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쌈의 양이 적은 게 아니라 내가 많이 먹는 것이었나

-보쌈이라는 보상의 적절한 섭취방법

by 이건해

보쌈이 얼마나 맛있는 메뉴인지 길게 적는 것은 상당히 허망한 일인 것 같다. 부드러운 고기를 매콤한 김치에 싸서 먹는다니, 당연히 맛있는 음식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보쌈이 특별한 느낌을 갖는 것은, 이 음식이 일종의 잔치 음식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집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우리집에서는 옛날부터 김장이라는 한국 고유의 발효식품 제조이자 전통적 재난을 겪고 나면 그날이나 그 다음날은 보쌈을 먹었다. 욕조에 가득 찰 정도로 많은 배추를 모조리 김치로 승격시키는 지옥에서 빠져나온 뒤에 어머니가 챙긴 보쌈은, 이사하는 날 먹는 짜장면처럼 의식적인 음식인동시에 등산 뒤에 먹는 순대국밥과 막걸리처럼 보양적인 음식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에 더해 지긋지긋한 김치 지옥에 꽂는 깃발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이건 비유하자면 예비군 훈련이 끝나고 훈련보상비로 먹는 치킨과 맥주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김장에 보조적인 역할밖에 하지 않은 나로서는 온전히 체감할 수 없는 감성이지만…….


어쨌거나 그 지긋지긋한 동시에 신선하고 맛좋은 겉절이 김치와 먹는 보쌈은 달콤하기 그지없다. 정서적으로도 달지만, 미각적으로도 단맛이 난다. 매콤하면서 시원한 감촉의 김치를 넘어가면 나오는 고기는 신기할 정도로 포근하면서도 은근한 단맛이 배어있다. 특히 기름이 적절히 배어있는 고기가 그런데, 아마 이 맛이 바로 돼지기름의 신비가 아닌가 싶다.


보쌈으로 먹는 고기의 미덕 중 하나는 맛이 다채롭다는 것이다. 기름이 배어 달고 물렁한 부분도 있거니와 퍽퍽해서 입안에 오래 남게 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더 큰 김치와 함께 먹어서 식감의 균형을 맞추면 썩 괜찮아진다. 새우젓을 콩알만큼 올려서 밥과 함께 먹어도 좋다. 이렇게 먹으면 고기의 맛과 새우젓의 감칠맛을 더 생생히 느낄 수 있는데, 이때 입안에 오래 남는 고기와 함께 부서지는 밥알에선 또다시 단맛이 감돈다. 단맛과 짠맛의 반복이 음식을 계속 넘어가게 하는 마법이라는 얘기가 잘 알려져 있듯, 보쌈도 어떻게 먹든 숨어있던 단짠이 나오는 신비의 음식이다.


그나저나 집에서 보쌈을 먹을 때는 양에 대한 걱정이나 불만을 가져본 적이 없는데, 나가서 보쌈 정식을 사먹으면 반드시 불만을 느끼게 된다. 언제나 누가 보쌈을 먹자면 나쁠 것 없지,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편하게 들어가지만 막상 보쌈이 나오면 살짝 속이 상한다. 고기 양이 적어서다. 체감으로는 연어 초밥 두 개 위에 올라간 연어 만큼의 고기밖에 나오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기도 하고, 제일 싼 정식에 뭘 더 바라냐고 한다면야 반박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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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디쉬가 부족해보이는 정식을 즐기는 방법은 되도록 골고루 즐기는 것이다)


그러나 몸에 익은 감각으로 자기도 모르게 포식을 기대하다 상을 받아보면 순간적으로 소인국에 온 듯한 기분마저 든다. 고기도 적어보일 뿐만 아니라 김치도 은근히 부족해 보인다. 집에서 먹을 땐 먹기 불편할 정도로 거대한 배춧잎을 뜯어먹는 수준이었는데 가게에서 시켜보면 고양이 주먹만큼 예쁘게 담아져 나온다. 이래서야 마음 놓고 즐길 수가 없다. 가게가 잘못된 건 아니고 내가 너무 호의호식에 익숙해진 탓이다.


이렇게 되면 밥이 줄어드는 속도에 맞춰 고기도 소비될 수 있도록 다른 반찬을 열심히 먹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평소에 잘 먹지 않던 김치속도 집어먹고 나물도 먹고 김도 먹고 기타 잡다한 밑반찬을 다 먹게 된다. 사실 운 좋게 밥이 솥밥이면 그렇게만 먹어도 제법 만족스럽다. 거기에 뚝배기 한가득 나온 된장 찌개도 먹자면 구수하고 얼큰한 맛에 어느새 속이 좀 누그러진다. 생마늘은 속이 쓰려 먹지 못하지만, 풋고추는 있으면 하나쯤 먹는다. 씹는 맛이 충분하면서 4cm쯤 베어먹어도 견딜만한 정도로 매운 게 가장 좋다. 이 정도로 딱 알맞게 매운 풋고추를 만나는 것도 대단한 행운이라, 한입 먹어보고 괜찮으면 썩 즐거워진다. 눈물이 쏙 빠지게 매운 고추도 가끔 먹으면 재미있었지만…… 내장 건강을 생각하자면 이제 그런 건 슬슬 피하고 싶다.


어쨌거나 그런 식으로 가장 기대했던 관광지가 시시해서 주변을 샅샅이 뒤지는 관광객처럼 상에 있는 것을 모조리 섭렵하다 보면 뜻밖에도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다. 고기도 김치도 이만하면 제법 부족하지 않게 먹은 느낌이다. 얼큰한 된장찌개로 입안에 남는 맛에 시원한 마무리를 지은 다음, 숭늉으로 입안을 말끔히 정돈하고 일어서서 가게를 나서면 포만감이 제법 괜찮다. 스스로도 믿고 싶지 않지만 그만하면 포식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가히 정식의 마법이라 할 만하다.


요즘에는 집근처에 보쌈을 도시락으로도 파는 가게가 생겨서 반 년에 한 번쯤 먹기도 하는데, 이것도 펼쳐놓은 직후에는 영 가성비가 좋지 않게 느껴진다. 고기가 고작 이것뿐이라니 대체 누구 코에 붙이란 말인가, 하는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값이면 차라리 옛날통닭을 먹고 말겠다는 생각마저 드는데, 이 또한 담겨있는 반찬들을 싹싹 긁어먹고 나면 고기도 전반적인 양도 적당히 만족스럽다. 어쩌면 나는 가끔 먹는다는 이유로 보쌈을 일일 권장량 이상으로, 지나치게 집중해서 먹은 것인지도 모른다. 흔히 과자 상자에서 가장 맛있는 과자를 다 먹고 나면 그 뒤로는 맛없는 과자만 먹게 된다고 하는데, 이것저것 번갈아서 먹으면 맛있는 과자가 얼마 없던 그 과자 상자도 전반적으로는 제법 즐길만한 것이 되는 듯하다.


그건그렇고, 보쌈을 먹어본 기억을 되짚어보면 어째서인지 좌식 테이블에 앉아서 먹은 보쌈이 더 맛있었던 것 같다. 방석을 깔고 앉아서 먹는 보쌈이 좀더 친근하고 푸근하고 느긋하게 즐길 만한 맛이다. 소파를 두고도 바닥에 앉는 민족적 습성 때문인지 아니면 ‘아이고 아이고’ 하며 바닥에 앉고 일어나는 수고를 살짝 곁들인 탓인지 모를 일인데, 고통의 끝에 주어지는 보상이 더 달콤하다는 이론을 신봉하는 취미등산 암릉 애호가로서는 후자에 더 가중치를 두고 싶다. 바닥에 앉아먹는 보쌈을 순수하게 즐기려면 아직도 다 낫지 않은 무릎이 완치되어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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