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몇 분이 지났다. 바람이 불어와 공터 안으로 낙엽 몇 개가 굴러 들어왔다. 바스락, 바스락.
유성이 다시 손을 내밀었다. 엘리나가 손목을 내밀었다.
"status."
[Current Mana: 3.2/20]
숫자가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3.2로 회복됐네요. 이제 다시 해볼 수 있어요."
"벌써요?"
엘리나가 눈을 반짝였다. 다시 돌담에서 벌떡 일어났다. 흙먼지가 일었다.
그러다 멈칫했다.
"그런데..."
고개를 갸웃했다.
"이렇게 조건을 나누면... 언제 강하게, 언제 약하게 쓸지 제가 못 정하는 거 아니에요?"
유성의 입꼬리가 1mm 올라갔다.
"좋은 지적이에요."
다시 편집 모드로 들어갔다.
"edit."
커서가 다시 깜박이기 시작했다.
"강도를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추가해 줘. '파이라 강'은 마나 8 소모에 강한 위력, '파이라 약'은 마나 2 소모에 약한 위력으로."
패널이 다시 한번 흔들렸다. 새로운 코드가 추가됐다. 줄이 늘어났다.
function 파이라(command) {
if (command == "파이라 강") {
if (mana >= 8) {
create_orb(size=1.2, temp=1200);
throw(speed=6);
mana -= 8;
} else {
return "마나 부족";
}
} else if (command == "파이라 약") {
if (mana >= 2) {
create_orb(size=0.3, temp=500);
throw(speed=2);
mana -= 2;
} else {
return "마나 부족";
}
} else {
// 기본 파이라 (자동 조절)
if (mana >= 5) {
create_orb(size=0.7, temp=900);
throw(speed=4);
mana -= 5;
} else if (mana >= 2) {
create_orb(size=0.3, temp=500);
throw(speed=2);
mana -= 2;
} else {
return "마나 부족";
}
}
}
"이제 '파이라 강'이라고 하면 강한 버전, '파이라 약'이라고 하면 약한 버전이 나가요."
"진짜요?"
엘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선택할 수 있다고요?"
"한 번 해보세요."
유성이 다시 상태를 확인했다.
[Current Mana: 3.2/20]
"아직 3.2예요. 약한 버전은 가능해요."
엘리나가 심호흡을 했다. 양손을 비볐다. 손바닥에서 마찰음이 났다.
"파이라 약!"
손끝에서 의도적으로 작은 불덩이가 생성됐다. 정확히 원하는 크기였다. 오렌지빛 구체가 천천히 날아가 돌담에 닿았다. 탁. 작은 불꽃이 튀었다가 사라졌다.
"대박!"
엘리나가 뛰어올랐다. 양팔을 위로 쭉 뻗었다.
"진짜 조절이 돼요!"
공터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한 바퀴, 두 바퀴. 치마가 펄럭이고 머리카락이 날렸다.
"이제 상황에 맞게 쓸 수 있겠어요! 연습할 때는 약하게, 실전에서는 강하게!"
"네."
유성이 손으로 뒷목을 긁었다.
"그리고 마나가 모자라면 자동으로 차단되니까 역류 걱정도 없고요."
엘리나가 갑자기 유성의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정말 고마워요!"
유성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다. 손이 잡힌 감촉이 낯설었다.
"이렇게 효율적으로 마법을 쓸 수 있다니!"
"아직 시작일 뿐이에요."
유성이 손을 빼냈다.
"더 최적화할 수 있어요."
해가 점점 기울었다. 주황빛 노을이 공터를 물들였다. 돌담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나 엘리나의 발치까지 닿았다. 서쪽 하늘이 주황과 보라로 물들었다.
"그런데..."
엘리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런 방법을 어떻게 아세요? 마법사님이신가요?"
"마법사는 아니고..."
유성이 패널을 닫았다. 반투명한 창이 사라졌다.
"그냥 구조를 분석하는 걸 좋아해요."
"구조요?"
"모든 것에는 패턴이 있거든요."
손가락으로 다시 공중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었다. 점, 선, 면.
"그걸 찾아서 개선하는 거죠."
엘리나는 잘 이해가 안 가는 표정이었다. 고개를 갸웃하다가, 더 묻지는 않았다. 대신 웃었다.
멀리서 종소리가 들렸다. 땡, 땡, 땡.
마을 중앙 종탑에서 울리는 저녁 종이었다. 낮은음이 공기를 타고 퍼졌다.
"아, 벌써 이런 시간이네!"
엘리나가 치마에 묻은 흙을 손으로 탁탁 털었다. 먼지가 날렸다.
"집에 가야 해요."
유성을 돌아봤다. 목소리에 기대가 가득했다.
"내일도 가르쳐 주실 수 있어요?"
유성의 눈동자가 좌우로 움직였다. 아직 이 세계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돈도, 갈 곳도 없었다.
하지만 엘리나의 눈빛을 보니 거절하기 어려웠다.
"좋아요."
"약속이에요!"
엘리나가 손을 흔들며 달려갔다. 뛰어가다가 잠깐 멈춰 섰다. 언덕 위를 올려다보더니, 작게 손을 흔들었다. 누군가를 향해. 그리고 다시 마을로 사라졌다. 발자국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유성이 고개를 돌렸다. 언덕 위였다. 노을빛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그림자만 보였다.
'조건문만으로도 이렇게 달라지는데...'
손가락이 공중에서 움직였다. 보이지 않는 코드를 그렸다. if, else, for, while.
'반복문이나 함수화까지 적용하면...'
머릿속에서 코드가 흘렀다. 최적화 방법, 리팩토링, 모듈화.
그때, 언덕 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사각, 사각. 천천히 내려오는 발걸음. 규칙적이고 무거웠다. 아까 엘리나가 손 흔들었던 그 방향이었다.
"흥미로운 방법이군요."
유성이 돌아봤다. 진한 갈색 로브를 입은 노인이 서 있었다. 로브 자락에 먼지가 묻어 있었다. 손에는 낡은 수첩이 들려 있었다. 엘리나가 들고 있던 것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가죽 표지가 해져 있었다.
"방금 전 실험을 언덕 위에서 지켜봤습니다."
노인이 수첩을 가볍게 두드렸다. 톡, 톡.
"마나가 부족한 상태에서도 안전하게 시전 하도록 만들다니..."
한 걸음 다가왔다. 로브 자락이 흙먼지를 일으켰다.
"제자가 수년간 못했던 일을 단번에 해결하셨군요."
'제자. 이 사람이 엘리나의 선생님이구나.'
유성의 눈동자가 노인을 훑었다. 로브, 수첩, 손에 묻은 먼지. 마법사. 그리고 엘리나의 스승.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노인이 물었다. 목소리는 낮고 침착했다.
바람이 불어와 로브를 흔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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