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마트에서 일한다 (12)
나의 최선은 다했지만, 다른 동료나 윗사람 입장에서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1년 동안 인정받고, 즐거웠던 기억보다는 당황스럽고, 답답했던 기억이 49:51로 많았다. 아이들 엄마로 아이들이 아프면 휴가를 내야 하고, 아이들 학교 참관 수업, 운동회 등을 가려면 늦은 근무는 못 했다. 주말 근무도 못 하다 보니 힘든 일을 함께 하지 못했고, 오이 래핑도 깨끗하게 못했다. 지적을 받을 때마다 '너는 우리와 결이 달라'라는 말의 뜻을 곱씹어야 했다. 내가 환영받는 마트 직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스스로 정한 원칙을 읽었다.
'나는 고객에게 정성을 다했는가, 회사와의 약속을 성실히 이행했는가, 동료에게 친절히 응대했는가.' 그 원칙을 다 했으면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다. 고객들이 도와주거나 웃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행복했다. 내가 아이디어를 내고 그린 홍보물을 더 인쇄해 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뿌듯했다. '사무직' 기술을 사용해서 엑셀 작업 시간을 줄이고, 아이패드 드로잉을 공부했다.
그렇게 혼자서 노력하다가도 자존감이 채워지지 않으면 친구들을 만나서 하소연을 했다. 강냉이 한통을 입에 넣으며 엉엉, 열심히 하는 나에게 이러냐고 징징대었다. 그때 친구 한 명이 말했다.
- 아무도 너에게 마트에서 일하라고 시키지 않았어. 네가 도전한 거잖아. 나도 일터에서 모시와 멸시를 느껴. 조금 더 버텨. 지금 한창 크는 아이들 엄마로서 그것보다 더 잘할 수 없어.
매달 한 달만 더 한 달만 더를 외치다가 1년이 되었다. 아이들의 독감으로 휴가를 내다는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내 티오로 주말 근무자를 뽑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나의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게 되었다.
나는 아직도 내가 일하던 마트를 즐겨 간다. 저렴하고 품질 좋은 물건들이 많고, 무엇보다 내가 힘들 때마다 입안 가득 쳐 넣고 씹으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강냉이가 있기 때문이다. 해 보지 않았던 일이라서,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시작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경험들을 했다. '회사 후배들이 알면 뭐라 생각할까, 학교 동창이 보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그동안 익혔던 모든 스킬들은 뭐지?'라고 고민하고 실천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경험들.
나는 잘못된 사회의식과 선입견에 대해서도 알았고, 사회 곳곳에서 힘든 일들을 해주는 분들 덕분에 많은 편리를 누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무도 나에게 마트에서 일하라고 시키지 않았다. 내가 일하고 싶어서 도전했고, 속상했고, 외로웠고, 뿌듯했다. 1년 그리고 그 도전을 실천한 나에게 칭찬해 주고 싶다. 1년간 경험을 시시콜콜 정리하고 싶었는데 이 글이 당분간 마지막 글이 될 것이다. 나는 앞으로 다른 일을 하게 될 수도 있고, 마트 일을 다시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일이든 또다시 새롭게 할 수 있는 용기를 (조금은) 충전했다는 것. 1년 동안 애쓴 나에게 칭찬해 주고 싶다. 애썼어, 수고했어. 잘 버텼어,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