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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Feb 22. 2024

33일

태어난다는 게 뭔지 생각해 봤어요. 

산다는 게 뭔지, 그 이전에 먼저 생각해봐야 할 거잖아요.

태어난다는 건 뭘까요.


가끔 멍하게 창 밖만 보며 뭔갈 생각하고 있으면

그런 날 보고 당신이 그랬죠.

내 머릿속이 궁금하다고. 아주 재밌는 생각들을 하고 있을 것 같다고.

사실 그때 난, 아무런 생각들을 하고 있지 않았어요.

쉴 새 없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생각들을 모조리 내려놓고 비우고

온전한 나를 마주하는 그런 순간이었어요.


그렇게 나를 찾아가던 와중 어김없이 돌아온 오늘, 내 생일에

이런 생각을 했어요. 과연 태어난다는 건 뭘까.
이 몸으로 세상에 왔다는 걸까 아님, 무수한 공간을 떠돌던 내가

다시 한번 이 세상에 도착했다는 걸까.

언젠가는 사라질 이 몸으로 잠시잠깐 세상에 태어난 거라면

그러면 난 가장 하고 싶은 게 뭘까. 

하지 않고 이 몸을 떠나,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가장 먼저 후회할 건 뭘까.


사는 동안 내가 하기로 다짐한 것들을 다시 떠올려봤어요.

첫째. 많이 쓰기.

둘째. 온전하기.

셋째. 사랑하기.

사랑하기. 사랑하기. 사랑하기.

죽는 순간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없다면 혹은 적다면

가장 후회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겨울 틈에 용기 내어 핀 꽃을 사랑하고,
더운 여름 구태어 나를 찾아온 모기의 얄미움을 사랑하고,

이루어지지 않아도 끊임없이 해나가는 꿋꿋함을 사랑하고, 

염치없이 연락한 친구의 부탁을 사랑하고,

그렇게요.


미운 순간들마저 사랑하자고 다짐한 이번 생일에

함께 하지 못한 당신이 조금은 밉지만

그것부터 사랑할게요.

거기서부터 시작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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