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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Mar 28. 2018

고인물의 행태

보통 문제는 각자 마음에서 놓지 못하는 것들에서 탄생한다.

보통 문제는 각자 마음에서 놓지 못하는 것들에서 탄생한다. 이에 더해 각자가 놓지 못하는 것들이 서로 충돌을 하게 되면 문제는 조금 더 거대한 흉상을 띄우게 된다.

깨를 볶는 신혼 같은 나의 부모님은 불과 2년쯤 전만 해도 한 여름의 장마처럼 또는 맑은 날의 소나기처럼 오락가락했다. 딸인 나는 당연히 엄마의 입장에 섰어야 하지만 아빠의 성격을 많이 닮은 나는 아빠의 입장에 먼저 서서 생각하는 날이 많았다. 처음에는 엄마와 아빠의 다툼은 서로 ‘다름’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내가 조금씩 나이가 들고 여자의 입장에 서게 되면서 엄마의 입장에 서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엄마와 많은 대화를 나눴던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의 중요한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엄마는 아빠와의 문제에 대해 늘 이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더 이상은 이렇게 안 살아.’ 그럼 나는 이렇게 답했다. ‘그래, 이제는 엄마가 원하는 대로 살아.’ 엄마는 그동안에 쌓여있던 것들이 많다고 하였다. 다른 친구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던 아빠 '때문에’ 연락이 끊겨버린 친구들도 한 둘이 아니고, 여행을 좋아하는 엄마와는 반대로 집에 있는 것만이 휴식이라고 생각하는 아빠 ‘때문에’ 여행도 다니지 못했다는 것이다. 영화 보러 극장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는 어두컴컴하고 사방이 막힌 극장이라는 장소를 싫어하는 아빠 ‘때문에’ 영화관도 많이 다니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엄마는 늘 이렇게 얘기한다. ‘이제부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 거야.’ 하지만 그동안도 그녀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했을 뿐이다. 그녀가 해왔던 그동안의 선택 또한 모두 그녀가 한 것이다.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다. 그녀가 했던 모든 선택에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의 향연이었을 테니. 그저 지나간 과거에 얽매여있는 듯한 그녀에게 늘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을 갖게 될 뿐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늘 서로가 다르다고 했다. 성향도, 성격도, 하고 싶은 것들도. 그것들이 문제의 태초적인 원인인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수십 년간을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이 같기란 쉽지 않다. 아니 어쩌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가까울지 모른다. 엄마는 그동안 아빠가 원했던 것들 때문에 자신의 것을 포기해야 했던 과거를 놓지 못하였고, 아빠는 자신이 원하던 것들 때문의 엄마의 것들을 포기하라고 하는 것들을 놓지 못하였다. 그저 사랑하는 두 사람이 각자가 원하는 것들이 다를 때, 한 발씩 뒤로 물러서고 꽉 잡고 있던 끈을 한가닥씩 놓으며 상대와 가까워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제 3자의 입장에 섰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지금은 나의 문제가 되었다. 내가 손에 움켜쥐려 하는 마음속의 집착으로 그 세계가 어지러워지고 있다.

마음에 무언가를 담아놓고 있다면 그것들을 최대한 빠르게 털어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렵다. 빠르게 털어내지 못한 것들은 고인물이 되어 썩어버리기 십상이다. 나는 마음에 고인 무언가가 조금씩 썩은 내를 풍기며 그 형태가 변모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요즘을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이 고인물을 빠른 시일 내에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 어떤 문제를 직면했을 때 그 문제의 크기는 1에서 시작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1에서 시작된 문제들은 나의 생각과 여러 가지 상황들이 살로 얹혀 10의 크기로 나를 짓누르고 있고 이는 꽤나 고통스럽다.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잘못되었는지조차 모르는 이 감정의 크기는 가끔 나를 집어 삼킬정도로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 문제의 크기가 1이었을 때 그리고 나 또한 그 문제의 크기를 1로 느꼈을 때 이를 허심탄회하게 놓아버렸다면 문제의 무게는 10만큼 부풀지 않았을 것임을 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은 상대와 내가 각자가 원하는 것들에 대한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이어가야 하는 관계 속에서 일방적으로 한 사람의 뜻만 고집한다면 언젠가는 어그러질 것이라 생각한다.


내려놓는 것은 어렵다. 원하는 것을 조금은 포기해야 하는 것 또한 너무나 어렵다. 그러나 보통 문제는 각자 마음에서 놓지 못하는 것들에게 탄생한다. 그리고 보통 문제의 해결은 서로가 한 발짝씩 뒤로 물러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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