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세 사람은 식탁에 둘러앉았다. 스튜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빵을 찢을 때마다 부드러운 속살이 드러났다. 야채는 아삭했다.
스푼을 들었다. 스튜 한 입. 짭조름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감자가 부드럽게 부서졌다. 생각보다 맛있었다.
"유성 씨는 어디서 오셨어요?"
엘리나가 빵을 찢으며 물었다.
"꽤 멀리서 왔어요."
애매하게 대답했다.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다.
"왕도에서 오셨나요? 아니면 북부 상업도시?"
마르쿠스가 스푼을 내려놓았다.
"엘리나, 너무 캐묻지 마."
엘리나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두 손을 모았다.
물 잔을 들었다. 한 모금. 차가운 물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마법사가 아닌 사람들은 뭘 하나요?"
"전사, 상인, 대장장이, 농부... 직업은 다양해요."
마르쿠스가 빵을 찢었다.
"마을 안에선 평범하게 살아가죠. 하지만 마을 밖은 다릅니다. 위험하거든요. 마물들이 있어요. 늑대, 고블린, 가끔은 오크도 나타나죠."
게임에서나 보던 것들이었다.
"그래서 모험가 길드가 있어요!"
엘리나가 끼어들었다. 눈이 반짝였다.
"모험가들이 마물 토벌이나 호위 임무로 돈을 벌어요! 보수가 꽤 좋대요. 의뢰 하나에 은화 몇 개는 기본이고..."
"은화?"
"화폐 단위요."
엘리나가 손가락을 펼쳤다.
"동화 100개가 은화 1개, 은화 100개가 금화 1개예요. 보통 사람은 한 달에 은화 5개에서 10개 정도 벌어요. 마법사 수업료가 한 달에 은화 2개니까..."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엄마가 늘 돈 아깝다고..."
"이제는 다르잖아."
마르쿠스가 엘리나를 봤다.
조용히 정보를 정리했다. 마물. 모험가 길드. 화폐 체계. 동화, 은화, 금화. 수업료는 은화 2개. 한 달 수입이 은화 5개에서 10개라면 꽤 비싼 편이었다.
"이 왕국 밖에는 뭐가 있나요?"
물 잔을 내려놓았다.
"북쪽에는 제국이 있고, 동쪽에는 부족 연합이 있어요."
마르쿠스가 손가락으로 공중에 지도를 그렸다.
"서쪽은 대산맥, 남쪽은 바다죠. 우리 왕국은 그 사이에 있습니다."
손가락이 공중에서 멈췄다. 중앙보다 서남쪽.
"로렌스 마을은 여기, 왕도에서 서남쪽으로 사흘거리예요. 대산맥과 바다 사이죠."
"외진 곳이네요."
"그래서 마법사가 많은 겁니다."
마르쿠스가 물 잔을 들었다.
"산맥에서 마물이 내려오고, 남쪽 해안가에서도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거든요. 옛날 대마법사님이 이곳에 정착한 이유이기도 하죠. 두 방향 모두 지켜야 했으니까."
더 묻지 않았다. 너무 많이 물으면 의심받을 것 같았다.
"엘리나는 언제부터 마법을 배웠나요?"
"열 살 때부터요! 벌써 7년째네요."
엘리나가 눈을 반짝였다.
"처음엔 정말 재밌었어요. 손끝에서 불꽃이 튀는 게 신기해서."
목소리가 작아졌다.
"근데... 점점 다른 애들은 잘하는데 저만 못하게 됐어요. 표적도 못 맞추고, 마나 조절도 엉망이고..."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잖아."
마르쿠스가 말했다.
"네. 전 마법이 좋았거든요."
밝게 웃었다.
7년이나 버텼다는 게 대단했다.
"마법사 등급 같은 게 있나요?"
"네!"
엘리나가 손가락을 꼽았다.
"수습생, 초급, 중급, 상급, 그리고 대마법사! 저는 아직... 수습생이지만요. 대마법사님은 왕국 전체에 열 명도 안 되는 최고 등급이에요."
감탄하듯 말했다.
"저희 마을에 옛날에 대마법사님이 계셨대요. 그분이 마법 교육 체계를 만드셨고, 그 전통이 이어진 거죠."
"그래서 이 마을에 마법사가 많은 거구나."
"네! 토마스 오빠, 리아 언니, 제이콥... 다들 저보다 훨씬 잘해요."
손가락을 접기 시작했다.
"특히 토마스 오빠는 중급 마법사거든요. 스무 살인데 벌써. 보통은 이십 대 후반에 중급이 되는데."
마르쿠스가 끼어들었다.
"토마스는 재능이 있지. 하지만 자만심도 있어."
숟가락으로 스튜를 저었다.
"엘리나를 자주 무시했지."
"'넌 재능이 없으니까 포기하는 게 나아'라고 여러 번 말했어요."
엘리나가 쓴웃음을 지었다.
"직접적으로요."
감정이 좋지 않았을 텐데.
"토마스 오빠가 알면... 분명 와볼 거예요. 확인하러."
두 손을 비볐다.
마르쿠스가 스튜 그릇을 밀었다.
"일단 내일 보자."
스튜의 온기가 손끝으로 전해졌다. 창밖으로 어둠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하늘에 별이 하나씩 떠올랐다. 벽난로의 불빛이 식탁을 은은하게 비췄다.
"다른 마법도 가르쳐주실 수 있나요?"
엘리나가 물었다.
"저 사실 파이라 말고도 이그나, 엠브라도 배웠거든요. 근데 다 잘 안 돼요."
"이그나는 점화 마법이고... 엠브라는 잔불 마법이죠?"
"네! 맞아요!"
엘리나가 놀라워했다.
"어떻게 아세요?"
"오후에 엘리나 씨 로직 보면서 이름이 보였어요."
"로직이요?"
말을 멈췄다. 설명하기 애매했다.
"마법 구조 같은 거요. 각 마법마다 고유한 식별자가 있더라고요."
"우와... 신기해요."
엘리나가 눈을 반짝였다.
"저는 그냥 영창만 외웠는데."
"유성 씨는 마법을 다른 방식으로 보는 것 같아요."
마르쿠스가 말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구조를 보는 거죠."
"저한테는 마법이... 특별하게 보여요."
인정했다.
"나중에 천천히 설명해 드릴게요. 일단 오늘은 파이라만 제대로 익히는 게 중요해요."
"네!"
저녁 식사가 끝나갈 무렵, 엘리나가 일어났다.
"이제 가야겠어요. 너무 늦으면 엄마가 걱정하실 거예요."
마르쿠스가 현관까지 따라나갔다.
"유성 씨, 내일 봐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어둠 속으로.
문이 닫히고, 마르쿠스가 돌아왔다.
"이제 방을 안내해 드리죠. 피곤하실 텐데."
"감사합니다."
계단을 올라갔다. 낡은 나무 계단이 발걸음마다 삐걱거렸다. 손잡이가 매끈했다. 오랜 시간 많은 손을 거쳐온 흔적이었다.
2층 복도 끝, 오른쪽 문을 열었다. 작은 방이었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창문 하나. 달빛이 창문 틈으로 들어와 바닥에 희미한 사각형을 그렸다.
"충분합니다."
"다행입니다. 편히 쉬세요. 내일 아침에 뵙죠."
마르쿠스가 문을 닫고 나갔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1층으로 내려가는 소리. 그리고 조용해졌다.
창가로 걸어갔다. 유리창이 차가웠다. 손가락 끝에 냉기가 전해졌다. 별이 가득한 하늘이었다. 낯선 별자리. 오리온자리도, 북극성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다른 세계였다.
침대에 앉았다. 스프링이 낮게 울었다. 몸을 뒤로 눕혔다. 천장의 나무 서까래가 어둠 속에서 희미한 선을 그렸다. 벽난로의 온기가 아직 방 안에 남아 있었다.
오늘 하루가 천천히 떠올랐다.
이 세계에 떨어진 것.
마법이 코드로 보이는 능력.
엘리나와 마르쿠스의 만남.
비밀.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생길까.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의식이 흐려졌다.
깊은 어둠 속으로 천천히 빠져들었다.
긴 하루가 끝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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