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4일

by 오롯하게

이름이라는 건 참 많은 걸 담고있는 것 같아요.

아무것도 아니다가 이름이 생기면

꼭 어떤 존재가 된 것 같잖아요.

그렇다면 우리는 그 어떤 존재도 아니지 않을까요?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오래전에 이름을 바꿨어요.

그런데도 가족들은 여전히 내 옛날 이름을 불러요.

맞아요, 당신이 아는 그 이름.

그래서 그런지, 나는 이름을 바꾼지 한참이 지난 지금도

이름이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우리는 그 무엇으로도 불릴 수 있잖아요.

당신에게 나는 연인이듯, 누군가는 나를 친구야 라고 부르고

나의 엄마는 종종 이름 대신 딸, 하며 불러요.

이름은 아무런 힘도 의미도 없는 것 같아요.


물론 내 이름을 나는 좋아해요.

그것도 당신이 불러주는 내 이름이요.

근데 꼭 이름이 아니어도 되요.

생각해보면 불린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가 나를 찾는 다는 그 행위와 의미 자체가 소중한 것 같아요.

반드시 이름이 없어도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나는 당신의 이름이 좋아요.

우리가 잘 알지 못했을 때에도, 당신의 이름을 들으면

그냥 마음이 편안했어요.

그건 당신의 이름 때문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결국 이렇듯 만나게 될 수 밖에 없던

우주의 계획 때문일까요.


그러니 당신은 나를 부르지 않아도 되요.

간혹 그저 나를 쳐다만 봐도

나는 당신이 나를 부른다는걸 아니까요.

그러면 나는 웃으며 당신을 쳐다볼게요.

당신을 부르는거예요.

keyword
이전 04화33일