었다. 누가 보든말든 방어시설로서 건설되어 자리를 지켜온지 300년이나 된 성문이 아닌가. 나는 가사당암문의 소박한 모습을 사진에 담고, 북한산의 성문들을 모두 돌아보는 북한산 성문 종주도 퍽 재미있고 보람된 산행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실 곰곰이 따져보면 아무도 시킨적 없고 한다고 특별히 인생에 득될 것도 없으며 대단한 재주라고 인정받을 수도 없는 짓인데, 그럼에도 별안간 해보고 싶어지는 게 등산만의 이상한 지점인지, 아니면 인간의 본질적인 도전 정신의 발현이지는 모를 일이다.


이후로 다시 거친 오르막과 약간의 내리막이 연달아 이어졌다. 원래 쌓여있던 눈 위에 방금 내린 눈이 뒤덮여 그냥 가기도 벅찬 길이 미끄러워지기까지 해서 상당한 난코스가 되었으나, 그래도 대체로 난간들이 말끔히 잘 설치되어 있어 아이젠을 끼지 않고 그냥 올라가는 데에 큰 무리는 없었다. 사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이젠을 끼는 게 당연히 안전할 텐데, 나는 기대보다 좀 비싸게 산 아이젠이 닳는 것이 싫어서 정말 미끄러워 걷기가 어려워지기 전까지는 아이젠을 끼지 않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내가 아무리 물건 아끼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해도 이건 과도한 만용이었다.


눈이 좀 그치는가 싶더니 다시 사방이 뿌옇게 변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용출봉(해발 571m)은 멋진 침엽수가 많이 자란 봉우리라는 것만 확인하고 지나가야 했다. 그 뒤에는 할미바위라 불리는 바위를 볼 수 있었다. 모아이 석상처럼 머리와 몸통처럼 보이는 바위였는데 할머니처럼 보이는지는 알 수 없었다. 기암괴석이 보여주는 우연의 신비도, 그 우연의 결과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의 마음도 신기한 것이다. 이런 바위를 발견하고 남들을 만나 ‘거기 봉우리 옆에 할머니 닮은 봉우리가 있더라’하며 이름을 퍼뜨린 사람은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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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바위. 인간은 사물에서 쉽게 인간을 찾곤 한다)


또다시 좁아진 바위 능선을 지나자 나타난 곳은 용혈봉(581m)였다. 이곳은 좀전에 오른 용출봉보다 더 나무가 적고 높이 솟아서 주변 경치를 조망하기 좋은 곳일 듯했는데, 이때쯤에는 또다시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해서 봉우리 너머를 분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사패산에 갔을 때처럼 만들다 만 저사양 컴퓨터 그래픽의 세계에 오른 듯했다. 눈 밟는 즐거움과 설경을 조망하는 즐거움을 동시에 즐기는 것도 운이 따라야 할 모양이었다.


다음으로는 부왕동암문을 보고 나한봉(681m)으로 올랐다. 어지간한 서울 근교 산보다 더 높은 봉우리다. 고도가 높아지면 온도가 내려간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슬슬 눈이 발목까지 올라올 정도로 쌓인 곳이 제법 되었다. 산에서는 사계절을 다 준비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정말 정신차리고 보면 환경이 너무 달라져 기겁할 때가 많다. 다행히 눈이 아직 밟히지 않고 깨끗한 터라 아이젠 없이 걸어 올라갈 수 있긴 했는데, 왜 사람이 아직 지나가지 않았을까 의아해하며 데크 계단 앞까지 가서 보니 내가 지난 길은 사실 길이 아니었다. 또 설경에 속아서 길을 잃어버린 셈이다. 이렇게 산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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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푹푹 빠지는 사면. 길이 감춰진 게 아니라 길이 아니었다)


나한봉에 가까워지자 갑자기 사람이 많아졌다. 그간 지나온 길을 생각하면 번화가라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등산객 대부분이 아이젠을 낀 채 신이 나서 어쩔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는데, 놀이공원이나 눈썰매장에서나 볼 법한 모습이었다. 즉,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무거운 짐을 지고 가혹한 오르막을 600미터쯤 기어오르는 고생을 했으면서도 눈덮인 산속을 어렵게 걷는 일의 기쁨에 겨워있는 것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빠르게 바람을 가르는 재미나 물속을 누비는 자유를 맛보는 것도 아닌데, 위험하기까지 한 길에서 몸을 혹사시키며 행복감에 젖는 괴짜가 이렇게 많고 거기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생각할수록 놀라운 일이었다.


나한봉으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기억이 정확치 않다. 나한봉이 아닐 수도 있다). 네파의 낡은 등산화로 잘 버티긴 했지만 슬슬 아이젠을 착용해야겠다 싶었는데, 때마침 내려오는 여자 등산객 한 분이 말을 걸었다.

“아이젠 없으시면 이 위는 힘드실 거예요.”

투명한 공기가 음성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마치 이영애 같은 목소리였다. 내가 갖고 있다고 답하자, 그녀는

“그럼 차세요.”

하고 스르르 지나갔다. 자연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인간의 모습에 한탄하는 산의 수호자 같은 사람이었다. 묘한 신비감 때문에라도 충고를 들어야할 모양이었는데...... 반대로 대체 어느 정도길래 힘들 거라고 지나가던 이가 충고할 정도인가, 아이젠이 없다면 어떻게 되나 궁금해져서 신화 속의 흔한 맹추처럼 일단 그대로 진행했다.


그리고 잠시 후, 눈 쌓인 경사면을 오르던 나는 그 충고가 괜한 소리가 아니었음을 깨닫고 바로 옆의 바위에 걸터앉아 아이젠을 착용했다. 그동안 지나온 길과 달리 그곳은 경사가 심한데다 잡을 것도 없고 다져진 눈이 반쯤 얼음이 되어 발이 도통 고정되지 않고 쭉쭉 밀려났기 때문이다. 걷기 힘든 정도가 아니라 전진이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그 등산객의 경고는 과장 하나 없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눈길의 공포를 몰랐던 나는 새삼 아이젠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만약 아이젠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 길을 만났다면, 그게 한참 하산하는 도중이었다면 얼마나 낭패스러웠을 것인가. 특히 하산길은 다른 길로 돌아가려면 갈림길이 나올 때까지 온 길을 도로 올라가야 하니 두 배로 가혹한 지경일 것이다. 안전한 방법이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아이젠을 차고 난 뒤에는 거짓말처럼 걸음이 안정되었다. 스파이크로 바닥을 찔러 고정하니 당연한 일이다. 착화감도 나쁘고 소리도 거슬리긴 했어도 안정적으로 걸을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었다. 덕분에 오래지 않아서 나한봉의 치성에 오를 수 있었다. 치성은 바깥 방향을 향해 ㄷ자로 돌출된 성곽이었는데, 설명을 읽어보니 관측과 적 공격에 유용한 구조라는 모양이다. 바깥으로 돌출된데다 높은 만큼 강화도까지 보일 정도라니 과연 오를 가치가 있는 봉우리였다. 그러나, 여전히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는 터라 성벽 바깥은 완전한 백색의 장막에 감싸인 듯했다. 한참 길을 헤맨 끝에 사패산 정상에 올랐을 때보다 아깝게 느껴졌다. 의상봉에 올랐을 때만해도 암벽을 오르는 것 자체가 보상이라고 해놓고 벌써 마음이 바뀐 것이다. 여기까지 들인 시간이 있는 탓이겠지만 정말이지 간사한 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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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자로 도드라진 성곽이 인상적인 나한봉)


이후로는 성곽을 따라 봉우리를 조심조심 내려갔다가 청수동암문을 지났다. 청수동암문 역시 규모가 약간 더 클 뿐 부왕동암문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돌문이었는데, 눈 쌓인 유적지 사진을 찍자니 즐거우면서도 불현듯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아름다운 순백의 설경 사이에 자리잡은 회색빛의 수수한 문은 모든 게 다 결국은 버려지고 잃어진다는 진실을 표상하는 것 같기도 했다. 자연이 빚어낸 풍경을 볼 때는 마냥 즐거워하다가 눈 덮인 유적을 보자마자 어두운 상념에 사로잡히는 것은 분명 불완전한 채로 혼자 걷는 인간의 동병상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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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덮인 모습이 고적한 청수동암문)


그로부터 오래지 않아서 다음 봉우리인 문수봉(727m)에 올랐다. 북한산에서 걸어올라갈 수 있는 봉우리 중에 손꼽히게 높은 봉우리에 도착한 것이다. 힘들고 어렵다는 악명대로 봉우리를 오르내리길 반복한 끝에 도착한 정점이니 개인적으로 기념할 만한 기록이었다. 그러나 의상봉까지 오르는 과정에 비하면 길이 잘 닦인 편이라 생각보다 힘들지도 않았던데다, 구름이 봉우리까지 내려온 것인지 이제는 불과 몇십 미터 아래조차 뿌옇게 보일 지경이라 드높은 봉우리를 정복했다는 실감은 전혀 나지 않았다. 영화로 비유하자면 손에 땀을 쥐는 위기도 결말의 멋진 장면도 없이 시간이 다 흘러가버렸다는 말이다. 이래서야 조만간 다시 오는 수밖에 없다. 그때는 또 그때의 풍경이 반겨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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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봉에서 성곽이 잘 보이지 않는다. 기상악화의 수준이 도시와 몹시 다르다)


문수봉에서 내려온 나는 성곽을 따라 대남문과 대성문을 보고, 그러고도 계속 걸었다. 눈이 제법 쌓인데다 작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 이어져 만만치 않았는데도 걷는 게 즐거웠다. 쓸쓸함을 주었던 암문과 달리 화려한 성문은 경탄을 선사했고 성곽은 최소한 길을 잃을 걱정은 없다는 안정감을 주었다. 유적지 같은 곳에서 흔히 ‘선현의 숨결을 느끼며 걸어봐요’ 같은 안내를 하곤 하는데, 이곳처럼 또렷한 형상으로 조상들의 자취를 따르며, 심지어 그것의 도움을 받으며 걷는 길도 드물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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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어도 사람 다니는 길임을 성곽이 굳건한 모습으로 알려준다)


나는 걷기 편하지 않아도 몹시 즐거웠고, 날이 추워져 버프로 입과 귀를 가려야 했는데도 신이 났다. 이상할 정도로 피곤하지 않아서 계속 걷고 싶어졌다. 이보다 더 즐겁게 걸을 길을 만나기 어려울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북한산 성곽을 따라 도는 종주에 돌입해볼까 하는 충동을 느꼈다. 일종의 ‘러너스 하이’에 빠져든 것이다. 코스를 확인하려고 진지하게 지도를 들여다보기도 했는데, 그게 그리 가벼운 마음으로 뛰어들 일도 아니라는 걸 금방 알게 되었다. 이날 걸은 것 이상의 거리를 더 걸어야 했던 것이다. 그 와중에 이미 다섯 시를 넘겼으니, 완벽한 어둠 속에서 눈덮인 산속을 헤매고 싶은 게 아니라면 당장 하산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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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년 된 성벽에 며칠도 가지 못할 눈사람이 놓여 있었으나 어느것이고 아름다웠다)


결국, 나는 보국문까지 가서 발을 돌렸다. 거기 무슨 의미가 있어서는 아니고 화장실이나 찾아갈까 싶어서 대동문을 향하다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리기에 중도 포기한 것인데, 그게 뜻밖에도 좋은 선택이 되었다. 보국문에서 이어지는 하산길은 정릉길로, 초보에게 추천하는 완만한 계곡길 중에서도 특히 쉬운 길이었다. 내가 가본 계곡길이란 대체로 심한 너덜길인 반면에 정릉길은 뒷산 산책로처럼 완만하고 길이 편안했다. 해가 지자마자 순식간에 칠흑같은 어둠이 몰려와 휴대용 랜턴에 의지해서 코앞까지만 보며 걸어야 했는데도 불편이나 위험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물론 딱 한 번 길이 크게 꺾이는 부분에서 어디로 가야 하나 방향을 보지 못해서 입안이 마른 적이 있긴 하지만, 그만하면 꽃길이라고 할 만했다(이후에 알게 되었는데 쉽기로 유명한 진달래 능선보다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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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머리를 지날 때는 인공의 빛 없이 걸을 수 없는 밤이었다)


하산을 마치자 일곱 시가 다 되었다. 블랙홀에서 기어다니는 듯한 상황에서 벗어나 겨우 문명의 불빛에 안도하고 국밥집에 들어가 순대국밥과 막걸리를 시켰을 때는 일곱시 반경이었다. 나는 자신의 게으름과 어리석음과 만용으로 자초한 위험을 되짚고 꿈결속에서나 걸었던 것 같은 눈덮인 성곽길을 곱씹으며, 조만간 다시 북한산을 찾기로 결심했다. 설산을 걸어본 사람은 결국 등산의 매력에서 헤어날 수 없게 된다는데 그 말이 맞았다. 어디에도 없는 풍경 속에서 어디서도 겪어본 적 없는 체험을 하고 나면 영혼의 일부는 그곳에 두고 오게 되는 것이다. 거기엔 합리성 같은 건 작용하지 않는다. 그건 그냥 그렇게 되는 일이고, 삶을 가장 강렬한 색으로 물들이는 건 바로 그런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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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

겨울산에선 아이젠이 등산화와 같은 수준의 상비품이니 미리 준비하고 점검하자.

갑자기 계획을 바꿔 모르는 길로 들어가지 말자.

어둠속에서 걸어야 할 이유가 없다면 세 시에는 하산을 시작하자.

헤드랜턴이나 모자용 클립이 달린 랜턴 역시 상비품으로 챙겨두자.

목부터 코까지 덮었다가 내리기가 간편한 버프나 넥게이터도 필수 방한용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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