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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Feb 19. 2024

32일

흐린 날이 더 좋은 건 왜일까요.

맑은 날이 점점 미워져요.

뭐랄까요.

흐린 날들의 조용함과 먹먹함이 좋아요.

조금은 복잡했던 내 마음과 머릿속 생각들을

가라앉혀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리고 당신 생각이 더 잘 나기도 해요.


맑은 날은, 그냥 맑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좋아하잖아요.

길거리에 나가보면 한껏 들뜬 사람들의 표정과 걸음걸이가 보여요.
그러면 나는 이유 없이 아니, 맑다는 이유만으로도

넘치게 사랑받는 맑은 날들을 살짝 꼬집고 싶어져요.


당신과 내가 처음 만났던 그날도  추적추적 비가 내렸잖아요.

우산을 쓰는 사람 반, 안 쓴 사람 반.

살짝 젖은 당신의 앞머리와 그 앞머리를 당신의 긴 손으로 쓸어넘기는 그 모습이 참 조용하고 깊었어요.

그리고 아마 그 순간 당신을 사랑하게 됐을 거예요.


흐린 날들은 그저 흐리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날씨를 탓하잖아요.

그래서 결심했어요.

나는 흐린 날들을 흐리다는 이유만으로 가득하게 사랑해주기로요.


날씨가 잔뜩 흐린날

당신과 담요를 두르고 소파에 앉아  영화를 한 편 보고싶어요.

우리 늘 시키던 떡볶이도 시키고요.

유독 날이 흐린 날 오늘, 당신이 함께 그리워져 편지를 썼어요.


우리 다시 함께하게 될 어느 흐린 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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