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롯하게 Feb 26. 2024

34일

이름이라는 건 참 많은 걸 담고있는 것 같아요.

아무것도 아니다가 이름이 생기면

꼭 어떤 존재가 된 것 같잖아요.

그렇다면 우리는 그 어떤 존재도 아니지 않을까요?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오래전에 이름을 바꿨어요.

그런데도 가족들은 여전히 내 옛날 이름을 불러요.

맞아요, 당신이 아는 그 이름.

그래서 그런지, 나는 이름을 바꾼지 한참이 지난 지금도

이름이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우리는 그 무엇으로도 불릴 수 있잖아요.

당신에게 나는 연인이듯, 누군가는 나를 친구야 라고 부르고

나의 엄마는 종종 이름 대신 딸, 하며 불러요.

이름은 아무런 힘도 의미도 없는 것 같아요.


물론 내 이름을 나는 좋아해요. 

그것도 당신이 불러주는 내 이름이요.

근데 꼭 이름이 아니어도 되요.

생각해보면 불린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가 나를 찾는 다는 그 행위와 의미 자체가 소중한 것 같아요.

반드시 이름이 없어도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나는 당신의 이름이 좋아요.

우리가 잘 알지 못했을 때에도, 당신의 이름을 들으면

그냥 마음이 편안했어요. 

그건 당신의 이름 때문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결국 이렇듯 만나게 될 수 밖에 없던

우주의 계획 때문일까요.


그러니 당신은 나를 부르지 않아도 되요.

간혹 그저 나를 쳐다만 봐도

나는 당신이 나를 부른다는걸 아니까요.

그러면 나는 웃으며 당신을 쳐다볼게요.

당신을 부르는거예요.

이전 04화 33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