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의 경당
마리아가 죽은 아들을 안고 있다. 무릎을 세워 그의 몸을 받치고, 얼굴을 들여다본다. 200 x 185cm 크기의 이 프레스코 앞에서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무게다. 그리스도의 축 늘어진 몸, 그것을 받쳐드는 마리아의 팔과 무릎, 그리고 이 장면을 둘러싼 모든 이들의 슬픔의 무게.
화면을 가로지르는 바위 능선이 대각선으로 그리스도의 머리를 향해 내려온다. 끝에는 잎 몇 개만 남은 메마른 나무. 이 경사면이 시선을 이끈다. 요한은 두 팔을 벌려 울부짖고, 막달라 마리아는 발을 붙잡고, 두 여인은 등을 보인 채 몸을 숙인다.
하늘도 운다. 열한 명의 천사들이 인간처럼 슬퍼한다. 옷을 찢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몸부림친다. 각자 다른 방향으로, 다른 포즈로 날면서. 비잔틴 회화의 위엄 있는 천사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 경당을 지은 사람의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엔리코 스크로베니. 그의 아버지 레지날도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7원에 등장한다. 고리대금업자로서. 푸른 암퇘지가 그려진 하얀 주머니가 그의 표식이라고 시인은 적었다.
당시 교회법으로 고리대금업은 죄였다. 시간은 신의 것인데 이자는 시간을 파는 행위라고 봤다. 은행가들은 부자가 되면서도 지옥을 두려워했다. 특히 아버지가 단테에게 지목당한 엔리코는 더 심했을 것이다.
엔리코는 고리대금업을 중단하고, 1303년 경당 부지를 구입했다. 돈으로 구원을 살 수 있을까? 같은 해 건립을 시작해 1305년 3월 25일, 수태고지 축일에 봉헌했다. 성모 마리아의 자비(Santa Maria della Carità)에 바친다고 했다.
경당은 고대 로마 원형극장 터에 세워졌다. 그래서 아레나(Arena) 경당이라고도 불린다. 처음엔 작은 개인 예배당이었는데 옆 에레미타니 수도원 수도사들이 항의할 정도로 점점 커졌다. 속죄치고는 너무 화려했다.
1303년, 36-38세의 조토가 40명의 조수와 함께 도착했다. 625개의 '조르나타'가 필요하다고 계산한다. 조르나타는 '하루 일'이란 뜻이다. 프레스코는 하루 단위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부온 프레스코 기법의 원리는 단순하다. 젖은 석회 모르타르 위에 물에 갠 안료를 바른다. 회반죽이 마르면서 공기와 반응해 탄산화되고, 안료가 벽의 일부가 된다. 벽에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벽 자체를 그림으로 만드는 것이다.
보통 회반죽은 10-12시간이면 마른다. 한 시간 후부터 그리기 시작해 마르기 두 시간 전까지, 7-9시간이 실제 작업 시간이다. 한번 마르면 끝이다. 수정하려면 전부 긁어내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애도 장면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이 하루, 마리아의 얼굴이 또 하루. 복잡한 부분일수록 작은 구획으로 나눈다. '카르토네'라는 실물 크기 밑그림을 먼저 그려서, 선을 따라 구멍을 뚫고 벽에 대고 검댕 주머니를 두드려 점선을 만든다. 그다음부터는 시간과의 경주다.
625일. 거의 2년. 매일 아침 신선한 회반죽을 바르고, 마르기 전에 그려내고, 다음 날 그 옆에 이어 그리고. 천장의 별부터 시작해 최후의 심판까지.
조토는 '원시 르네상스 화가', '르네상스의 아버지',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리는 화가'라 부른다. 중세 비잔틴 시대의 예술적 틀을 깨고 자연주의와 깊이를 도입했다고 한다. 정확히 무엇이 달라졌을까?
먼저 공간이 달라졌다. 금박 배경이 사라지고 실제 풍경이 나타났다. 파도바의 언덕처럼 보이는 바위, 메마른 나무, 거친 질감. 색도 달라졌다. 파스텔톤의 부드러운 색채. 전경은 밝고 배경은 어둡게. 빛과 그림자가 생겼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감정이다. 조토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그렸다. 결과적으로 관람자를 애도의 고통과 괴로움을 목격하도록 장면 속으로 끌어들인다. 각 인물이 다르게 슬퍼한다. 울부짖는 사람, 조용히 우는 사람, 망연자실한 사람.
구도도 치밀하다. 산등성이가 만드는 대각선, 인물들의 머리가 만드는 원. 우리는 중앙을 통해 들어가 녹색 옷의 인물 뒤에 선다. 관람자도 애도의 일원이 된다.
조토 이전 비잔틴 예술은 2차원적이고 움직임이 없고 상징적이었다. 조토는 자연스럽고 감정적으로 표현력 있는 인간적 양식을 시작했다. 프란체스코 성인의 영향이라고들 한다. 육화의 신비, 신이 인간이 되었다는 믿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 - 프란체스코 성인은 인간의 가치와 신의 사랑을 함께 설파해 중세 말부터 르네상스 초기 인문주의 정신의 씨앗을 뿌린 인물로 평가받는다. -
신이 인간이 되었다면 무게가 있어야 한다. 죽었다면 축 늘어져야 한다. 사람들이 슬퍼한다면 각자의 방식으로 슬퍼해야 한다. 천사조차도.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진짜로 속죄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의 죄책감과 돈이, 조토의 천재성과 625일의 노동과 만나 이것을 남겼다. 서양 회화사가 방향을 튼 순간. 그림이 무게를 얻은 순간이다.
지금도 이 프레스코는 파도바에 있다. 7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리스도는 무겁고, 마리아는 그 무게를 받쳐 들고, 천사들은 하늘에서 운다. 비잔틴이 잊었던, 혹은 일부러 지웠던 인간의 무게가 거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