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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세계 마을 5

2-(5)

by jeromeNa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뒤쪽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유성이 고개를 돌렸다.


갈색 로브를 입은 노인이 언덕을 내려오고 있었다. 발걸음은 느렸지만 힘이 있었다. 허리가 약간 굽었고, 수염은 희끗했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유성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냥... 지나가던 여행자입니다."

"지나가던 여행자가 제자의 마법 구조를 바꿀 수 있다?"


노인이 한 걸음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얼굴에 주름이 깊었다.


"마법 구조라는 말을 아시는군요."


유성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 이 세계 사람들은 마법 구조를 모른다고 알고 있었다.


"알고는 있습니다. 다만..."


노인이 한숨을 쉬었다. 주머니를 뒤적여 낡은 수첩을 꺼냈다. 가죽 표지가 닳아 있었다.


"그것을 실제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죠. 적어도 지금까지는."


수첩을 펼쳤다. 복잡한 영창문과 도형들이 빼곡히 그려져 있었다.


"30년간 마법을 연구했습니다."


손가락으로 수첩을 두드렸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선대가 전해준 영창을 외우는 것뿐이었죠."

"그래서 엘리나 씨도..."

"네. 느끼라고만 가르쳤습니다. 다른 방법을 몰랐으니까요."


수첩을 덮었다. 유성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런데 당신은 다릅니다. 엘리나의 마법을 어떻게 바꾼 겁니까?"


유성은 망설였다. 패널의 존재를 말해야 할까? 어차피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데.


"마법도... 일종의 에너지 흐름이잖아요. 그 흐름을 효율적으로 만든 겁니다."

"효율적으로?"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고, 필요한 부분에만 집중하도록."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식의 접근은 이미 시도해 봤습니다. 마나 소모를 줄이려고 영창을 줄여봤지만, 오히려 위력이 떨어졌죠."


수첩을 다시 펼쳤다. 빼곡한 메모들이 적혀 있었다.


"파이라의 경우, 마나 10 이하로 낮추면 불덩이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습니다. 이건 실험으로 확인했어요."

"그건 영창을 줄인 거고, 저는 구조 자체를 바꿨어요."

"구조를..."


노인이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구조를 바꾼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마법의 본질은 정해져 있습니다. 파이라는 불의 원소를 모아 투사하는 마법이죠. 그 과정을 어떻게 바꾼단 말입니까?"


유성은 주변을 둘러봤다. 마른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땅에 쪼그려 앉았다.


"파이라를 예로 들면요."


흙바닥에 큰 원을 그렸다.


"원래는 이렇게 작동해요. 마나 10을 한 번에 쏟아부어서 불덩이를 만들죠. 온도는 1200도."

"맞습니다."


노인이 무릎을 굽혀 앉았다.


"고온일수록 관통력이 높으니까요. 선대 마법사들이 수백 년에 걸쳐 최적화한 결과입니다."

"정말 최적화된 건가요?"

"... 무슨 뜻입니까?"

"왜 1200도여야 하죠?"


노인이 수염을 쓸어내렸다.


"실전에서 확인된 수치입니다. 1000도 이하로는 중급 방어막을 뚫기 어렵고, 1200도면 대부분의 상황에 대응할 수 있죠."

"그럼 1200도와 800도로 직접 비교 실험을 해보신 적은요?"


노인이 잠시 말을 멈췄다.


"... 그건 아니지만, 이론적으로 고온일수록 강하니까."

"제가 아는 물리 법칙으로는 다릅니다."


유성이 작은 원을 하나 더 그렸다.


"에너지는 한 점에 집중할수록 강해져요. 넓게 퍼진 1200도보다 좁게 모은 800도가 더 위력적일 수 있습니다."

"물리... 법칙?"


노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또 무슨 이론입니까?"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요. 같은 에너지를 작은 면적에 집중시키면 압력이 높아지거든요."

"압력..."


노인이 수첩에 뭔가를 적었다. 하지만 여전히 회의적인 표정이었다.


"흥미로운 이론이긴 합니다만, 실제로 적용 가능한지는 모르겠군요. 마법은 물리적 현상과는 다르니까요."

"그럼 보여드릴까요?"

"... 제 마법을요?"

"네. 어떤 마법이든 최적화할 수 있어요."


노인이 코웃음을 쳤다.


"30년 연구해서 못 한 걸 당신이 단번에 할 수 있다?"


하지만 엘리나의 파이라가 달라진 건 사실이었다. 노인은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좋습니다. 한번 해보시죠."


따뜻하지만 거친 손이었다. 굳은살이 손바닥에 박혀 있었다.

유성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status."


눈앞에만 패널이 떠올랐다.


[External Mana Detection - 외부 마나 감지]
[Current Mana: 45.7/50 - 현재 마나: 45.7/50]
[Checking Spell List... - 마법 목록 확인 중...]


"어떤 마법을 주로 쓰시나요?"

"저는... '브룩사'를 주로 씁니다. 물 마법이죠."

"시전해 주실 수 있나요? 발동 직전에 멈춰서."


노인이 숨을 고르고 영창을 시작했다.


"가는 물칼로 길을 열어라, 필요 없는 것을 깨끗이 잘라라---"


손끝에서 푸른빛이 모였다. 물방울들이 공중에 떠올라 가느다란 선을 이루기 시작했다.


"코드."


유성이 말하자. 패널에 코드가 나타났다.


function 브룩사() {
if (mana >= 12) {
create_water_line(length=10, thickness=0.05, pressure=4); // 물줄기 생성
compress_edges(sharpness=2); // 가장자리 압축
launch(speed=5, trajectory="straight"); // 직선 발사
mana -= 12;
}
}


"음... 물줄기를 만들고 나서 가장자리를 따로 압축하고 있네요."

"그게 정석입니다."


노인이 단호하게 말했다.


"물의 형태를 먼저 잡고, 그다음에 날카롭게 다듬는 거죠. 순서를 바꾸면 형태가 불안정해집니다."

"처음부터 압축된 상태로 만들면요?"

"그럼 에너지가 더 들 겁니다. 동시에 두 가지를 하니까요."

"오히려 에너지가 줄어들 수 있어요. 중간 과정이 생략되니까요."


노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론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해보시겠어요?"

"... 좋습니다."


편집 모드로 들어갔다.


"edit."

"압축 과정을 생성 단계에 통합하고, 궤적 안정화를 추가."


유성이 말하자 패널의 코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function 브룩사_최적화() {
if (mana >= 6) {
create_compressed_water_blade(length=10, thickness=0.03, edge_sharpness=3); // 압축된 물날 직접 생성
launch(speed=6.5, stabilize=true); // 안정화 발사
mana -= 6;
}
}


"완료됐어요."


손을 놓았다.

노인이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영창을 시작했다.


"브룩사!"


순간, 이전보다 얇지만 더 선명한 물줄기가 생성됐다. 푸른빛이 더 진했다. 그것은 흔들림 없이 일직선으로 날아가 나무 표적을 강타했다.


쉬익—


나무가 깔끔하게 반으로 갈라졌다. 절단면이 매끄러웠다.

노인이 멍하니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이게..."


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마나가 절반밖에 안 들었습니다. 그런데 위력은... 오히려 더 강한 것 같은데..."

"압축 타이밍을 바꾼 것뿐이에요. 원래는 만들고 나서 압축했지만, 이제는 만들면서 동시에 압축하니까 에너지 손실이 없죠."


노인이 수첩을 펼쳐 무언가를 빠르게 적기 시작했다. 손이 떨렸다.


"30년..."


중얼거렸다.


"30년 동안 순서가 문제였다는 생각은 한 번도 못 했습니다. 형태를 먼저 잡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갑자기 유성을 향해 허리를 깊이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안이 있습니다."

"제안이요?"

"우리 마을에 머물면서 저와 마법에 대해서 연구해 주실 수 있습니까?"


고개를 들었다. 눈빛이 진지했다.


"물론 보수는 드리겠습니다."


유성은 고민했다. 아직 이 세계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았다. 하지만 당장 갈 곳도 없었고, 마법을 더 연구할 기회이기도 했다.


"숙식을 제공해 주신다면..."

"당연하죠! 제 집에 빈 방이 있습니다."


노인이 활짝 웃었다.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어... 열쇠를 어디 뒀더라... 아, 엘... 엘리아? 아니, 엘리나!"


다른 주머니를 확인했다.


"그 아이가 오늘 아침에 '선생님, 열쇠 또 서재에 두고 나오셨어요' 하고 가져다줬는데..."


또 다른 주머니를 뒤졌다.


"아, 여기 있네. 허허, 나이가 들으니 이런 건 자꾸 잊어버려요. 그래도 마법 이론은 완벽히 기억하는데 말이죠."

"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손을 내밀었다.


"저는 마르쿠스입니다. 로렌스 마을의 마법 교관이죠."

"로렌스 마을..."


유성이 처음 듣는 이름을 되뇌었다.


"네, 작은 마을이지만 벨라트 왕국 남부에서는 마법사 배출로 꽤 유명합니다. 왕국 전체로 보면 인구의 10분의 1 정도만 마법을 쓸 수 있는데, 우리 마을은 꽤 많이 마법을 사용하죠."

"유성입니다. 나 유성."

"나유성... 특이한 이름이군요. 어디서 오셨습니까?"

"... 멀리서 왔습니다."


마르쿠스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마을 쪽을 가리켰다.


"날도 어두워지는데, 가시죠. 저녁도 준비해야 하고."


두 사람이 걸어가기 시작했다.


"엘리나가 정말 좋아할 겁니다. 드디어 제대로 배울 수 있게 됐으니."

"제가 연구하는 건 효율성뿐이에요. 마법 자체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그거였으니까요."


마을 불빛이 가까워졌다. 저녁연기가 굴뚝에서 피어올랐고, 어디선가 음식 냄새가 났다.

머릿속에는 이미 수많은 가능성이 떠오르고 있었다. 반복문, 함수화, 모듈화...


"아,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마르쿠스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 능력... 타고난 겁니까? 아니면 배운 겁니까?"


유성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둘 다인 것 같아요."


거짓말이 아니었다. 개발자로서의 지식은 배운 것이지만, 이 세계에서 그것을 마법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은 타고난 것이니까.

마르쿠스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흥미롭군요. 아주 흥미로워요."


두 사람은 마을을 향해 걸었다. 해가 완전히 기울어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저녁 시간이라 광장이 붐빌 겁니다. 장 보는 사람들로요."


마르쿠스가 설명했다.


"이 마을은 작지만 활기차죠. 특히 마법사들이 많아서 더 그렇습니다."


멀리서 마을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저녁 준비를 알렸다.


'드디어 사람들이 사는 곳이구나. 여기서 이 세계에 대해 더 알아갈 수 있겠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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