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저 사람 누구야?"
울타리 너머로 한 남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손에는 낡은 괭이가 들려 있었다.
"엘리나가 드디어 표적을 맞췄다고?"
옆집 아주머니가 빨래를 들고 나왔다. 물이 뚝뚝 떨어졌다.
"마법이 뭔가 다른데..."
초소 앞에 서 있던 경비병이 창을 어깨에 멘 채 걸어왔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울타리 너머로 고개를 내미는 이, 걸음을 멈추고 쳐다보는 이. 아이들이 달려와 돌담 위로 올라갔다.
열다섯, 스무 명. 그 이상.
엘리나는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봤죠? 봤죠? 진짜 맞췄어요!"
유성의 눈동자가 좌우로 움직였다. 시선이 늘어나고 있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손가락질, 속삭임, 그의 옷차림을 훑는 시선들.
'시끄럽다.'
"엘리나 씨."
"네?"
엘리나가 돌아봤다. 뺨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잠깐 다른 곳으로 가죠."
"왜요? 다들 궁금해하는데!"
엘리나가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려면 조용한 곳이 나을 것 같아서요."
거짓말이었다.
그냥 시끄러웠다.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했다.
"아, 맞아요!"
엘리나가 손뼉을 쳤다.
"여기 시끄럽죠. 음... 저쪽에 조용한 곳이 있어요!"
두 사람은 울타리를 따라 걸었다.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마을 뒤편으로 가는 좁은 길이었다. 발밑에 자갈이 바스락거렸다.
언덕 너머로 돌담이 보였다. 허물어진 곳도 있었고, 이끼가 낀 곳도 있었다. 그 안쪽이 공터였다.
유성이 들어서자 발밑 흙이 푹 꺼졌다. 땅이 불균일했다. 여기저기 검게 탄 자국이 남아 있었고, 바닥은 패이거나 융기된 곳이 많았다.
"여긴 옛날 훈련장이었대요."
엘리나가 돌담에 손을 짚었다. 거친 표면에 손가락 자국이 희미하게 남았다.
"지금은 아무도 안 써요. 새 훈련장이 마을 반대편에 생겨서요."
공터 한쪽에 나무 표적이 쓰러져 있었다. 반쯤 탄 채로. 엘리나가 그쪽을 힐끗 보더니 시선을 돌렸다.
"가끔 저처럼 몰래 연습하는 사람들이 오긴 하지만."
해가 기울었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났다. 돌담의 그림자가 공터 절반을 덮었다. 엘리나가 손끝을 들여다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마나가... 거의 없어요."
손끝을 비볐다. 불꽃조차 맺히지 않았다.
유성이 다가갔다. 엘리나의 손목을 잡았다. 피부가 차가웠다.
"다시 한번 상태를 볼게요."
"status."
그의 눈앞에만 패널이 떴다. 반투명한 푸른빛 창이었다.
[Current Mana: 2.1/20]
[Warning: Low Mana State]
숫자가 붉게 깜박였다.
"2.1밖에 안 남았네요."
"그럼요. 아까 몇 번이나 쐈는데."
엘리나가 어깨를 으쓱했다. 웃고 있었지만 목소리에 피로가 묻어났다.
"이 상태로 파이라를 쓰면..."
"안 나가겠죠?"
"더 위험해요."
유성이 패널을 응시했다. 경고 메시지가 계속 깜박였다.
"무리하게 짜내려다 역류할 수 있어요."
"역류요?"
엘리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 발짝 다가왔다.
"마나가 부족한데 억지로 끌어내면, 제어가 안 돼서 폭발할 수 있어요."
'숲에서의 폭주.'
유성은 눈을 가늘게 떴다. 냇가에서 폭발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비슷한 일을 겪었거든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엘리나가 두 손을 꼭 쥐었다.
유성은 엘리나의 손을 잡은 채로 다시 명령했다.
"code."
패널에 코드가 떴다. 검은 바탕에 형광색 문자들이 줄지어 흘렀다. 현재 엘리나의 파이라는 마나 체크 없이 무조건 실행되는 구조였다.
function 파이라() {
create_orb(size=0.7, temp=900); // 불구체 생성
throw(speed=4); // 투척
mana -= 5; // 마나 소모
}
'조건을 추가해야 해.'
유성이 손가락으로 공중에 구조도를 그렸다. 보이지 않는 선이 허공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분기점. 조건문. if, else.
"어떻게요?"
엘리나가 물었다. 유성은 허공을 보며 중얼거렸다.
"edit."
편집 패널이 활성화됐다. 커서가 깜박이기 시작했다.
"마나가 5 이상일 때만 정상 실행, 2에서 5 사이는 약화 모드, 2 미만은 차단하는 조건을 추가해 줘."
엘리나는 유성이 허공을 향해 말하는 게 여전히 신기했다. 입을 벌린 채 지켜봤다.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패널이 잔물결처럼 흔들렸다. 코드가 자동으로 수정되기 시작했다. 한 줄씩, 천천히.
function 파이라_조건부() {
if (mana >= 5) {
// 정상 실행
create_orb(size=0.7, temp=900);
throw(speed=4);
mana -= 5;
} else if (mana >= 2) {
// 약화 모드
create_orb(size=0.3, temp=500);
throw(speed=2);
mana -= 2;
} else {
// 실행 차단
return "마나 부족";
}
}
"이제 마나가 5 이상이면 정상 실행, 2에서 5 사이면 약한 버전, 2 미만이면 아예 차단돼요."
"우와..."
엘리나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런 것도 되는구나."
수정이 완료되자 엘리나가 움찔했다.
"또 간질간질해요!"
팔 안쪽이 따끔거렸다. 새로운 패턴이 각인되는 느낌. 피부 아래로 무언가 스며드는 것 같았다.
"적응되실 거예요."
유성이 손을 놓았다.
"자, 이제 해보세요."
엘리나가 숨을 고르고 외쳤다.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파이라!"
손끝에서 작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파르르. 이전보다 훨씬 작았지만, 떨리지 않았다. 안정적인 궤적을 그리며 천천히 날아갔다. 바위에 부딪혀 사그라졌다. 작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어?"
엘리나가 손을 들여다봤다.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했다.
"작긴 하지만... 나갔어요!"
"마나가 2.1이니까 약화 모드로 실행된 거예요."
"약해도 안 나가는 것보단 훨씬 낫네요!"
엘리나가 제자리에서 다시 폴짝 뛰었다. 치마가 펄럭였다.
유성이 다시 상태를 확인했다.
[Current Mana: 0.1/20]
붉은 경고등이 더 빠르게 깜박였다.
"이제 0.1밖에 안 남았네요. 잠깐 쉬면서 마나가 회복되길 기다려야겠어요."
"네!"
엘리나가 돌담에 앉았다. 먼지가 살짝 일어났다. 다리를 흔들며 손바닥을 번갈아 들여다봤다.
그때 유성이 문득 궁금해졌다.
"그런데 엘리나 씨는 마나가 얼마나 남았는지 어떻게 아세요?"
"음..."
엘리나가 자신의 손바닥을 들여다봤다. 손가락을 구부렸다 폈다 했다.
"그냥 느낌으로요? 몸이 무거워지고, 손끝이 차가워지고..."
손목을 흔들어봤다.
"뭐랄까, 배고플 때 힘이 없는 것처럼요."
"정확한 수치는 모르는 거네요."
"수치요?"
엘리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마나를 숫자로 본다는 게 신기해요. 저는 '많다', '적다' 정도만 알 수 있는데."
'그렇구나. 이 세계 사람들은 감각으로만 판단하는구나.'
유성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패널을 통해 정확한 수치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이점인지 새삼 깨달았다.
"그럼 마나는 어떻게 회복해요?"
"음..."
엘리나가 돌담에 등을 기댔다. 거친 돌 표면이 등에 닿았다.
"그냥 쉬면 돼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차오르거든요."
"시간이요?"
"네!"
엘리나가 손가락으로 하나씩 꼽았다.
"보통 한 시간 정도 푹 쉬면 반쯤 차고, 하루 자고 나면 완전히 회복돼요."
엄지, 검지, 중지.
"아, 그리고 마나 물약 마시면 빨리 차오르고요. 하지만 비싸서 저는 잘 안 사요."
"자동으로 회복되는 거네요."
'자연 회복. 시간당 회복량이 있다는 건가.'
유성이 손가락으로 공중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었다. 그래프 같은 것을.
"다른 방법은 없나요?"
"음... 명상하면 조금 빨라진다고는 하는데..."
엘리나가 혀를 살짝 내밀었다.
"저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게 힘들어서..."
다리를 더 빠르게 흔들었다.
"그냥 쉬는 게 제일 좋아요. 앉아서 멍 때리거나, 간식 먹거나!"
해가 더 기울었다. 주황빛이 진해졌다. 공터의 그림자가 더욱 길어졌다. 저 멀리서 새 소리가 들렸다.
까악, 까악.
"조금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
엘리나가 심호흡을 했다.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입으로 천천히 내쉬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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