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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Jul 03. 2018

고난과 더불어 사는 '것'이라고,

삶을 지탱하고 있던 벽이, 언제 있었냐는 듯 아무런 형체도 없이 허물어져버리는 순간이 있다. 우르르 무너지는 소리도 없이 그렇게. 먼지 한 톨 없이.

시간은 돌고 돈다. 다 지나간 줄 알았던 힘든 시간들은 사라진 적도 없었다는 듯이 뻔뻔하게 다시 내 앞에 멀뚱히 서있고,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던 행복들 또한 기대하지 않은 순간 성큼 내 앞에 다가와있다. 요즘은 전자 쪽에 가깝다. 든든했던 마음속 어느 한 구석이 순식간에 사라져, 빈 공간에 의미 없는 공기들만 헛돈다.


보통 이런 순간들은 언제 어떻게 무슨 이유로 생겨났는지 그 경로조차 알 수 없다. 그저 작은 시간들과 공간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토르의 망치쯤 되는 것이 만들어지는 것인지, 믿고 있던 든든한 무언가를 부숴버린다. 물론 또다시 쌓아 올려진다는 것을 안다. 오히려 무너진 '그것'보다도 더 단단하고 야무지게 만들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빈 공간만 생겨버린 요즘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엇으로 그 공간을 채워야 할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는다.

 

어쩌면 무언가 무너져버린 것이 아니라 너무 가득히 쌓아 올려져 그 공간을 넓혀야 하는 시기일 수 있다. 작은 화분 속 귀여웠던 작은 스투키가 분갈이를 해야 할 만큼 커져버린 것처럼. 그렇게 나도 조금 더 자라 버린 것일 수 있다. 유난히 생각이 많은 나에게 성장이란 한 계단 한 계단 밟고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단단하게 고정되어있는 벽을 부수고 그 공간을 넓히는 것이다. 나에게 위로 올라가는 것은 소용없다. 사다리 혹은 계단이, 또는 엘리베이터가 고장나버리면 넓혀진 그 성장 반경에 닿을 수 조차 없지 않은가.


보통 이렇게 쓰게 된 글은 나에게 흔한 고해성사쯤으로 적용된다. 단순한 푸념일 수 있다. 갑자기 휑해져 버린 공간을 채울 길이 보이지 않아 방황하다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바닥에 끄적이는 낙서 같은 것이다. 혹은 한 순간 무너져버린 혹은 좁아져버린 나의 한 구석이 혼란스럽고 두려워 이곳저곳 정신없이 발을 동동 구르다가 지쳐 주저앉아버린 그곳에 나의 둥지를 트는 것이다. 꼭 필요한 시간과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좁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이 곳이, 어둡고 엉망진창이 되어버려 하루빨리 흘러가버렸으면 하고 바라는 이 시간들이 나에게 새로운 바다를 선물할 것을 알면서도 어렵게 어렵게 견뎌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난에서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것이라 한다. 누군가에게는 코웃음을 치며 지나칠 작은 문장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그렇다. 명징하다. 깨닫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몇 글자라도 끄적인 지금, 여전히 나는 컴컴하다. 그러나 곧 아무렇지 않게 밝아질 것을 안다. 그렇기에 버틸 수 있고 버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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