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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생물학자 천종식 Nov 18. 2018

미국 이민을 가면 비만이 되는 이유

어서 돌아오라 한국으로

흔히 미국에는 칼로리가 많은 음식 때문에 비만인 사람이 많다고 생각한다. 미국 패밀리 레스토랑의 파스타 1인분은 분명 한국의 1.5인분에 해당하는 걸 보면 분명히 그런 것 같다. 열량이 많은 음식을 먹는 것 이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미국은 이민자의 국가이고,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산다. 그리고 대부분 원래 살던 모국에 비해 미국에 사는 사람이 비만인 경우가 많다. 도대체 미국에만 오면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 사람들이 살이 찌고, 당뇨병 같은 대사질환이 늘어나는가? 이에 대한 답이 될 만한 연구가 최근에 발표되어 여기에 소개한다.


미국 미네소타주에는 태국에서 이민을 온 몽족과 카렌족의 많이 산다. 이 두 소수 부족은 중국이나 미얀마 등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난민이 되어, 태국에 난민촌을 형성하며 살고 있다. 이 중 일부가 운이 좋게 미국에 이민을 온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가족이 태국과 미국에 나누어 살고 있어서, ‘미국 이민’이라는 사건이 주는 영향을 연구하기 좋다.


카렌 소수 민족


이미 장내 미생물의 불균형이 비만의 원인이라는 증거는 동물실험과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 연구에서 어느 정도 입증이 되어 있다. 이에 착안한 미네소타 대학교의 연구진은 몽족과 카렌족을 대상으로 장내 미생물, 즉 마이크로바이옴을 비교했다.


연구팀은 다음 4개의 그룹을 조사했다.


1. 태국에 사는 몽족과 카렌족 사람들

2. 미국에 이민 와서 사는 몽족과 카렌족 사람들

3. 미국에서 태어난 몽족과 카렌족의 2세들

4. 미국의 같은 지역에 사는 백인들


가장 먼저 발견한 사실은 두 부족의 사람들이 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하면, 마이크로바이옴을 구성하는 세균의 종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건 마치 호랑이나 곰 같이 한때 한반도에 살던 여러 동물이 멸종한 것처럼, 우리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현저히 파괴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도 미국에서 오래 살수록, 생태계의 망가짐이 더 심했다. 놀랍게도 이민을 온 후 불과 6~9개월 만에 이런 난리가 이민자의 뱃속에서 일어난다고 한다. 


대장 속의 세균의 종의 수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고, 그 종류도 바뀌었다. 채식 위주의 식사를 주로 하는 아시아인에게 프레보텔라(Prevotalla)라는 세균이 많은데, 이민을 오면 이 유익균이 유럽과 미국인에게 많은 박테로이데스(Bacteroides)라는 세균으로 대체가 된다. 이런 변화는 미국에서 태어난 몽족과 카렌족 2세에서 더 심해진다. 그리고 가장 마이크로바이옴이 안 좋은 사람들은 수백 년 전에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민 온 사람들의 후손인 현재의 미국 백인들이다. 미국화 된 마이크로바이옴은 비만의 발생과 연관성이 높다.


정리해 보자. 조상으로부터 따져서 미국에서 밥을 많이 먹은 횟수가 오래된 사람일수록 마이크로바이옴의 불균형이 심하고, 이는 비만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이 연구의 결론이다. 물론 비만 이외에도 당뇨, 아토피, 자폐, 치매 같은 질병도 미국 이민과 연관이 되어 있을 것이지만, 이건 후속 연구로 쉽게 밝혀질 문제이다.


이민자에게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물론 가장 의심이 가는 부분이 바로 미국식 식단, 또는 서구화 식단이다. 미국식 식단은 패스트푸드로 대표되고, 정제된 밀가루를 주식으로 하며, 채소보다는 설탕, 과당 등의 가공된 재료와 동물성 단백질이 풍성하게 들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소화관의 마지막에 자리 잡은 대장에 사는 유익한 미생물들은 오매불망 인간이 남긴 음식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람은 이런 종류의 음식은 소화를 아주 잘 시켜서, 이들 유익균은 쫄쫄 굶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십조의 미생물이 경쟁하는 대장에서 며칠이 아니라, 몇 시간만이라도 굶은 우리의 유익균이 설 자리는 바로 없어진다. 이것이 바로 가장 큰 마이크로바이옴 불균형, 즉 디스 바이오시스(Dysbiosis)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먹는 음식의 열량이 많고 적음이 아니라, 위에 언급한 프레보텔라 같은 유익균이 먹을 것이 없는 음식을 이민자들이 먹게 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카렌족이 주로 먹는 고사리 종류. 이런 음식을 미국에서 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출처: 미네소타대학)


아마 미국에 잠깐이라도 가 본 사람은 느꼈겠지만, 미국은 온갖 패스트푸드와 파스타, 감자튀김, 스테이크 등 인간 (소화) 친화적인 음식의 천국이다. 그리고 미국의 학교 급식도 큰 틀에서 같다.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이민자가 싸고 맛있는 미국식 식단을 피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 연구는 19명의 이민자를 9개월간 추적 조사를 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실험용 쥐로 비슷한 방식의 실험을 하기는 쉽지만, 사람을 인위적으로 이런 조건에 9개월 동안 살도록 하기는 어렵다. 누가 채소나 과일, 발효 식품 위주의 식단 대신에 햄버거, 파스타, 감자튀김, 스테이크, 케이크, 아이스크림, 콜라, 햄, 소시지, 라면 위주로 일부러 먹겠는가? 그것도 9개월이나....


하지만 혹시라도 미국에 이민 간 것처럼 살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장내 미생물을 생각해서 빨리 한국으로 돌아오시길 바란다.




그럼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주로 먹어야 할 음식은 무엇일까? 공교롭게도 모 햄버거 회사의 브랜드와 유사한 MAC(Microbiota Accessible Carbohydrates)이다. 칼로리를 무리해서 제한할 필요도 없다. 다만 MAC이 충분히 보충된 식단을 유지해야 한다. 나도 먹고, 함께 사는 미생물도 먹을 것을 주는 것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위에 언급한 유익균인 프레보텔라가 많은 사람이 살도 잘 빠진다고 한다. 


장내 미생물은 비만, 당뇨, 아토피, 크론병, ADHD, 치매, 파킨슨, 암 등 많은 질병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장내 미생물을 위한 건강한 식단에 대해서 네이버 카페 <바이크로바이옴식탁>에서 자세히 원리과 실천 방법을 알려드리고 있으니 방문해주세요.


마이크로바이옴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제 유튜브 채널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여기에 소개한 논문은 다음과 같다.

US Immigration Westernizes the Human Gut Microbiome. Cell. 175(4) P962-972.E10, NOVEMBER 01, 2018


#마이크로바이옴 #비만 #MAC #미생물 #마이크로바이옴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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