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이라 하면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라는 말이다. 나에게 꼭 맞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나는 모든 일들에 있어서 늘 생각이 많은 편에 속한다. 불과 일이년 전까지만 해도 생각이 많은 것이 좋다고만 생각해왔다. 생각이 많았기에 무언가를 ‘쓸 수 있는’ 확률도 많아졌으니. 그런데 해가 갈수록 보다 단순하게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 이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생각들이 좋은 결과를 불러왔던 적이 없었던 것이 이유가 되기도 하고, 그 생각들의 끝은 늘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도를 잘 모른다. 어디서 멈춰야 하고 끊어야 할지를 몰라, 비교를 하자면 늘 빠져나올 수 없는 사막의 ‘유사’와 비슷하다. 모래알과 비슷했던 생각들의 크기가 순식간에 거대한 구덩이가 되어 나를 잡아먹는 것이다. 그리고 더 잔인한 사실을 말하자면, 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던 생각들의 대부분은 거의 나 혼자 만들어낸 공상이자 망상과 같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요즘 혼란스럽다.
생각이 많다는 것이 늘 좋은 것인 줄로만 알았다. 한 가지 경우에 대해 더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면 다양한 경우에 대비할 수 있지 않은가. 일종의 차선책 같달까. 그런데 차선책을 준비했다라생각했던 방패는 오히려 더 뾰족한 칼날이 되어 나를 깊게 파고들었다,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물론 생각들이 필요한 순간들은 당연하게 존재한다. 다양한 경우에 대하여 대비하기 위한 생각들을 늘어놓는 것도 불필요하다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생각이 많은 내가 싫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생각들을 늘어놓음으로써 나 스스로를 유사에 자빠뜨리는 행위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위험하다. 나에게도 그리고 타인에게도. 이게 나다.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은 별 의미 없는 생각들이었다. 그냥 내 위에 어떤 습관이 무섭도록 딱딱하게 굳어버려 어느 부분부터 녹여야 ‘내’가 보이는지 조차 모를 정도가 된 것이다. 무섭게 자리 잡아버린 이 부정적인 생각들의 꼬리잡기가 나는 무섭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끊어내야 할지 좀처럼 감이 잡히질 않아 혼란스럽다. 그렇다고 타인에게 손을 뻗는 행위는 더 위험하다. 유사에 빠진 나를 구하려다 내 손을 잡은 타인까지 유사에 빠져버리기 마련이니까. 많은 생각들이 무조건 좋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나의 경우, 이 생각들의 꼬리잡기 끝은 언제나 큰 우울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의 끝무렵에 가게 되면 나를 덮치는 그 우울함은 피할 길이 없다. 그저 나를 덮치고 지나가길,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지나왔던 어둡고 혼란스러운 길들이 결코 없었어야 했던 길은 아니라 생각한다. 길가에 잘 보이지 않는 들꽃이 피어나는 것에도 이유가 있듯, 작은 벌레가 온 힘을 다해 자신의 몸보다 수백 배는 커다란 잎사귀를 오르는 것에도 이유가 있듯 모든 일들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니까. 내가 그러한 시간을 거쳐왔기에 지금의 나에게 조금 더 이로운 길을 선택하려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늘 중간을 유지하는 것이, 그 밸런스라는 시소위에 올라타 수평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해야 한다.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이 어리석음을 불러일으키듯, 과한 생각은 화를 불러일으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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