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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세계 마을 6

2-(6)

by jeromeNa

마을 광장에 들어서자 저녁 장을 보는 사람들로 붐볐다. 과일 파는 노점에서 귤 냄새가 났다. 생선 손질하는 칼소리. 천 보따리를 든 여자들이 흥정하는 목소리.


"마르쿠스 선생님!"


빵집 주인이 손을 흔들었다. 옆에서 마르쿠스가 멈춰 섰다.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오늘 저녁 빵 예약하신 거 가지러 오셨죠?"

"예약을..."

"네, 어제 오셔서 호밀빵 두 개 예약하셨잖아요."


마르쿠스가 손으로 턱을 쓸었다.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네."


마르쿠스가 빵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유성은 광장을 둘러봤다. 평화로운 저녁이었다. 장터 끝에서 닭울음소리.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별로 특이할 것 없는 풍경.


"선생님!"


익숙한 목소리. 빵집 앞에 엘리나가 서 있었다. 손에 봉지를 든 채로.


"엘리나, 장 보는 중이었구나."

"네! 엄마 심부름으로... 어?"


엘리나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눈이 커졌다. 두 손을 비볐다.


"아까 그분! 또 만났네요! 근데 아직 이름도 못 여쭤봤어요."

"유성입니다."

"유성 씨!"


제자리에서 폴짝 뛰었다.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갔다.


"선생님, 이분이 제 마법을 고쳐주신 분이에요! 제가 표적을 맞췄다니까요!"


주변 사람 몇 명이 고개를 돌렸다. 잠깐 쳐다보고는 다시 각자 볼일을 봤다. 지나가던 중년 여자가 말을 걸었다.


"엘리나, 오늘 드디어 표적 맞췄다며? 잘됐네. 그동안 연습 많이 했지?"


여자가 그냥 지나갔다. 반응이 생각보다 평범했다. 엘리나가 계속 말하려 하자, 빵을 들고 돌아온 마르쿠스가 손가락을 입술에 댔다. 엘리나가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볼이 붉어졌다.


세 사람은 광장을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섰다. 인적이 드물어졌다. 석양이 담벼락을 주황빛으로 물들였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졌다.


"다행이네요.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안 가져서요."


마르쿠스가 말했다. 엘리나가 큰 소리로 마법을 고쳤다고 말했는데,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게 신기하긴 했다.


"마법사가 많은 마을이긴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마법의 세세한 원리까지는 잘 모릅니다."


마르쿠스가 걸음을 멈췄다. 유성을 똑바로 봤다.


"유성 씨,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당신의 능력... 다른 사람의 마법을 직접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은 비밀로 해주세요."


눈썹이 찌푸려졌다.


"왜죠?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을 텐데..."

"그것 때문입니다."


마르쿠스가 한숨을 쉬었다. 손을 들어 머리를 쓸어 올렸다.


"만약 이 능력이 알려지면, 왕국 전체가 들썩일 겁니다. 귀족들은 당신을 차지하려 할 것이고, 마법사 길드는... 당신을 위험인물로 볼 수도 있어요."

"위험인물이요?"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마법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면? 그것도 더 강하게? 군사적으로 악용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법사들의 서열, 길드의 권위, 왕국의 힘의 균형... 모든 게 흔들릴 수 있어요."


이해가 됐다. 이 세계에서 마법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었다. 권력이고, 계급이고, 질서였다. 그걸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게 분명했다.


엘리나가 두 손을 꼭 쥐었다. 마르쿠스가 엘리나를 봤다.


"네가 열심히 연습해서 늘었다고 하면 돼. 단지... 유성 씨가 가르친 '방법론'이라고 하면 됩니다. 마법의 원리를 새롭게 설명해 줬다고. 직접 수정했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뒷목을 긁었다.


"알겠습니다."


조용히 지내는 게 나았다. 이 세계를 더 알기 전까지는.


세 사람은 마을 끝자락으로 향했다. 2층 집 한 채가 보였다. 담장 너머로 작은 정원.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여기가 제 집입니다."


마르쿠스가 문을 열었다. 나무 문이 삐걱거렸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따뜻한 공기가 밀려왔다. 벽난로에 불이 피어 있었다. 타닥, 타닥 장작 타는 소리가 들렸다.


"1층은 서재와 연구실, 2층이 생활공간입니다. 유성 씨가 쓸 방은... 어디였더라?"


마르쿠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2층 왼쪽이었나..."

"오른쪽이에요, 선생님."


엘리나가 웃었다.


"왼쪽은 창고예요."

"맞다, 오른쪽."


마르쿠스는 건망증이 꽤 심한 편이었다.


"저녁 준비를 해야겠네."


마르쿠스가 소매를 걷어 올렸다.


"엘리나, 너도 먹고 가려무나."


엘리나가 들고 있던 빵 봉지를 내려다봤다.


"감사하지만... 엄마가 기다리실 텐데..."

"그럼 먼저 집에 다녀오게."

"네! 금방 다녀올게요!"


문이 열리고 닫혔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마르쿠스가 창밖을 봤다.


"내일부터 조심해야 합니다. 엘리나가 표적을 맞췄다는 소문은 내일이면 마을 전체에 퍼질 거예요. 그러면 몇몇 마법사들이 찾아올 겁니다."


손가락으로 턱을 쓸었다.


"토마스 같은 사람들이요. 제자 중 하나입니다. 꽤 실력 있는 마법사죠. 자존심 강하고 의심 많은 성격이에요."


한숨이 나왔다.


"피곤하네요..."


사람들과 부딪치는 건 정말 싫었다.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게 뻔했다.

마르쿠스가 벽난로 쪽으로 걸어가 장작을 집어넣었다. 불꽃이 조금 더 크게 타올랐다.


"토마스가 오면 제가 먼저 상대하겠습니다. 유성 씨는 뒤에 계시면 됩니다."


돌아서서 유성을 봤다.


"대신 가끔 다른 제자들도 가르쳐 주시면 좋겠습니다. '방법론'으로요."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저는 직접 손을 대고 수정하는 것 말고는 방법을 모릅니다."


마르쿠스의 표정이 굳었다. 둘 다 말이 없었다. 벽난로에서 장작 타는 소리만 들렸다.


타닥, 타닥.


"일단은... 엘리나만 가르친 것으로 하죠. 엘리나가 특별히 이해력이 좋아서 제 설명을 듣고 스스로 깨달았다고."

"그게 믿을만한가요?"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마르쿠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창밖을 봤다.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았다.


"알겠습니다. 대신 유성 씨는 마법 이론을 연구하는 학자로 소개하겠습니다."


철컥.

현관문이 열렸다.


"다녀왔어요!"


엘리나가 숨을 헐떡이며 들어왔다. 볼이 붉어져있었다.


"엄마한테 선생님 댁에서 저녁 먹고 온다고 말씀드렸어요. 엄마가 '선생님께 폐 끼치지 말라'고 하셨지만요."


머쓱하게 웃었다.


"어차피 제가 자주 와서 밥 얻어먹으니까요. 엄마도 이제는 포기하신 것 같아요."

"너는 언제나 환영이야. 부엌에 와서 도와주렴."


엘리나가 따라 들어갔다. 부엌에서 냄비 뚜껑 여는 소리, 물 붓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수프가 끓어넘쳐요!"

"아, 또 불 조절을 깜빡했구나."


서둘러 걸어가는 발소리.

창밖을 바라봤다. 하늘이 짙은 남색으로 물들어 갔다. 별 하나, 둘, 셋. 하나씩 떠올랐다. 손가락으로 창틀을 톡톡 두드렸다.


비밀을 지키며 조용히 지낼 수 있을까. 확신은 없었다.


부엌에서 대화 소리가 들렸다. 그릇 부딪치는 소리, 수프 끓는 소리. 평범한 일상의 소리였다. 나쁘지 않았다.


식사하자는 소리에 부엌으로 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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